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베트남 자동차 산업의 심장에 가다

빈패스트, 5월 27일 시험 생산
현대 아산공장 두 배 규모 부지에 독일 지멘스社 협력해 최신 설비

과거 한국이 1970년대 중반 ‘포니’ 첫 생산을 앞두고 그랬던 것처럼 베트남은 지금 ‘자동차 생산국’ 진입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언론들은 자동차 생산 업체 빈패스트(VINFAST)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며 카운트다운에 들어갔고, 자동차 산업 육성 없이는 지속적 경제 성장이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는 관련 정책들을 쏟아 놓으며 빈패스트를 성공 궤도에 올려 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완성차 생산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빈패스트를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7일 찾았다.

하이퐁 딥씨(DEEP C) 산업단지 내 자리잡은 베트남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 생산기업, 빈패스트를 공중에서 내려다 본 모습. 멀리 바닷가까지 보이는 각 공장들은 설비들을 모두 갖춘 뒤 본격적인 가동을 앞두고 시운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350헥타아르 규모 부지로 웬만한 공단 1개 면적에 달한다. 딥씨 제공
◇ ‘5월 27일 생산 시작’… 자동차산업 진출 선언 21개월 만

‘베트남의 울산’으로 불리는 하이퐁의 딥씨(DEEP C)산업공단에 자리잡은 빈패스트. 빈패스트의 ‘V’자 엠블럼을 형상화한 정문에 선 경비들은 공장으로 드나드는 차량은 물론 출입자에 대해서도 사전 방문 허가 여부를 일일이 확인했다. 한 관계자는 “여느 자동차 공장에서도 이뤄지는 일이지만, 현재 공장 내부는 극도의 보안 속에 생산 준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협력사 관계자들도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구역만 접근이 허용된다”고 말했다.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허가받지 않은 어떤 사진 촬영도 금지된다’는 설명이 따라 붙었다.

본관으로 들어서자 한국, 일본, 독일, 인도 등 각국에서 온 협력업체 관계자들과 직원들이 분주히 오가는 가운데 외부에서 온 이들은 1층에 마련된 베트남 토종 커피숍 ‘하이랜드커피’의 20여개 테이블을 마다하고 계단에 걸터앉거나 서서 업무 담당자들을 기다렸다. 하이랜드커피 관계자는 “이곳 방침상 업무시간에 이곳에 앉아서 커피 마시는 것은 금지된다. ‘테이크 어웨이’만 가능하다”고 했고, 현지 한 관계자는 “낮은 노동생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 생산기업, 빈패스트의 본관 로비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협력과 관계자들이 분주히 드나들고 있다. 시험생산(PP) 날짜, 본생산(SOP) 날짜와 함께 각각의 D-Day 표시돼 있다. 하이퐁=정민승 특파원

로비 정면 상단에는 ‘세계를 향해’ ‘2019년 5월 27일 시험생산(PPㆍPilot Production)까지 20일’ 등 완성차 생산 개시를 앞둔 엄숙한 다짐들이 걸려 있었다. 본격적인 생산 라인 가동 시점 외에도 자사 제품이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시험생산과 관련, 빈패스트 관계자는 “본격적인 생산에 앞서 공장 근로자들의 숙련도를 최종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며 “사실상 본격적인 자동차 생산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본생산(SOPㆍStart of Production)인 8월 1일까지 남은 기간은 붉은색으로 ‘86일’을 표시하고 있었다. 시험생산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이 나올 경우 판매용 재고로 잡는 점을 감안하면 생산 시작은 이달 27일로, 공식 출시는 8월 1일로 잡고 있다는 뜻이다. 생산 라인 가동은 지난 2017년 9월 초 빈패스트가 자동차산업 진출을 선언한 지 만 21개월 만이다.

◇ 라인 유지ㆍ품질 우려는 여전

현재 진행되는 일정은 당초 계획보다 무려 3개월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빈패스트 관계자는 “올해 초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호주 등 14개국에 155대의 차량을 보내 안전, 내구성 테스트를 마쳤다”며 “이 정도 규모의 자동차 공장 건설과 생산라인 가동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기록”이라며 자랑했다. 웬만한 공단 하나 크기와 맞먹는 320ha(약 97만평) 부지에 조성된 빈패스트 공장은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현대차 울산공장(150만평)보다는 작지만, 아산공장(50만평)의 두 배 규모다.

지난달 29일 베트남 현지 언론에 포착된 빈팬스트 테스트 차량. 주유구가 야물게 닫히지 않았고, 테일게이트 이음새는 차체와 나란하게 조립되지 못한 상황이다.

설비도 최신 수준이다. 독일 지멘스의 도움으로 구축한 10ha(약 3만평) 규모의 차체 공장 하나에만 설치된 산업로봇이 1,100대에 이른다. 현대차 20년 경력의 한 협력사 관계자는 “최신 설비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한국의 80년대 분위기랑 비슷하다”며 “열정과 설비만으로 좋은 차가 생산되지 않는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같은 우려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달 하이퐁 시내에서 시운행 중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포착됐는데, 테일게이트가 차체와 매끄럽게 조립되지 않은 게 눈에 띄었다. 주유구도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베트남 제조업 수준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외관 품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와 함께 연 20만대가 안 되는 베트남 승용차 시장을 놓고 글로벌 업체들이 각축을 벌이는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팔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협력사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생산되는 GM의 경차 ‘스파크’에 빈패스트 엠블럼을 붙여 판매할 계획”이라며 “한국의 쌍용차와의 협력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저작권 한국일보]베트남 자동차 판매 추이. 그래픽=신동준 기자
◇ 빈패스트, 이젠 한국 기업에 구애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빈패스트는 판매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앞서 주문받은 차량들에 대한 옵션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는 데 이어 최근에는 딜러들을 초청, 상품설명회까지 시작했다.

하지만 빈패스트 성공의 최대 문제는 유럽 브랜드 수준의 높은 가격이다. 독일 엔진과 파워트레인을 이용하는 등 대부분의 부품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 기업 피치에 따르면 베트남은 자동차 부품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자동차 생산 단가가 주변국에 비해 20%가량 높다. 이 때문에 2018년 동남아국가연합(ASEAN) 역내 상품관세가 철폐되면서 상당수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태국과 인도네시아 생산기지에서만 생산물량을 늘렸다. 그만큼 빈패스트와 베트남 정부는 현지 부품 비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편 갈수록 일감이 줄고 있는 한국 자동차 부품업계에 베트남은 신규 공장을 세울 수도 있는 기회의 땅으로 거론되지만, 일부에서는 회의적 평가가 나온다. 베트남 자동차 시장 규모를 봤을 때 수지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빈패스트에 섀시를 공급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후속 차 투자 계획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지금 단계에선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김의중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상무관은 “빈패스트가 자동차산업 진출 선언 이후 사업을 진행하는 도중 단가가 너무 높다는 걸 깨달았다”며 “어떻게든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이어서 여기까지 오긴 왔지만 부품 현지화 비율을 높이지 않고선 경쟁이 되지 않는 만큼 가성비 높은 한국 기업들과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브루노 예스패트 딥씨(DEEP C)산업단지 대표는 “빈패스트에 납품하기 위해 외국 기업의 투자가 잇따르고 있다”며 “시간은 걸리겠지만 하이퐁이 베트남 자동차 산업의 심장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이퐁ㆍ하노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빈패스트 본관 앞으로 베트남 국기, 금성홍기와 함께 빈패스트 사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하이퐁=정민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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