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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있다? 없다?

입력
2019.05.15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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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 대담 질문 ‘무례’ 뒷말 무성하나

공격적으로 국민 궁금증 해소가 기자 역할

매일 인터뷰하는 양, 비판에 귀 기울이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사회자인 송현정 KBS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사회자인 송현정 KBS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 초기인 작년 3월, 1기 내각의 한 사회 부처 장관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당시 현안을 나열한 사전 질문지를 장관실에 전했다. 어떻게든 ‘기삿거리’를 끌어내려고 꼬리를 물며 점층식으로 진행될 현장 인터뷰에 대비한 참고자료일 뿐이었다.

장관실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 왔다. 청문회도 아니고 민감한 현안을 꼬치꼬치 캐묻는 이런 인터뷰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장관이 상당히 불쾌해한다는 것이었다. 몇몇 질문은 빼고, 정책을 홍보할 수 있는 몇몇 질문을 해달라는 ‘요구’가 뒤따랐다. 인터뷰는 취소했다. 묻고 싶은 걸 물을 수 없는,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려는, 그런 인터뷰를 언론이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2주년 대담을 두고 뒷말이 많았다. 도마 위에 오른 건 문 대통령의 답변이 아니라, 대담을 단독 진행한 송현정 KBS 기자의 질문이었다.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독재자‘ 같은 표현을 대통령에게 무례하게 들이댔다는 것, 대통령의 답변 도중에 거침없이 끼어들어 말을 끊었다는 것.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물론 여당 의원과 내각 인사까지 가세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면 아마 바로 반격했을 것”이라 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신문의 문자는 들을 문(聞)자인데 많은 기자들은 물을 문(問)자로 잘못 아신다”고 쏘아붙였다.

취임 2주년을 맞아 대담 방식의 인터뷰를 택한 건 문 대통령이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모든 매체의 기자들을 모아 놓고 회견을 하는 ‘공평한’ 방식이 아니라 KBS를 콕 집어 단독 대담을 하겠다고 나선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전문가 패널들을 배석시킨 것도 아니고, 1명의 사회자와 단독 대담을 택함으로써 편향성- 그것이 친 정부적이든 반 정부적이든- 우려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도 나는 대담 방식에 큰 장점이 있다고 봤다. 질문에 답을 하면 그것이 성에 차든 안 차든 다른 기자의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지금까지의 기자회견 방식은, 꼭 듣고 싶은 답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인터뷰는 다르다. 답변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곁길로 샌다면 더 공세적인 질문을 통해 점층적으로 얘기를 끌어낼 수 있다.

하고 싶은 얘기만 들을 요량이라면 굳이 대담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 내용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팝업창으로 띄워져 있는 ‘문재인 정부 2주년 특별 페이지’만 봐도 충분하다. 제한된 시간에 국민들이 정말 듣고 싶은 답변을 사회자가 대신 끌어내기 위해선 까칠한 질문과 진행은 불가피했다고 본다. 송 기자의 정치적 성향은 모르지만,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달X’ ‘문노스’라며 연일 문 대통령과 지지자들에게 악의적인 막말을 쏟아내는 것과는 분명 다른 지점이다.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기자들의 질문지를 사전 입수해 각본대로 진행됐다는 논란이 일었던 것도, 준비되고 조율된 답변은 굳이 들을 이유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기자라고 모든 무례함이 용인될 순 없다. 갖출 예는 마땅히 갖춰야 한다. 그래도 권력에 대해선 용인 범주가 다르다. 권력자는 일반 국민들이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헬렌 토머스가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I don’t think there are any rude questions)”고 말한 것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건 그가 사회부나 경제부 기자가 아니라 50년간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백악관 전문기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다행히도, 문 대통령은 “좀 더 공격적인 공방이 오갔어도 괜찮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의례적인 말이 아니었으면 한다. 간헐적인 인터뷰나 기자회견에서만 그 공격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매일매일 ‘무례한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양, 끊임없이 스스로 까칠하게 묻고 답하길, 수용할 건 수용하길 바란다. 모든 비판에 귀를 닫으면 앞으로 3년은 점점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영태 뉴스3부문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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