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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트럼프 시대 미국의 소프트파워

입력
2019.05.13 04:40
수정
2019.05.13 11:1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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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9일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의료법 제안 행사에 참석해 대중무역협상, 로버트 뮬러 특검 보고서 등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포토아이
트럼프 대통령이 9일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의료법 제안 행사에 참석해 대중무역협상, 로버트 뮬러 특검 보고서 등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포토아이

트럼프 행정부가 공공외교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공공외교는 외국 대중과 직접 소통하려는 정부의 노력으로 정책입안자가 소프트파워를 구축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요수단 중 하나며, 오늘날 정보혁명이 진행되며 이러한 수단의 중요성이 더욱더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와 포틀랜드 소프트파워30 지수는 트럼프 임기 시작과 함께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윗은 전 세계적인 의제를 제시할 수 있을지 몰라도 흥미를 끌지 못하면 소프트파워를 주지 못한다.

트럼프 옹호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소프트파워는 무의미하며, 군사력과 경제 조치 등 하드파워만이 중요하다고 한다. 2017년 3월, 트럼프 정부 믹 멀베이니 예산국장은 국무부와 미국 국제개발처(USAID)에 대한 재정지원을 30% 가까이 삭감한 ‘하드파워 예산’을 내놓았다.

다행히, 군 지휘부가 그 보단 낫다. 2013년, 제임스 매티스(트럼프 정부의 첫 국방장관)는 “국무부에 충분한 재정지원이 없으면 결국 내가 탄약을 더 사야 된다”며 의회에 경고했다. 헨리 키신저가 지적했듯이, 국제질서에는 하드파워의 균형뿐만 아니라 소프트파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당성도 필요하다.

정보혁명은 매번 큰 사회경제적 및 정치적 결과를 가져온다. 구텐베르크 인쇄기는 15, 16세기 유럽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현재의 정보혁명은 1960년대,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나왔을 때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컴퓨터 성능이 급격히 발전한 데다, 가격도 1970년대 초반에 비해 0.1 % 수준으로 저렴해진 지 오래다.

1993년, 전 세계에 50개 정도였던 웹사이트가 2000년에 500만을 넘어섰다. 이제 온라인 접속자는 40억명이 넘고 2020년에는 50억~60억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며, ‘사물인터넷’은 수십억 개의 장치를 연결하고 있다. 페이스북 사용자는 중국과 미국 인구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이런 세상에서 매력과 설득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라디오와 TV가 공공외교의 주요 수단이었던 때는 먼 과거다. 기술진보는 정보처리 및 통신비용을 많이 감소시켰고, 결과적으로 정보의 홍수로 오히려 주의력 결핍을 초래하는 ‘풍요의 역설’ 현상이 나타났다.

접하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으면 어디에 집중해야 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의 목적은 주의를 끄는 것이다. 평판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졌고 사회적, 사상적 관련성의 영향을 받은 정치적 투쟁은 흔히 신뢰성의 창출과 파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허위정보라도 ‘친구’로부터 받은 것이면 더 믿을 수 있는 정보가 될 수 있다. 2016년 미 대통령선거에 대한 러시아의 간섭을 조사한 특별 변호사 로버트 뮬러의 보고서가 보여주듯이, 러시아는 미국의 소셜미디어를 무기화할 수 있었다.

평판은 세계정치에서 항상 중요한 부분이었고, 신뢰성은 더욱더 중요한 권력 자원이 되었다. 노골적 정치 선전으로 보이는 정보는 단지 ‘차단’당하는 데 그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정보는 국가신뢰도에 대한 평판에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고, 결과적으로 소프트파워를 약화시킨다. 가장 효과적인 프로파간다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점을 이해 못하고 있는 듯 하고, 때로는 미국도 그렇다. 일례로, 이라크 전쟁 당시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죄수들을 미국의 가치관에 맞지 않게 취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의 위선’이라는 씻을 수 없는 인식을 세계에 남겼다. 이후 미국에서 잘 살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의 모습을 반복해서 방영한다 해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는 대통령이 명백한 허위 주장을 ‘트윗’을 통해 쏟아내며, 미국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소프트파워를 감소시킨다. 공공외교 효과의 척도는 관련 예산이나 메시지의 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었는가이다.

위선, 오만, 타인에 대한 무관심, 또는 국익에 대한 좁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국내ㆍ외 정책은 소프트파워를 약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여론 조사에서 미국의 매력이 급격히 감소했다. 또 1970년대에는 전 세계 대다수가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면서 세계에서 미국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아졌다.

회의론자들은 나라들이 어차피 자기 이익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므로 소프트파워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그들은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협력은 정도의 문제이며, 정도는 흡인력이나 거부감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행히 공식 정책 말고 시민 사회의 매력도 한 나라의 소프트파워에 영향을 준다. 해외의 시위대가 베트남전쟁 반전 행진에서 자주 부른 노래는 미국 민권운동의 대표곡 “We Shall Overcome (언젠가 승리하리라)”이다. 이런 경험을 생각해보면, 트럼프 이후 미국의 소프트파워 회복을 기대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긴 하지만, 공공외교에 투자를 늘리는 것도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ㆍ국제정치학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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