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란 싸움이다. 남녀의 육체적 관계와 같은 것이다. 상대를 발가벗기고 자신도 발가벗은 채 서로가 숨기는 것 없이 인격 전부를 걸고 맞서야 한다.”(오리아나 팔라치). 이탈리아 출신으로 ‘전설의 여기자’라 불린 팔라치는 친절하고 외교적인 수사가 넘쳐나는 의례적인 인터뷰를 거부했다. 권력자의 가면을 벗겨 그 이면의 진실을 드러내는 게 인터뷰어의 역할이라 믿었다. 이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를 만났을 때는 머리에 두른 차도르를 찢어버린 뒤 “당신은 독재자가 아닌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 “말로 표정으로 제스처로 ‘나는 당신이 답을 줄 것을 원합니다’라고 간절히 주문한다.” 독일의 유명 정치인이라면 여성 앵커 잔드라 마이슈베르거(53)가 진행하는 토크쇼를 피해가기 어렵다. 그는 치밀한 자료 준비를 통해 상대의 정책과 철학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인터뷰에 임한다. 항상 미소 짓는 표정과 상대를 존중하는 낮은 자세 앞에서 진실을 숨기기는 쉽지 않다. 독일방송 전문가인 강성곤 KBS 아나운서는 “그녀는 설득, 제압과는 거리가 멀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빠지게 하고 마음을 열게 만든다”고 평가한다.
□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특별 대담의 후폭풍이 거세다. 진행자 송현정 기자를 비난하는 댓글과 KBS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이 빗발친다. 이낙연 총리도 “신문의 문자는 ‘들을 문(聞)’자”라며 송 기자를 간접 비판했다. 대통령 반대 세력은 적극 엄호에 나섰다. KBS 출신인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은 “치고 빠지는 ‘현란한 투우사의 붉은 천’을 휘두르는 인터뷰의 정석을 보여줬다”고 극찬했고,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기자가 문빠, 달창한테 공격당하고 있다”고 했다.
□ “기자는 칭찬받는 직업이 아니다.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과 잘되는 것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 나쁜 것과 문제가 되는 것을 고발하는 게 임무이기 때문이다.”(팔라치) 좋은 인터뷰어는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잘 이끌어내야 한다. 때론 답변을 중간에 끊거나 권력자가 불편해하는 질문도 던져야 하는 이유다. 이번 대담이 인터뷰이를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위트와 유머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80분 생방송의 중압감 탓인지 준비한 질문을 소화하느라 허우적거린 느낌이다. 인터뷰어의 역량을 따진다면 모를까, 질문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공격하는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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