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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퇴직연금 시장, 투 트랙이 좋다

입력
2019.05.03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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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00년대 초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개인연금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개인연금은 주로 채권에 투자했고, 심지어 투자회사의 직원조차 주식으로 운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연금에 직원이 70%를 내면 회사가 30%를 지원(sponsor)해 주되, 주식 비중이 30% 이상인 혼합형펀드를 편입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주식의 가치가 모두 없어져도 자신이 갹출한 돈은 살아남는 구조다. 이런 구조가 되니 주식에 30%를 투자하는 데 거부감이 없어졌다. 이후 성과도 좋았다.

2005년에 도입된 퇴직연금은 회사가 지원해 주는 구조처럼 보이지만 후불임금 성격을 갖고 있다.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을 매년 회사가 적립해 주는 데, 근로자들은 이를 회사의 지원이 아니라 자신의 임금을 퇴직을 위해 이연한 후불임금으로 본다. 이러다 보니 그 돈을 투자하기 겁난다. 투자 손실은 자기 돈의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만일 사용자가 한 달 월급 외에 30%를 적립해 주면서 그만큼 투자자산을 보유해야 한다고 하면 거부감이 적을 것이다.

미국의 퇴직연금 401(k)이 그런 구조다. 미국은 퇴직연금 가입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데, 퇴직연금을 가입하기로 하면 근로자 갹출금에 사용자가 추가로 돈을 지원해 주는 매칭(matching) 방식이다. 근로자와 회사의 갹출 비율은 6대 4 정도다. 이처럼 사용자가 지원해 준다는 인식을 갖는 미국의 근로자는 우리나라 근로자보다는 투자자산을 갖는 데 거부감이 적다. 회사 지원이 투자손실의 버퍼(완충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식 투자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적다.

그럼에도 미국은 퇴직플랜을 선택하지 않는 근로자들이 있어서 2009년에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 제도를 도입했다. 특별히 가입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퇴직연금에 가입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금융상품도 자동으로 선택되어야 하기에 디폴트 옵션 금융상품이 있는 것이다. 디폴트 옵션 상품에는 TDF(Target Date Fund), 자산배분 펀드 등 투자상품이 들어 있다. 미국은 퇴직연금 가입과 금융상품 선택이 패키지로 묶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은 금융상품 선택에만 해당된다. 어떤 금융상품을 택하겠다는 의사 표시가 없으면 자동으로 금융상품이 선택되는 것이다. 미국은 65%가 디폴트 옵션을 택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거의 없다. 그래서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도 디폴트 옵션을 정비하고 여기에 투자상품을 넣어야 한다는 논의들이 많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퇴직연금 갹출금을 오롯이 자신의 임금으로 보는 우리나라에서, 그래서 손실 위험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디폴트 옵션에 미국처럼 투자상품이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TDF는 경우에 따라서 주식의 비중이 90%를 넘는 상품이다. 우리나라 퇴직연금 구조에서는 디폴트 옵션 적격 상품에 투자상품을 넣더라도 결국은 손실 위험이 낮은 금융상품이 선택될 개연성이 높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디폴트 옵션에 투자상품을 넣으려는 노력 외에 TDF, 자산배분펀드, 은퇴소득펀드, 일임계좌와 같이 표준화된 투자상품을 잘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가입자가 이들 2~3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건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제도와 투자문화에서 디폴트 옵션은 퇴직연금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키스톤(key stone)이 아니다. 가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표준화된 상품과 이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을 위해서는 ‘디폴트 옵션’과 ‘표준화된 상품’이라는 투 트랙(two track)으로 가야 하는 이유다. 두 말이 장군을 압박하는 양수겸장(兩手兼將) 전략이 필요하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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