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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계 ‘아싸’ 김덕영 “교수가 공부를 해야지, 왜 정치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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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계 ‘아싸’ 김덕영 “교수가 공부를 해야지, 왜 정치를 하나요?”

입력
2019.04.30 16:54
수정
2019.04.30 20:4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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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가 지난 22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김덕영의 사회학 이론시리즈’ 의 1편인 ‘에밀 뒤르케임 : 사회실재론’이다. 이한호 기자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가 지난 22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김덕영의 사회학 이론시리즈’ 의 1편인 ‘에밀 뒤르케임 : 사회실재론’이다. 이한호 기자

이름 석 자가 브랜드인 김덕영(60) 독일 카셀대 교수. 대중에겐 생소할지 모르나, 그는 동료 학자들에게 인정받는 학자다. 국내 이론사회학의 독보적 연구자이기도 하다.

2013년 11월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사회학자 김덕영’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한 일간지에 썼다. “사회는 자연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이론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나라 사회학계는 사회이론 연구자들을 교묘하게 유폐하고 무시한다. 대표적 피해자가 김덕영이다”는 내용이었다. 무명이었던 김 교수의 이름이 한동안 오르내렸다.

6년이 흐른 지금까지 김 교수는 국내 학계에서 여전히 아웃사이더이다. 사회학의 거장인 막스 베버와 게오르그 짐멜을 주제로 쓴 논문으로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하빌리타치온(대학 교수 자격)까지 취득했지만, 한국에선 강사 자리도 구하지 못했다. 이론사회학을 등한시하는 학계의 풍토 때문이다. 학자는 학문으로 말하는 법. 김 교수는 연구로 맞섰다. 서양 사회철학자들의 사상을 다룬 책 30여권을 쓰고 번역하며 ‘김덕영 학파’를 일궈 나가는 중이다.

김 교수는 자신의 평생 연구 주제인 이론사회학을 총정리하기 위해 올해 들어 ‘김덕영의 사회학 이론 시리즈’를 시작했다. 근대 사회학의 창시자인 ‘에밀 뒤르케임-사회실재론’이 첫 번째 편으로 나왔다. 카를 마르크스, 위르겐 하버마스, 오귀스트 콩트 등 이름만 들어도 버거운 거장 13명의 세계를 차례로 조명할 예정이다.

빛은 별로 안 나고 품은 많이 드는 대형 작업이다. 못해도 15년은 걸릴 터다. 선뜻 나서는 학자가 없었던 이유다. 최근 한국일보에서 만난 김 교수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결국엔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싶어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3개월은 독일에서 강의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국내에 들어와 연구에 몰두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론 연구에 김 교수는 왜 생을 건 걸까. “한국 사회학의 이론적 틀을 만들기 위해서”란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보기에 한국의 사회학은 패러다임이나 관점을 제시하지 못한다. 번잡한 통계와 설문조사만으로 채우는 ‘테크닉 학문’으로 전락했다. 그는 “올해가 3ㆍ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이라고 떠들썩했지만 제대로 된 연구서가 나온 게 있느냐”며 “이론과 기초를 다지지 않는 한 학문은 깊어질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김 교수는 연구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정치권에 기웃대는 ‘폴리페서’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잠시 자리를 옮긴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를 거론했다. “막스 베버는 정치가의 덕목으로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의 균형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조국 수석은 지금 자신의 정치 행위에 얼마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요. 뜨거운 가슴만 앞서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학자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따지지 않은 채 해야 한다는 당위만 앞세워 정치 영역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다는 고언이었다. 김 교수는 교수들이 정치권에 진출했다가 학교로 복귀하는 것에 대해서도 “외국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개인보다 집단이 앞서는 구조’를 꼽았다. 국가, 가족, 회사 등 집단 중심 사고가 개인의 가치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면 한국 사회는 교권이 추락했다며 학생들을 비판한다. 김 교수는 “학생들이 어떤 권리를 박탈당해 왔는지에 대해선 왜 주목하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받은 낙태죄 문제도 그간 여성을 주체적인 개인으로 보지 않은 사례다. 김 교수는 “학벌주의, 재벌 중심 경제 등 한국의 고질적 문제들은 개인보다는 집단을 앞세우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가 제시한 해법은 뒤르케임이 강조한 ‘개인 숭배’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주의자라고 하면 자기 것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개인주의를 오해하는 겁니다. 개인을 숭배한다는 것은 나뿐 아니라 타인의 존엄성도 보호한다는 뜻이거든요. 성별, 계급, 집단, 학벌을 떠나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존중할수록 사회는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게 근대 사상의 핵심이죠.”

김 교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분석하는 책도 준비 중이다. 올 하반기에 한국 경제 구조를 해부하는 ‘한국자본주의 정신’을 출간할 계획이다. 김 교수에게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물었다. “정치요? 저는 평생 연구할 주제가 있어서 학계를 떠날 수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공부하기도 모자라요.”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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