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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의 동물에 대해 묻다] 굴 파며 무리 생활하는 미어캣, 집에서 키우면 스트레스 받아요

입력
2019.05.17 15:00
수정
2019.05.17 21:0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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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강시민공원에 미어캣 2마리가 사람들과 개에 둘러싸여 있다. 이형주 제공
서울 한강시민공원에 미어캣 2마리가 사람들과 개에 둘러싸여 있다. 이형주 제공

지난 주말 반려견과 함께 한강시민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잔디밭에 둥글게 모여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사고라도 났나 싶어 다가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남성이 개 가슴줄을 채운 미어캣 두 마리를 데리고 있었다. 시끄럽게 떠들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다가가 냄새를 맡으려는 개들에 둘러싸인 미어캣 두 마리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한 마리는 필사적으로 땅을 파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그 자리를 피해 도망가려는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자 주인은 ‘인터넷에서 분양 받았다’고 대답했다.

야생동물이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양서류, 파충류가 인기를 끈지는 오래 됐고 이제는 라쿤, 미어캣 등 포유류 동물까지 인터넷을 통해 애완용으로 거래되고 있다. 야생동물카페, 체험ㆍ이동동물원에서도 전시뿐 아니라 동물 번식과 분양을 겸하고 있다. 어웨어가 2018년 발간한 체험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업체 중 절반에서 동물을 판매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은 반려 목적으로 개인이 집에서 사육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남아프리카에 분포하는 미어캣은 굴을 파는 습성이 있는 동물이다. 굴을 파기에 적합하도록 앞발에 길고 구부러진 강한 발톱이 있고 반달 모양의 귀도 굴을 팔 때는 흙이 들어오지 않도록 닫을 수 있다. 또 10마리에서 많게는 50마리까지 무리생활은 하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무리 내에서 서열이 있고 동물이 먹이활동을 하는 동안 다른 동물은 보초를 서는 등 체계적인 협동 생활을 하는 놀라운 동물이다.

영국 수의학전문지인 벳타임즈(Vet Times)에 실린 미어캣의 사육과 질병관리에 대한 자료에서 동물원 전문 수의사들은 미어캣의 습성 상 ‘애완동물로 적합하지 않다’고 기술하고 있다. 파괴적이고, 냄새로 영역 표시를 하고, 자주 공격적으로 물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굴을 파는 습성 때문에 감금상태에서 적합한 사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미국동물원수족관연합의 미어캣 사육관리 매뉴얼에도 사육장 형태, 온도 조절, 질병관리에서 행동풍부화까지 제공해야 할 조건이 상세히 명시돼 있다. 스위스 동물보호조례에서도 미어캣에게는 굴을 팔 기회와 난방 장치가 설치된 야외방사장을 필수로 제공하도록 돼 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미어캣. 이형주 제공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미어캣. 이형주 제공

전문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야생동물을 사육할 경우 동물은 종 특성에 맞지 않는 사육환경과 영양공급, 충분하지 않거나 부적합한 사회적 접촉, 감금 스트레스 등으로 고통을 받는다. 소유자 입장에서도 동물에게 공격성이 생기는 등 관리가 어려운 반면 사육 정보는 얻기 어려워 유기 충동을 쉽게 느낀다. 그래서 유럽연합, 미국,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는 반려 목적으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동물과 소유를 금지하는 동물을 법으로 정해 놓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멸종위기종만 아니면 개인이 동물을 소유하는 데 제재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동물원ㆍ수족관이 아닌 곳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누구나, 어디에서나, 어떤 종의 동물이나 키워도 되는 현재 상황이 계속된다면 ‘야생동물 관리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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