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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막말 폭력’을 기억할 이유

입력
2019.05.20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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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달창’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그가 2017년 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갑자기 소환됐다. “지금 보수혁신과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홍준표 대표의 막말이다. 보수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국민을 등돌리게 하는 막말을 더 이상 인내하기 힘들다”는 내용이다. 홍 전 대표가 “5ㆍ18 망언 하나로 전세가 역전됐듯이, 장외투쟁 목표를 ‘달창’ 시비 하나로 희석시킬수 있으니 잘 대처하시라”고 훈수한 배경에 이 글이 있다는 것이다. ‘보수의 품위’ 운운하며 자신을 공격한 나 원내대표가 막말 시비에 휘말리니 고소했던 모양이다.

□ 여의도는 지금 ‘막말 세상’이다. 상대를 향해 ‘도둑X’ ’썩은 뿌리’ 등의 독설을 퍼붓는 일은 다반사고 여야 지도부에 ’미친X’ ’사이코패스’란 말도 서슴지 않는다. 급기야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에 비유했다가 사과 소동까지 벌어졌으니 갈 데까지 갔다. “미디어 노출이 잦은 정치인일수록 바르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건전한 담론 형성을 선도해야 한다”는 상식은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지지층 결집에만 눈먼 정치리더들이 은연 중 막말을 부추기는 게 더 문제다. 비열하고 자극적일수록 ‘막말 배틀’에서 박수받는 구조다.

□ 구화지문(口禍之門)이요, 설참신도(舌斬身刀)라고 했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는 뜻이다.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쉬운 말도 있다. 말의 무서움을 경계한 선인들의 지혜이자, 입으로 먹고사는 정치인이면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 할 경구다. 그러나 정치권의 막말이 사회적 지탄 대상이 된 지금도 여야는 네탓 공방에 바쁘다. 한국당은 “민주당과 일부 언론이 편파적으로 우리 당에만 ‘막말 프레임’을 씌운다”고 불평하고, 청와대와 민주당은 ‘좌파 독재’ 공세에 맞서기 위해 ‘독재자의 후예’ 프레임을 꺼내 들었다.

□ 일본 자민당이 최근 중진들의 잇단 실언으로 곤욕을 치르자 소속 의원들에게 A4 용지 한장 분량의 예방지침을 배포했다. 여기서 의견표명 때 특히 주의해야 할 5가지 사안으로 역사의식과 정치신조, LGBT 등 성적 취향, 병과 고령, 사고나 재해, 잡담을 꼽았다. 자민당의 실언예방지침이지만 묘하게도 역사부터 질병까지 우리 정치권의 막말 습성을 꼬집는 것 같다. 막말을 훈장처럼 달고다니는 ‘언어 폭력범’을 퇴치하는 최상의 방법은 오래 기억하는 것이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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