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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아름다운 까닭은 단지 밝게 빛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빛나는 별을 아름답게 봐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으면 별은 그냥 가스 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람 역시 별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별의 작품이다. 별은 생명이 필요한 원소를 만든다.

원소만 있다고 생명이 되지는 않는다. 다양한 원자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합되어 생명의 분자를 만들어야 한다.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그리고 핵산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원자들을 마구 쌓아놓는다고 생명의 분자들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기본 뼈대가 있어야 한다. 아미노산이 연결되어 만들어진 단백질도 잘 들여다보면 그 가운데는 뼈대가 있다. 마치 나사선처럼 꼬여 있는 DNA 역시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뼈대에 핵산 염기들이 붙어 있는 형태다. 탄수화물과 지방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석탄과 석유 그리고 플라스틱도 같은 뼈대를 갖는다.

척추판이 이어져서 우리 몸의 뼈대인 등뼈가 되는 것처럼 생명의 원소의 뼈대는 ‘…탄소-탄소-탄소-…’다. 뼈대를 담당하는 원소는 오로지 탄소 하나뿐이다. 탄소에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다랗게 연결되는 능력이 있다. 도대체 이 능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생명의 분자를 이루는 원자들이 결합되는 데는 조건이 있다. 바로 전자를 공유하는 것이다. 서로 결합하려면 먼저 함께 나눌 전자를 내놓아야 한다. 물론 아무 전자나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자는 핵을 둘러싼 여러 껍질에 나누어 분포하는데 가장 바깥 껍질에 있는 전자만 공유할 수 있다. 하긴 안쪽 껍질에 있는 전자는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결합하겠는가?

수소는 한 개의 전자를 내놓을 수 있다. Hㆍ 또는 ㆍH라고 표현할 수 있다. 잡을 수 있는 손이 하나다. 산소는 전자를 두 개 내놓아 ㆍOㆍ가 된다. 잡을 수 있는 양손이 있는 셈이다. 결합이란 손과 손이 맞잡는 것이다. 이것을 공유결합이라고 한다. 수소는 손이 하나뿐이니 결합을 하나만 할 수 있지만 산소는 손이 두 개 있으니 두 개의 수소와 결합할 수 있다. H:O:H처럼 말이다. 이걸 우리는 간단하게 H₂O라고 쓰고 물이라고 읽는다.

수소처럼 손이 하나 있거나 산소처럼 손이 두 개만 있어가지고는 뼈대를 이룰 수 없다. 손이 앞뒤좌우에 네 개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위와 아래에 있는 손으로는 뼈대를 이루고 양쪽에 있는 손으로 다른 원자와 결합할 수 있다. 탄소는 손이 네 개다. 덕분에 생명의 뼈대를 이룰 수 있다.

그런데 비밀이 하나 있다. 사실 탄소보다 산소가 바깥 껍질에 더 많은 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탄소에는 네 개뿐이지만 산소에는 여섯 개나 된다. 손이 여섯 개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양쪽 손을 제외한 네 개의 손은 다른 원자에게 손을 내미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서 두 개씩 손을 잡고 있다. 그래서 뼈대를 이루지 못한다.

산소가 공유하는 정신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다. 산소의 바깥 껍질에는 전자들이 들어가는 방이 각각 네 개씩 있다. 산소는 네 개의 방을 여섯 개의 전자가 나눠서 써야 한다. 어떻게 나눠 쓸 수 있을까? 일단 앞뒤좌우 네 개의 방에 전자가 하나씩 들어간다. 전자가 아직 두 개 남았는데 이젠 빈 방이 없다. 어쩔 수 없다. 앞방과 뒷방에 전자가 하나씩 더 들어가야 한다. 같은 방에 둘이 있으니 손을 꼭 잡고 잘 수밖에… 양쪽 방 전자들만 다른 원자의 전자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탄소 역시 가장 바깥 껍질에는 방이 네 개 있다. 탄소는 네 개의 전자들이 방을 하나씩 쓰면 된다. 앞뒤좌우 방 네 개를 차지한 전자들은 외롭다. 누군가에게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덕분에 탄소는 뼈대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혹시 탄소의 전자들이 각방을 쓰지 않고 한 방에 두 개씩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그런 행위는 원자 호텔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원자 호텔은 일단 각자 방을 하나씩 배정하고 빈 방이 없을 때만 한 방에 전자 하나씩 더 들어가게 해 놨다. 그것도 같은 성질의 전자여서는 안 된다. 하나는 위쪽에 베개를 두고 자는 전자라면 다른 하나는 아래쪽에 베개를 두고 자는 전자여야 한다.

원자의 호텔방을 과학자들은 오비탈이라고 한다. 그리고 먼저 각 방을 채운 다음에 합방을 시키되 결코 같은 성질의 전자가 같은 방을 써서는 안 되는 규칙을 파울리의 배타원리라고 한다. 파울리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단지 그 규칙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일 뿐이다.

배타원리는 인간 사회에도 적용된다. 자기 사람으로 방을 채우면 결합은 이뤄지지 않는다. 방을 비워놓고 생각이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무너지지 않는 세상의 뼈대가 생긴다. 세상은 단순히 사람이 많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과 손을 맞잡을 준비가 된 사람이 많을 때 가능한 것이다.

파울리의 배타원리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보자. 탄소 뼈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도 없다. 별이 아무리 빛나 봐야 소용이 없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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