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층 사라진 한국정치의 암울한 현실
양당 대결 구조가 적대적 관계 부추겨
국회의원 소환제, 전자국민투표 도입해야
그림 1 의회 정치가 실종됐다. 자유한국당의 보이콧으로 동물국회가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지만, 국회의원 300명은 월 1,140여 만원의 월급을 꼬박꼬박 챙겨간다. 무책임한 국회의원들 손아귀에 들어간 권력을 국민이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진은 18일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장으로 들어가며 시민들의 항의를 받는 모습. 광주=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은 주권재민(主權在民)과 다수결 원리다. 국민의 대표가 국회에서 토론과 협상을 통해 국익에 가장 이로운 정책과 입법을 추진하는 시스템이다. 합의가 안 되면 다수결을 따르는 게 원칙이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이 그런 거다. 국회법에 따른 합법적 절차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지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좌파 독재’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갔다. 그런 반민주적 정당의 지지율이 30% 안팎이라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우리 국회는 오랜 기간 양당 체제로 유지돼 왔다. 국민이 다당제를 만들어줘도 곧 양당제로 회귀했다. 1988년 총선 결과인 4당 체제는 민주자유당의 3당 합당에 따라 민자당-민주당 구도로 바뀌었다. 96년 제3당으로 등장한 자민련도 DJP연합에 흡수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이 강하게 부딪치자 지지율이 동반 상승 중이다. 극단적인 양당 대결이 ‘새로운 정치’를 추구해 온 중소정당의 존립 기반을 흔들며 중도층의 씨를 말리고 있는 것이다.

양당 대결구조에선 집권당이 야당의 협력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정책 집행의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야당 입장에선 지지층을 겨냥한 무조건 반대가 집권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당도 중소정당의 몫까지 빼앗아 권력을 더 누릴 수 있으니 적대적 공생관계가 나쁠 리 없다. 극한 정쟁이 유도하는 정치혐오야말로 중도층을 분산시키고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양당이 정치적 타협보다 적대적 관계를 부추기는데 혈안인 까닭이다.

집권당은 국정 운영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대안적 정치세력인 야당도 정국 파행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문제는 적대와 혐오를 확대재생산하는 대결정치를 제어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점이다. 정당에 정치적 책임을 지우는 방법은 유권자의 심판뿐인데, 지역주의 투표 성향과 맞물린 현행 소선거구제는 민주당과 한국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의원들은 국회 문을 닫고도 매달 1,140여만원의 세비를 꼬박꼬박 챙긴다. 국회일정 보이콧과 장외투쟁이 일상화한 동물국회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 국회가 일을 안 하면 국민이 대신 하면 된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첫째, 전자민주주의 도입이다. 스위스는 시민 5만명이 동의하면 국민투표를 할 수 있다. 연평균 네 차례 기본소득 도입, 노령연금 인상 등 주요 정책을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한국은 IT 강국이다. 위ㆍ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전자투표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유치원 3법 등 민생ㆍ개혁 법안을 전자국민투표로 결정하자. 전자민주주의는 가성비 ‘0’인 고비용 정치구조를 온라인에서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이다.

둘째,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도입이다. 국민은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 국무위원도 헌법상 의무를 위반하면 탄핵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 대표인 국회의원은 임기 4년 동안 ‘깽판’을 쳐도 심판할 방법이 없다. 5ㆍ18 망언으로 국민적 분노를 산 이종명ㆍ김순례ㆍ김진태 의원을 소환해 파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회가 국민 무서운 줄 안다.

셋째, 주인인 국민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극한 정쟁을 유발하는 소선구제를 없애야 한다. 대신 완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50, 60대 남성 법조인과 고위 관료, 부자 중심의 특권층 국회를 여성과 청년과 서민도 골고루 참여하는 ‘국민 닮은 다당제 국회’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거대 양당의 대결 정치를 막고 타협과 조정의 합의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매우 엄중하다. 대통령이 여야와 힘을 합쳐도 헤쳐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치의 본질적 기능인 사회 갈등 조절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에, 거대 양당은 정치적 타협 대신 극한 대결로 치달으며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치 양극화를 계속 방치하다간 나라가 거덜날지 모른다.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막는 제도적 장치를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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