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동자승 단기출가 보리수 새싹학교 삭발·수계식'에서 한 동자승이 삭발식을 마치고 이어진 행사에서 졸음을 이기지 못해 잠들어 있다. 서재훈 기자

요즘은 춘곤증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봄이 빠르게 지나가곤 한다. 그래도 어김없는 것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우리 몸이 적응하면서 발생하는 나른함이리라.

춘곤증은 아니지만, 성인(聖人)들에게도 낮에 자는 제자에 대한 엄혹한 훈계가 기록된 대목이 있다. ‘논어’에서 공자에게 가장 이쁨을 받는 제자는 천재적인 두뇌와 탁월한 덕성을 겸비한 안회다. 그리고 그 옆에서 스승을 좋아한 일명 ‘공빠’는 언변과 이재(理財)에 밝은 정치가이자 재벌인 자공이다.

‘논어’ ‘공야장’에는 공자가 자공에게 “스스로 안회와 비교하면 누가 더 나은가?”라는 잔인한 질문을 던지는 대목이 있다. 이때 자공은 넉살 좋게도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둘을 알 뿐”이라고 자부심 있는 받아침을 한다. 그러자 공자는 “그렇다. 자네는 안회만 못하지.”라는 쐐기(?)를 박는다.

요즘 같으면 교육자로서 자질이 의심스러울 정도지만, 이는 동시에 두 사람이 얼마나 친밀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실제로 자공은 공자가 73세로 영면에 들자, 다른 제자들과 함께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그리고는 다른 제자들이 떠나자 다시금 3년간 시묘를 더 살았다. 자공의 시묘처는 오늘날까지도 산동성 곡부의 공자 무덤인 공림(孔林) 옆에 ‘자공려묘처’라는 표지석과 함께 보존되어 있다.

그렇다면 공자에게 가장 미움을 받은 제자는 누굴까? 그것은 “재여주침”으로 유명한 재여다. 전후 상황으로 보면, 재여는 당시 공부한다고 하고는 낮잠을 잤던 것 같다. 이를 안 공자는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찰기 빠진 무너지는 흙 담장은 손질할 수 없다.’는 저주급 폭언을 날린다. 바꿔 말하면, ‘저런 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정도이리라.

붓다에게도 잠과 관련해서 제자였던 아나율을 질책하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아나율은 붓다의 설법시간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도의 고온다습한 기후와 야외에서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붓다의 설법 속에서, 아나율은 자신도 모르게 그만 곯아떨어진 것이다.

경전에는 이때 붓다가 ‘왜 진리를 찾아 출가했음에도 졸고 있는지를 준엄하게 질책했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이후의 상황은 단순히 이런 정도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해준다. 아나율은 다시는 잠을 자지 않겠다며 수행하다가 실명을 하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종교 기록의 특성상 윤색이 있어서 그렇지, 아마도 당시에는 왕족이었던 아나율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가 남는 독설(?)이 날아갔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인간이 잠을 자지 않아 실명하는 지경에 이르겠는가!

경전에는 이후 실명한 아나율은 마음의 눈이 열려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하늘 눈(천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아나율은 붓다의 10대 제자의 한 분으로 오늘날까지 천안제일(天眼第一)로 불리고 있다. 즉 문제를 극복하고 전화위복을 달성한 셈이다. 아나율은 이후 붓다를 최후까지 따르며, 열반 때 임종을 보고 장례를 집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제아무리 준엄한 질책이라도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았기에 두 분의 관계는 더욱더 견고해졌던 것이다.

재여 역시 ‘선진’편에서, 공문십철(孔門十哲) 즉 공자의 10대 제자 중 한 분으로 언변에 출중한 것으로 등장한다. 재여 또한 스승의 질책을 딛고 일어서는 강력한 멘탈과 맷집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논어’ ‘학이’에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는 말이 있다. ‘허물이 있다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의미다. 두 분의 제자는 스승을 잘 만나기도 했지만, 과즉물탄개를 몸소 실천했던 인물이기도 한 셈이다.

지나가는 봄날의 노곤함 속에서, 우리 모두 과즉물탄개라는 청량한 샤워를 한 번 해보는 것은 어떨는지....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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