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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차 한번 박고 보험금 타 클럽 가자” 2년간 부산 휩쓴 렌터카 사기

입력
2019.05.14 04:40
수정
2019.05.14 08:4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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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범죄, 당신을 노린다] <7> 부산 ‘마네킹’ 보험사기 사건

※사기를 포함한 지능범죄는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더욱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일확천금의 미끼에 낚이는 순간,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지능범죄 시리즈는 매주 화요일 그 덫을 피해가는 지혜까지 전해드립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피라미드식 범죄 확산.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피라미드식 범죄 확산. 송정근 기자

“형사님, 요즘 부산 젊은 아(애)들 사이에서 뭐가 유행인 줄 압니까? 렌터카로 다른 차 박고 보험금 타는 거라예. 보험금 타는 게 하도 쉬워가 안 하면 아예 바보 취급 당한다 안 캅니까. 보험사 직원들만 죽어나간다 카데예.”

2017년 10월 박대수 부산경찰청 팀장(경감)은 알고 지내던 렌터카 회사 직원이 침 튀겨가며 들려주는 얘기에 빙긋 웃기만 했다. 또 무슨 하소연을 하려나 싶었다.

“그런데 들어보이 쌍둥이 형제하고 가(걔)들 친구 한 명하고 해서 3명이 진짜 문제라 카데예. 덩치도 산만한 아들이 문신까지 해 갖고 보험금 빨리 달라꼬 쌩난리를 치는데, 보험사 직원들도 가들만 보면 치를 떤다 안 캅니까.”

박 팀장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덩치 큰 쌍둥이와 그 친구? 박 팀장은 몇 년 전 폭력ㆍ절도 등 혐의로 구속시킨 3명, 일란성 쌍둥이 김모(24)씨 형제와 그 단짝 친구인 박모(24)씨를 떠올렸다. 안 떠올릴 재간도 없다. 어릴 적부터 몰려다니며 온갖 사고를 다 치는 바람에 10대 때 이미 ‘전과 23범’이 됐다는, 부산 남구 일대 최악의 사고뭉치 3인방이었다.

박 팀장은 다음달 12개 보험사 직원들을 부산경찰청으로 소집했다. 아니나 다를까, 보험사들마다 끙끙 앓아대던 그 3명이 남구의 사고뭉치 3인방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3인방의 보험금 청구 내역을 전수 조사하면서 한번 더 놀랐다. 3인방만 잡으면 되겠거니 했는데, 이들 범죄에 연루된 이들이 무려 400여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방대한 보험금 청구 자료를 추적, 정리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부산청은 305명을 형사입건하고, 이 가운데 18명이 구속됐다. 2016년부터 2년반 기간 동안 180여건의 렌터카 보험사기를 저질러 11억 3,000만원의 보험금을 타갔다. 렌터카 보험사기 사상 최대 규모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이 사고들 가운데 경찰에 신고된 건 단 한 건도 없었다.

◇사고뭉치 3인방의 보험사기 입문

김씨 형제와 그 친구 박씨.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단짝 친구였지만, 문제는 우정의 강도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길 걷다 다리 아프면 오토바이 훔쳐 타고, 돈이 궁하면 인터넷에다 가짜 물건 팔아다 돈만 받아 가로채는, 10대 치고는 큰 덩치와 험상궂은 인상을 악용하는 골칫덩이였다. 전과 23범은 그 증거였다.

19살이던 2014년 5월, 이들은 동네 형에게 솔깃한(?) 얘기를 듣는다. “돈 벌고 싶으면 보험사기 함 해볼래?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작은 거부터 해라. 주차할라는 차 뒤에 서있다가 차 움직일 때 손목이나 발을 살짝 대라. 그라고 몸 좀 안 좋다, 병원 간다 하믄 그쪽서 솔찮게 돈 챙기줄끼다.” 일명 ‘손목치기’였다.

공돈 생기려나 싶어 한번 해봤다. 어라, 생각보다 쉬웠다. 차에 살짝 손목을 대고 몇 번 뒹굴었더니 50만~60만원 정도가 손에 떨어졌다. 대신 자주 써먹진 않았다. 비슷한 수법을 반복하면 보험사 직원에게 들킬 우려 때문이었다. 비상금 꺼내 쓰듯 5~6개월에 한 번씩, 조심스럽게 범행에 나섰다. 대신 이들은 고심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손 쉬운 돈벌이를 들키지 않고, 판을 키워, 더 자주 할 수 있을까.

렌터카 보험사기 3인방의 몰고 있는 차량(빨강으로 표시)이 중앙선 침범 차량을 발견하자 일부러 사고를 내기 위해 접근하고 있다. 부산경찰청 제공
렌터카 보험사기 3인방의 몰고 있는 차량(빨강으로 표시)이 중앙선 침범 차량을 발견하자 일부러 사고를 내기 위해 접근하고 있다. 부산경찰청 제공

◇렌터카 보험사기의 시작

그러다 렌터카 보험사기를 떠올렸다. 차 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뿐 아니라 같이 탄 사람들에게까지 보험금이 지급되는 걸 TV에서 봤다. 렌터카에 사람 가득 채워 사고를 내면 머릿수만큼 보험금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보험사기에 입문시켜준 동네 형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그렇다면 차선 변경 차량을 노려보라”고 했다. 차선 변경 중 사고를 내면 변경 차량 운전자에게 과실비율이 더 높게 매겨진다는 점을 악용했다. 잘만 하면 자신의 과실비율을 10%까지 끌어내려 렌터카 회사에 차량 수리비 명목으로 내야 하는 면책금을 토해내더라도 더 많은 보험금을 남겨먹을 수 있다고 했다.

2016년, 이들은 자동차를 빌려 운전자 등 5명을 가득 채우고 차량이 붐비는 대형마트 근처 등을 돌며 갑자기 차선 변경하는 차를 노려 고의로 사고를 냈다. 처음엔 이들도 서툴렀다. 접촉사고가 실제 일어나자 허둥지둥 핸들을 꺾어대는 바람에 렌터카로 주변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경우도 있었다. 어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피해가 커졌다며 보험사는 더 많은 보험금을 내놨다.

가벼운 접촉사고는 금세 익숙해졌다. 사람이 다치는 일도 없었고, 사고를 낸 차량 운전자들은 연신 미안하다 했고, 보험사 직원들은 합의금을 깎으려고만 했지 사고 자체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렌터카 회사도 보험사에서 보험금이 들어오는 이상, 사고를 낸 기록이 있다는 이유로 렌트를 거부하지 않았다.

렌터카 보험사기 3인방이 탄 자동차가 중앙선을 침범한 피해자 차량으로 접근하고 있는 모습. 피해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이다. 부산경찰청 제공
렌터카 보험사기 3인방이 탄 자동차가 중앙선을 침범한 피해자 차량으로 접근하고 있는 모습. 피해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이다. 부산경찰청 제공

걸림돌은 딱 하나였다. 5명만 계속 사고내면 추적당할 수 있으니, 사람을 겹치지 않게 해야 했다. 3인방은 친한 친구나 선ㆍ후배는 물론, 학창시절 자신들이 괴롭혔던 사람들까지 차에 태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의 통장에 보험금이 들어오면 수고비 명목으로 5만~10만원 정도 남겨두고 3인방에게 나머지 금액을 보냈다. 3인방은 이렇게 동원된 동승자들을 ‘마네킹’이라 불렀다. 마네킹 모두에게 수고비를 준 건 아니었다. 그 중 만만한 사람에겐 밥 한번 사고 말았다. 껄끄러운 이들에게 3~4배씩 수고비를 쥐어주기도 했다.

◇범죄의 업그레이드 … 중앙선 침범 차량을 노려라

해가 바뀐 2017년, 3인방은 ‘범죄의 업그레이드’에 나섰다. 이왕 낼 사고, 상대방 운전자 과실이 100%인 ‘중앙차선 침범 차량’을 겨냥했다. 갓길에 자동차가 줄지어 주차된, 양방향 1차로 도로를 범행 장소로 삼았다. 주차된 차를 피하려면 어쩔 수 없이 중앙선을 넘어야 하는 차량들이 목표였다.

또 한가지. 사고가 나면 이들은 치료비가 비싼 한방병원을 찾았다. 한방병원에 입원하면 보험사가 합의금을 더 챙겨준다는 정보를 이용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박대수 팀장은 “한방병원에 일주일만 입원해도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그러면 가해자 보험료도 덩달아 뛴다”며 “이 때문에 보험사는 합의금을 빨리 주고 하루라도 빨리 퇴원시키려 한다는 점을 노렸다”고 말했다.

보험사기는 쉬웠으나, 어려운 건 ‘마네킹 조달’이었다. 주변 사람 다 쓴 끝에 페이스북 등에 광고를 올리기도 했다. 쉽게 공돈 버는 줄 알고 왔다가 보험사기인 걸 알고 꺼려하면 차에 타는 건 기존 멤버가 하고 그 사람의 명의만 빌리기도 했다. 3인방은 사채업도 좀 했는데, 빚을 못 갚은 이들을 강제로 태웠다.

렌터카 보험사기 3인방이 보험사기에 가담할 ‘마네킹’을 모집하기 위해 페이스북 등에 올린 글. 부산경찰청 제공
렌터카 보험사기 3인방이 보험사기에 가담할 ‘마네킹’을 모집하기 위해 페이스북 등에 올린 글. 부산경찰청 제공

◇ ‘범죄’ 아니라 ‘놀이’가 된 보험사기

손쉽게 돈푼 깨나 쥘 수 있는 못된 짓은 금방 퍼진다. 3인방 활약 덕에 렌터카 보험사기 바람이 부산에 불었다. 3인방의 차에 동승했던 마네킹들부터 나섰다. 그들도 조를 짜서 3인방에게 배운 수법 그대로 렌터카 보험사기를 벌였다. “20대 애들이 하룻밤 클럽에 가서 즐겁게 놀고 싶으면 렌터카 빌려 보험사기 저지른다”는 말이 나돌았다. 보험사기는 ‘범죄’가 아니라 ‘놀이’였다.

보험개발원의 보험사고정보시스템을 활용해 피의자별 전체 보험사고 이력을 분석한 결과
보험개발원의 보험사고정보시스템을 활용해 피의자별 전체 보험사고 이력을 분석한 결과

보험사들 사이에서도 3인방에 대한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신고하지 않았다. 보험사기 수사는 수사기간이 길어 보험사는 그냥 빨리 끝내고 싶어했다. 가짜 사고를 당한 사람도 교통사고로 인한 벌점이 동승자 수만큼 더해진다는 점 때문에 빨리 합의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수사도 어려웠다. 신고가 한 건이라도 있으면 그 틈을 파고들 텐데 아무 것도 없었다. 부산청은 12개 보험사와 함께 3인방의 보험금 청구이력을 모두 다 뒤져야 했다. 그 결과물이 400여명의 보험사기 혐의자 명단이었고, 그 가운데 305명을 형사처벌했다. 그저 명의만 빌려준 사람들도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됐다. 이어 200여명이 넘는 보험사기 피해자들의 사고 기록을 삭제하고, 할증된 보험료도 원상태로 깎아줬다.

용의자 380명의 보험금청구 이력을 분석한 자료
용의자 380명의 보험금청구 이력을 분석한 자료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건만 3인방 중 김씨 쌍둥이 형제는 징역 1년6월, 박씨는 2년을 선고 받는데 그쳤다. 박대수 팀장은 “보험사기를 저지른 이를 엄하게 처벌하자는 취지에서 보험사기방지특별법까지 제정됐지만, 현실에선 여전히 강력한 처벌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부산=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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