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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끈질긴 ‘북한 퍼주기’ 논란

입력
2019.05.09 18:00
수정
2019.05.09 19: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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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는 1996년 ‘고난의 행군’ 시기 덴마크 3등 서기관으로 부임한 첫날부터 ‘식량 공작’에 나섰다. “모든 외교관은 조국에 더 많은 쌀과 의약품을 보내기 위해 매진하라”는 외무성 지시 때문이다. 그는 덴마크 정부와 적십자사 등을 돌며 식량 지원을 호소한 끝에 100만달러 분량의 지원을 약속받고는 눈물을 흘렸다. 그날 대사 등 전 직원이 대사관에서 만세를 불렀다. (‘3층 서기실의 암호’)

□ 많게는 주민 30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는 북한 대기근 사태는 1991년 소련 붕괴가 발단이었다. 소련의 원조가 완전히 끊긴 데다 두 해 연속 대홍수가 일어나 식량배급제가 파탄 났다. 당시 경수로 건설을 위해 함경남도 신포군에 파견된 우리 측 외교관은 숙소를 지으려고 소나무들을 베었다가 북한 관리와 대판 싸웠다고 한다. 나중에서야 끼니를 잇는 소나무 껍질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기근이 현재 북한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마당 형성의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당국의 구제를 포기한 주민들이 너도나도 시장에 좌판을 내며 살 길을 찾아나선 게 시장화의 씨앗을 뿌렸다.

□ 지난해 이상 기온과 가뭄 등으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최근 타개책으로 대기근 때의 정책을 다시 꺼냈다. 그중 하나가 ‘풀과 고기 바꾸기’ 정책. 노동신문은 “토끼ㆍ양ㆍ염소를 비롯한 집짐승을 많이 길러야 고기와 젖을 생산할 수 있다”며 “풀 먹는 집짐승 기르기를 군중적 운동으로 벌이자”고 촉구했다. 하지만 북한 경제구조가 배급제에서 시장거래로 바뀌면서 직격탄을 받는 취약계층이나 영ㆍ유아는 백약이 무효다. 자존심 강한 김정은 체제가 오죽하면 국제사회에 손을 벌릴까 싶다.

□ 한미 정부가 대북 식량 제공에 합의한 가운데 ‘퍼주기’ 논란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식량 지원이 북한군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라는 주장은 물론 ‘핵무력’을 가진 북한을 먹여 살려야 하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부터 근 20년 동안 제기되는 단골 레퍼토리다. 쌀이든 비료든 현금이 아닌 현물 지원이고 국제기구의 엄격한 감시로 군사 전용은 불가능하다. 인도적 지원은 유엔의 핵심 가치로 대북 제재 결의안에도 허용토록 돼 있다. 무엇보다 북한 인권을 중시하는 보수 진영의 인도적 지원 반대는 모순이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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