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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영 선생 외손녀 등 발품 팔아 기록 발굴… ‘사슬이 풀린 뒤’ 등 전집 6권으로 복간도

입력
2019.05.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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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영 선생의 자손들이 고서적을 뒤져 모아놓은 선생의 생전 저작물들. [저작권 한국일보]
오기영 선생의 자손들이 고서적을 뒤져 모아놓은 선생의 생전 저작물들. [저작권 한국일보]

자손에게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월북 언론인, 그리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라고 조심조심 전해 들은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야기. 이 사연들이 책으로 다시 살아나고, 세상에 알려지면 자칫 후손들이 빨갱이라는 프레임에 묶여버릴 수 있다는 걱정은 당연했다. 오기영 선생 일가의 독립운동기가 알려지고, 오기만 지사와 강기보 지사(오기영의 매제로 독립운동 후 옥고로 1935년 순국)가 마침내 서훈을 받기까지 자료를 발굴하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되살린 후손들의 스토리는 일가의 독립운동기만큼 울림이 깊다.

“오기영 선생의 ‘사슬이 풀린 뒤’를 복간하기 위해 2001년 선생의 유족에게 연락을 했어요. 제주에서 올라온 막내딸 오경애씨 등 가족들이 질문을 쏟아내더군요. 55년 동안 꼭꼭 숨기고 살았는데. 이 사람을 어떻게 알아냈느냐. 거의 신문을 당했어요.”

당시 성균관대출판부에서 ‘사슬이 풀린 뒤’ 복간을 준비하던 백인욱씨는 책을 다시 펴내 오기영 선생 일가의 이야기를 세상에 끌어내려는 시도에 유족들이 적잖이 우려를 쏟아냈다고 말했다. 비록 80년대 중반 책이 해금되어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2000년대 초반 아직 월북 독립운동가 집안에 대한 사회의 벽이 두껍고 높은 시절이라 두려움이 컸다. “그나마 대학출판부가 발간을 한다고 하니, 유족들이 걱정을 덜었어요.” 책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3년. 오기만 지사에게 애국장이, 그리고 2007년엔 강기보 지사에게 애족장이 서훈됐다.

사실 오기영 일가의 독립운동기가 ‘사슬이 풀린 뒤’의 복간으로 알려져 이들의 업적이 정부의 서훈으로 평가받기까지 오기영 선생의 외손녀 김민형씨(한국외국어대 지식콘텐츠학부 교수)의 공이 가장 컸다. 대학생 시절인 1996년 처음으로 어머니 오경애씨로부터 외할아버지 오기영 선생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다짜고짜 선생이 일했던 동아일보사를 찾아갔다.

“할아버지(오기영)가 월북했고 옛날 동아일보 기자였다. 어머니가 자백처럼 말씀했어요. 경복궁을 갔다가 동아일보사로 무작정 찾아갔어요. 할아버지 이름을 검색하니 책 4권이 뜨더군요. 인터넷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절이라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반쪽씩 복사하면서 단숨에 읽었어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어요. 오기만 할아버지 관련 기록을 옛날 신문기사들을 뒤져가며 찾았죠. 재판기록, 병보석 내용 등 팩트를 조각 찾듯이 모았어요. 2001년 ‘사슬이 풀린 뒤’ 복간을 위해 성대출판부에 가선 ‘내가 찾을 수 있는 건 다 찾았다’고 말했어요.”

[저작권 한국일보] 오기영 가족의 독립운동 행적-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오기영 가족의 독립운동 행적- 송정근 기자

오기영 선생 일가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 나선 김씨의 노력은 어른들의 우려에 부딪혔다. 김씨의 어머니 오경애(오기영 선생의 딸)씨, 그리고 오기영 선생의 두 번째 부인 김정순 할머니(1947년 결혼ㆍ2010년 작고)는 두려움을 드러냈다. 오기영 선생의 월북 후 돌쟁이 딸(오경애)을 들쳐 업은 채 성동경찰서로 불려 다니던 김정순 할머니는 “무서운 일인데 조심해야 하지 않겠냐”고 걱정을 털어놨다. 오경애씨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죠. 어머니가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책을 다 없애고 사진도 버렸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책(사슬이 풀린 뒤)이 복간되고 서훈이 이뤄지면서 김씨를 비롯한 자손들의 독립운동기 발굴에는 힘이 붙었다. 오경애씨와 남편 김한주씨는 김민형씨가 모아오는 자료를 검수하고, 복간하는 책의 교정을 챙기고 전국 고서점을 뒤져 오기영 선생의 저작을 사 모았다. 독립운동 자금을 오기만 지사에게 전달했던 김명복 할머니의 공훈을 인정받기 위한 작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최근 유족들의 노력이 다시 한번 결실을 보았다. 오기영 선생이 생전에 남긴 책들과 저작물을 모두 전집(동전 오기영 전집ㆍ6권)으로 복간(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해낸 것이다. ‘사슬이 풀린 뒤’를 비롯해 ‘민족의 비원’, ‘자유조국을 위하여’, ‘삼면불’ 등 책과 그가 쓴 기사들로 이뤄졌다.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편찬위원장을 맡았고, 김민형 교수도 편찬위원으로 출간에 참여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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