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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인 18일 오후 광주 동구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5·18 유공자 명단공개' 등을 요구하며 5·18 역사 현장인 충장로를 행진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미증유의 기행이 벌어졌다. 18일 광주에서 5ㆍ18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듯한 집회가 열리고 대중가요 ‘부산갈매기’가 불린 사건이다. 잠시간 이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현장 보도는 나와 있고, 집회 참가자의 인간성을 의심하는 시민 분노는 명료했다. 이를 굳이 더 분석하려 드는 일이 필요한지 회의가 일었다.

게다가 최근 마음 속에는 한 언론계 선배의 말이 콕 박혀 있었다. “한국 언론이 정규분포곡선의 양 끝에서 벌어지는 일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이, 사태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누가 봐도 상식 밖인 어떤 행위를 구태여 ‘잘못됐다’고 쓰는 것이 긴요하냐는 거다. 또 세상에 스펙트럼 양극단만 존재하는 것처럼 A와 Z가 싸웠다거나, Z가 별 해괴한 방식으로 누군가를 모욕했다는 소식을 너무 자세히, 자주 다루는 일이 피로감을 준다는 취지였다. 일면 옳았다.

추모가 한창인 오월 광주를 굳이 찾아가 5ㆍ18을 의심하고, 대중가요를 열창한 사건은 확실히 정상범주 밖의 일이었다. 굳이 해석하지 말자며 ‘그냥 증세다, 상처다’를 되뇌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내공이 부족한 탓이기도 했지만, 광주와 전국 시민은 물론 깊은 충격과 상처를 받은 듯한 부산 시민의 아픈 반응이 연일 쏟아져 나와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부산 사람으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부산 출신으로 할 말을 잃었다’ 등이다. 다른 쪽에서는 ‘(프로야구) 롯데 팬이 당분간 부산갈매기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거나 ‘원래 건달의 노래였다’는 반응까지도 나왔다. 노래가 무슨 죄가 있나. 다만 이리 반응할 만큼, 광주를 능욕하며 굳이 부산을 호명한 일에 누군가는 모욕을 느꼈다는 것이다.

오월의 광주를 모욕하는데 하필 ‘부산갈매기’를 동원한 것은 생각할수록 난센스다. 5ㆍ18의 정신이 면면이 흐르는 민주화투쟁의 궤적에는 1979년 부마항쟁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두 사건의 연관성을 강조해 온 대표적 학자는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다. 5ㆍ18기념재단 이사를 지낸 그는 5ㆍ18을 늘 그 자체로 완성된 “전대미문의 진리사건”이라고 정의하면서도, 그 진리의 빛이 도래하기 전 영겁의 어둠, 즉 여타 투쟁이, 특히 부마항쟁이 존재했다고 본다.

1975년 이후 단 한 번의 데모도 없어 ‘유신대학’이라 조롱을 당했던 부산대에서 누적된 죄의식과 시대적 소명의식이 폭발한 움직임이 4ㆍ19 이후 최대 규모 시민항쟁인 부마항쟁이었고, 바로 이듬해 계엄군을 몰아내기 위해 학생, 택시기사, 상인, 여인, 의사ㆍ간호사가 온 몸으로 저항한 주체성의 분출이 5ㆍ18민주화운동이었다는 것이다. 4ㆍ19혁명을 통해 이승만 독재가 무너졌듯, 부마항쟁으로 박정희 독재가 막을 내렸고, 이듬해 5ㆍ18을 통해 전두환 독재가 정통성의 한계와 천한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던 과정을 생각하면, 부산은 도저히 광주를 모욕하는 단어일 수 없다.

숱한 지역갈등의 이면이 있었을지언정, 이런 반독재투쟁의 역사에서 부산, 마산, 광주는 하나의 궤적이었다. 이를 두고 김 교수는 우리 역사가 “본질적으로 부산 앞바다와 광주의 무등산 사이에서 운동한다”(‘철학의 헌정 - 5ㆍ18을 생각함’ㆍ길 발행)고 적기도 했다. 이번 대중가요 열창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쏟아지는 분노는 이런 역사에 대한 몰이해를 마주한 데 대한 아연실색이자, 각자가 품은 ‘슬픔의 고향’이 당한 부정에 대한 울분이자, 애써 밀어내 온 지역주의 망령을 2019년에도 목도한 비통이 아니었을까.

왜 자신을 잊었냐며 순이와 갈매기를 애타게 부르던 이들은 정작 기억하고 있을까. 1979년 부산과 마산을, 1980년 광주를, 각자의 고향에서 독재 살인폭력 아래 짓눌린 숱한 영혼을. 저마다 ‘슬픔의 고향’을 지닌 전국 시민이야말로 애달프게 묻고 싶을지 모른다. 너는 정녕 그걸 잊었나. 너는 벌써 그걸 잊었나.

김혜영 기획취재부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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