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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보다 애플이 좋아” 애국소비 예전 같지 않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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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보다 애플이 좋아” 애국소비 예전 같지 않은 중국

입력
2019.05.21 18:11
수정
2019.05.21 23:5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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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취업 악영향 우려… “가장 큰 피해자는 평범한 인민들”

SNS 연일 반미감정 부추겨… ‘美음식 먹지 말라’ 공문 돌기도

중국 베이징의 한 백화점 1층 입구에 자리한 화웨이 매장. 손님이 뜸하다 못해 휑한 분위기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중국 베이징의 한 백화점 1층 입구에 자리한 화웨이 매장. 손님이 뜸하다 못해 휑한 분위기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반면 같은 백화점 4층의 애플 매장. 한 켠에 처박혀 있는데도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반면 같은 백화점 4층의 애플 매장. 한 켠에 처박혀 있는데도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21일 낮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 백화점 1층에 들어서자 화웨이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휴대폰 매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목이 좋은 자리건만 직원들끼리 수다를 떨 뿐 휑한 분위기다. 한 여성 손님이 가격이 가장 저렴한 1,999위안(약 34만원)짜리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뭔가 성에 차지 않는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매장 직원은 대수롭지 않은 듯 “요즘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애플 매장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갔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한참을 두리번거리고서야 찾을 수 있는 귀퉁이에 있었다. 그런데도 손님 6명이 휴대폰과 태블릿PC, 헤드폰 사이를 오가며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통에 제법 활기가 넘친다. 상당수 제품 가격이 6,000위안(약 103만원)을 훌쩍 넘는데도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20대 회사원 리(李)씨는 “미국 제품이 더 좋은데 안 사면 바보”라며 “한국 롯데를 대할 때처럼 중국산 장려운동을 해봐야 결국 손해를 보는 건 우리”라고 말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격해지면서 중국 정부가 연일 반미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다. 정부 방침에 적극 호응하면서 들끓는 감정을 미국을 향해 토해내는 이들도 있지만 온 국민이 일사불란하게 진군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2012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당시 폭발적인 반일 시위와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문제로 전국에서 들고 일어나 한국을 흠씬 두들겨 팼던 것과는 온도 차가 있다. 자영업자 쿤(昆ㆍ45)씨는 “몇 년 전 너나 할 것 없이 일본과 한국을 비판했던 기억이 생생하지만 아직은 미국을 그 정도로 깔아뭉갤 생각은 없다”고 했다.

무역전쟁을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입장은 세대와 각자의 처지에 따라 확연히 갈렸다. 20대 청년들은 취업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면서도 미국을 일방적으로 비판하길 꺼렸다. 여대생 양(楊ㆍ22)씨는 “무역전쟁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교수님의 말씀 때문에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왕(王ㆍ25)씨는 “화웨이가 당장은 타격을 입겠지만 구글에 의존하지 말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개발해 난관을 이겨낸다면 오히려 중국 기업에게 큰 이득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30대 이상 주부와 직장인들은 정부 방침에 동조하는 기류가 좀 더 강했다. 장(張ㆍ30)씨는 당연하다는 듯 “지난해 화웨이 회장 딸이 체포되자마자 아이폰을 화웨이폰으로 바꿨다”고 말했고, 주부 궈(郭ㆍ37)씨는 “마트에서 미국산 과일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아이들이 애플 휴대폰을 사달라고 조르지만 어림없다”고 했다. 린(林ㆍ31)씨는 “중국이 없으면 미국도 없다”면서 “미국의 도발은 결국 미국의 손해가 될 것”이라고 중국 관영매체의 주장을 똑같이 반복했다.

이와 달리 주부 한(韓ㆍ35)씨는 “국산품을 사용해야 하는 건 알지만 아이를 위해 아이패드를 사줬다”며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오(趙ㆍ37)씨는 “미국과 갈등을 피할 수 없더라도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며 원만한 해법을 주문했다. 장(姜ㆍ47)씨는 “무역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평범한 인민들”이라며 “부디 경기가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한 자동차검사서비스회사가 16일자로 직원들에게 내린 공문. 아이폰 사용금지, 미국산 자동차 구입 금지, KFC 출입 금지 등 불매운동을 부추기는 내용이 담겼다. 웨이보 캡쳐
중국의 한 자동차검사서비스회사가 16일자로 직원들에게 내린 공문. 아이폰 사용금지, 미국산 자동차 구입 금지, KFC 출입 금지 등 불매운동을 부추기는 내용이 담겼다. 웨이보 캡쳐

대다수 중국인들이 잔뜩 웅크린 채 갈팡질팡하는 사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민심을 흔들어대는 온갖 자극적인 표현들이 난무하고 있다. 웨이보에는 이날 미국산 제품 불매운동을 조장하는 장쑤(江蘇)성 둥하이(東海)현 소재 한 자동차검사서비스회사의 지난 16일자 공문이 나돌았다. 이 문서엔 아이폰 대신 화웨이폰을 사용하고, 미국산 자동차도 사지 말고, KFC나 맥도날드 음식도 먹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문서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려 기자가 전화를 걸자 회사 측은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다”며 매몰차게 끊었다. 위챗에는 당장 전쟁터로 나가라고 네티즌들을 떠밀 듯 ‘무역전쟁’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위챗 등 중국 SNS에 떠도는 ‘무역전쟁’ 제목의 노래 영상물. 전의를 고취하는 자극적인 내용이 담겼다. 위챗 캡쳐
위챗 등 중국 SNS에 떠도는 ‘무역전쟁’ 제목의 노래 영상물. 전의를 고취하는 자극적인 내용이 담겼다. 위챗 캡쳐

이와 관련,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회장은 이날 관영 CC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우리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2~3년간 화웨이의 5G 기술은 그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웨이 측은 기자의 질의에 “올해 1분기 휴대폰 판매량은 2,990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1% 늘었다”고 답했다. 아직은 별 타격이 없다는 얘기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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