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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캔으로 엘리베이터를”… 엉뚱한 발상이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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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캔으로 엘리베이터를”… 엉뚱한 발상이 현실이 됐다

입력
2019.05.20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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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teel’ 탄생 과정에 함께 한 이들. 왼쪽부터 지현준 DSP 선행개발팀 주임, 전하경 포스코 기술연구원 대리, 정현주 포스코 기술연구원 전문연구원, 김지훈 DSP 전략기획실장, 나상준 포스코 전기전자마케팅실 차장. 홍윤기 인턴기자
‘Superteel’ 탄생 과정에 함께 한 이들. 왼쪽부터 지현준 DSP 선행개발팀 주임, 전하경 포스코 기술연구원 대리, 정현주 포스코 기술연구원 전문연구원, 김지훈 DSP 전략기획실장, 나상준 포스코 전기전자마케팅실 차장. 홍윤기 인턴기자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데 참치 캔을 사용할 수 있을까?’

이 엉뚱한 발상이 포스코가 낸 아이디어와 건축 외장재 생산 중소기업 DSP가 보유한 기술이 만나 현실이 됐다. 참치 캔으로 사용되는 소재인 ‘BP(Black Plate)’가 ‘슈퍼틸(Superteel, Super+Steel)’이란 새로운 상품으로 탈바꿈하고, 유럽 내 유명 엘리베이터 회사에 판매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년 정도. 황당하면서도 참신한 발상이 현실이 되는 과정을 15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만난 포스코, DSP 관계자들에게서 들어봤다.

 ◇포스코 “사장되는 제품에 생명력 불어넣어야” 

지난해 초 포스코 전기전자마케팅실로 과제가 하나 던져졌다. ‘석도원판‘이라고도 불리는 BP의 새로운 수요를 개발하라는 어려운 숙제였다. BP는 석도강판으로 가공한 후 참치 캔과 같은 금속 캔으로 쓰이는, ‘낯설지만 알고 보면 익숙한’ 원자재 중 하나다. 포스코는 1977년 첫 생산 이후 현재 연간 50만톤 정도의 BP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플라스틱 용기와 알루미늄 캔 공세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상준 전기전자마케팅실 차장은 “알루미늄 단가가 계속 떨어지고, 플라스틱 용기가 기존 금속 캔 자리를 차지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포스코 기술연구원이 조력자로 나섰다. 마침 기술연구원은 비슷한 신규 상품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특유의 광택감과 튼튼함을 무기 삼아 고급 건축 외장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테인리스에 증착(蒸着ㆍ진공 상태에서 금속 표면에 코팅을 하는 기술) 공법을 더해 또 다른 최고급 제품을 생산해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계속된 테스트에도 원하는 품질의 제품은 나오지 않았다. 고가인 스테인리스에 고도 기술인 증착 공법을 적용해 생산한 제품 가격을 시장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정현주 기술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번쩍 머리에 떠오른 게 BP였다”며 “BP를 가공한 석도강판에 ‘나노 세라믹 코팅(세라믹 성분을 나노미터 수준으로 잘게 쪼개 코팅하는 기술)’을 사용한다면 스테인리스 못지 않은 대체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이었다”고 밝혔다. 최고급 프리미엄 시장에 내놓을 제품 대신, 한 단계 낮은 가격의 원자재에 조금은 비용이 덜 들어가는 공법을 사용해 가성비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DSP “시장 확대 차원에서 도전해볼 만“ 

마침 독보적인 나노 세라믹 코팅 기술을 가진 곳이 있었다. 스테인리스 등 가전이나 건축 외장재를 생산하는 DSP는 당시 연간 200억원 정도 매출을 올리며 선전하고 있었지만,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김지훈 DSP 전략기획실장은 “스테인리스로 만든 외장재가 워낙 고급이라 시장 규모에 한계가 있었다”며 “포스코의 제안에 스테인리스를 찾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가성비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석도강판이 가진 얇은 두께(최대 0.6㎜)와 이로 인해 외부 충격에 취약한 단점을 보완하는 게 우선이었다. 스테인리스 특유의 광택감도 필요했고, 고객이 원하는 여러 가지 색깔도 연출해내야만 했다. 스테인리스와 최대한 비슷하되 가격은 훨씬 저렴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실패와 실험, 품질테스트가 1년간 계속됐고, 드디어 슈퍼틸이 탄생했다.

DSP는 이달 초 독일계 엘리베이터 제작사인 티센크루프코리아로부터 신모델 엘리베이트용 슈퍼틸 제품 주문을 받는데 성공했다. 전하경 포스코 기술연구원 대리는 “이용객들의 잦은 손길과 반복되는 약품 청소를 기존 스테인리스만큼 견디지 못한다면 주문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지훈 DSP 실장은 “슈퍼틸은 무엇보다 가격이 스테인리스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면서 “참치 캔을 만드는 BP가 스테인리스를 대체하는 상품이 될 것으로 누가 생각을 할 수 있었겠냐”고 말했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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