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단거리 미사일 사격 연습 수준 군사 훈련 지속할 가능성
“모호한 ‘적대 행위 중지’ 제약 피할 수 있는 공간 확보 시도”
북한이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 타격 훈련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공개한 훈련 모습으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추정되는 발사체가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한국국방연구원 주최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의 ‘안보학술 세미나’가 열린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이 기조강연자로 나섰다. 그가 공개 강연을 한 건 지난해 9월 퇴임한 뒤 처음이다.

송 전 장관이 강조한 건 6ㆍ25전쟁이 일어난 1950년대와 지금은 다른 시대라는 사실이다. 그는 “(1950년대) 당시는 2차 대전이 끝나고 공산주의 팽창으로 냉전이 막 시작된 때였지만 80년대 말, 90년대 초 소련의 개혁ㆍ개방으로 냉전이 종식됐고 이제는 평화 공존 시대”라며 “냉전 체제 때는 체제 유지를 위한 전쟁 공포심이 유지돼야 했던 만큼 우리 국민과 군이 전쟁 트라우마를 계속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트라우마를 군과 국민이 걷어내야 하는 시기”라고 주장했다.

이어 “1950년대 최빈국이던 한국은 이제 선진 강국으로 발돋움했고 중진국 북한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며 “트라우마 없이 자신 있게 역사를 개척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역설했다. “과거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주체사상에, 김정은(국무위원장)은 자유민주사상에 접근해 있다는 것 역시 달라진 점”이라고도 했다.

이런 시기에 남북 간 전방위 협력이 본격화하려면 긴장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송 전 장관의 인식이다. 그는 “상호 신뢰를 구축해 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 분야 협력을 견인하려면 남북 군사합의서는 꼭 이뤄져야(이행돼야) 한다”며 “몇 년 후일지 모르지만 그 합의서가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합의서였다고 평가 받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송 전 장관은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과 함께 합의서에 서명했었다.

하지만 서명된 지 고작 8개월 만인 지금 남북 군사합의는 벌써 형해화(形骸化) 위기다. 북한 입장에서 장기 교착 조짐이 뚜렷한 대미 핵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어느 정도의 긴장 형성이 필요하고, 이는 합의 취지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실제 단거리 미사일 추정 발사체가 동원됐던 5월 초 두 차례의 ‘화력 타격 훈련’으로 북한의 의도가 가시화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황일도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근 보고서에서 “모호한 영역으로 남아 있는 남북 군사합의의 적대 행위 중지 약속과 관련해 가능한 최대치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황 교수에 따르면 앞으로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 사격 연습 수준의 군사 훈련을 계속 이어갈 공산이 크다. 미측과의 암묵적 합의에 따라 핵 협상 돌입과 함께 중단된 핵 실험 및 중ㆍ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남북 군사합의에 명확히 규정돼 있는 군사분계선 인근의 연습을 제외하면 다른 군사 훈련은 핵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가능하다는 게 북한이 나름대로 설정한 규칙이라고 황 교수는 설명한다.

러시아산 지대지(地對地) 탄도미사일 ‘이스칸데르’의 개량형으로 추정되는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들고 나온 것도 고도의 계산이 깔린 행위일 수 있다는 게 황 교수 짐작이다. 단거리 미사일의 경우에도 전략군사령부 관할 하에 미군의 전시 증원을 차단하는 핵 탄두 투발용으로 활용하는 훈련을 진행해 온 과거와 달리 최근 훈련에서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이 전략 무기로 보일 법한 표지들을 전부 지웠다.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전략 무기로 활용 가능한 무기체계를 전술 무기로 분류하는 나름의 규칙을 강제하면서 남측도 유사한 무기(‘현무-2B’ 탄도탄)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상 훈련으로 인정하고 감내하든지 이를 인정하기 싫으면 지난해 이후 규모를 축소해 진행 중인 한미 연합 군사연습을 완전히 중단하든지 택일하라는 요구”라는 게 황 교수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북한판 이스칸데르’는 군사적 위협으로서의 미사일이라기보다는 서로 감내해야 하는 훈련의 수준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는 수단으로서의 미사일이라는 것이다.

당분간 북한은 대화 국면에 자기들의 군사 행동을 제약하는 남북 군사합의의 의미를 가급적 축소하려 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전망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북측의 이런 기류가 군사합의 준수 요구의 필요성을 증명한다고 황 교수는 강조한다. 그는 “남북 군사합의는 핵 협상의 장기화 과정에서 남북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을 촉구하는 등 북측을 압박할 제도적 수단으로 합의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보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도 최근 보고서에서 “대화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올해에도 북한군의 대규모 행사들이 다수 생략되겠지만 대신 김 위원장의 군부대 방문이나 훈련 지도는 늘어날 수 있다”며 “북한의 계속되는 군사 활동에 침묵한다면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오판할 소지가 없지 않다”고 경고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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