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배가 고파 담요를 뜯어 먹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직접 죽은 아이들을 묻었다.” 국가와 그 대리자들에 의해 강제로 납치된 소년들의 이야기.

이번 주 프란이 선택한 콘텐츠는 선감학원 피해자 구술 기록집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입니다.

1942년, 일제의 ‘부랑아’ 감화정책의 일환으로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 ‘선감학원’이 설립됩니다.‘부랑아’들을 강제로 수용하고 전시 군수물자를 위한 노역에 동원했죠.

해방 이후, 경기도가 선감학원을 운영하게 되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길을 배회하거나, 주소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꾀죄죄한 옷차림을 했거나 듣기에도 모호한 ‘부랑성’과 ‘불량함’을 이유로 아이들은 선감학원에 감금됩니다. 대부분 경찰 또는 단속 공무원에 의해 납치된 까닭에 가족이 실종신고를 하더라도 아이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선감도’에 갇혀 사회에서 지워진 소년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강제노역에 동원되고 밤낮으로 이유 없는 폭행에 시달렸죠.

“이유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때리는 거죠.”, “집에 가는 게 최고의 꿈이었어요.” ‘선감학원’에 수용된 소년들은 끊임없는 구타와 착취,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죽을 힘을 다해 바다를 헤엄쳤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이 섬을 탈출하지 못하고 조류에 휩쓸려 죽거나 관리자에게 붙잡혀 더 심한 고문을 당했죠. 운 좋게 섬을 빠져나온 아이들도 인근 주민들에게 붙잡혀 머슴살이하거나, ‘삼청 교육대’, ‘형제 복지원’ 등의 수용시설에 다시 감금되기도 합니다.

1982년 선감학원이 폐쇄되고, 사회로 떠밀려 온 아이들은 시설 밖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평생 시설을 전전하거나 진짜 부랑자가 되어 거리를 떠돌았죠. 선감학원이 폐쇄된 지 3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금씩 사건이 알려지고, 경기도가 피해자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화 된 것은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선감학원에 납치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피해자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국가는 무엇으로 배상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프란 코멘트

“선감학원 아이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곳에 멈춰 있다”

프란이 선택한 좋은 콘텐츠,

다음 주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현유리 PD yulssluy@hankookilbo.com

정선아 인턴 PD

박고은 PD rhdm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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