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한국포럼’ 세션 Ⅱ 패널 토론… 사전규제→사후규율 변화에 공감대 
25일 신라호텔에서 '文정부 3년,3대 허들을 넘어-노동개혁,대기업정책,혁신가지의 충돌' 라는 주제로 열린 2019한국포럼 제2세션 '대기업정책,규제인가 육성인가'에서 김상조(왼쪽 두번째) 공정거래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김 위원장, 야나기마치 이사오 게이오대 교수,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 신장섭 싱가포르대 경제학 교수. 고영권 기자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야 한다. 사전 규제를 사후 규율로 전환해야 한다.”

25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9 한국포럼’ 두 번째 세션 ‘대기업 정책, 규제인가 육성인가’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저성장이 고착화된 한국 경제에서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 평등한 경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행동주의 펀드의 등장으로 화두가 된 ‘주주 자본주의 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논쟁에 대해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우리나라에 맞는 지배구조 모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날 토론에는 주제발표를 한 야나기마치 이사오 게이오대 종합정책학부 교수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 교수가 나섰다. 사회는 이근 서울대 경제학 교수가 맡았다.

 ◇한국의 기업 정책, ‘평평한 운동장’ 만드는 데 힘써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 한국 재벌은 명(明)과 암(暗)을 동시에 갖고 있는 존재다. 명은 한국 사회가 가진 경제적 자원이 매우 제한돼 있던 시기에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해 고도성장을 이끈 동력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대 변화에 따라 과거의 성공이 오늘과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기업의 문제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은 기업 경영(비즈니스)과 지배구조 등 두 가지 측면에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경영 측면의 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한국 경제가 과거와 같은 역동성과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많은 기업에서 ‘3세 승계’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1세대)와 아버지(2세대)는 아무것도 없던 조건에서 성공을 이뤄낸 강렬한 도전정신을 가진 기업가였다면 이미 완성된 왕국에서 태어난 3세대가 이 도전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가 하는 데 대한 우려가 없지 않다.

정부 정책은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가도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기조는 사람중심 경제, 혁신성장, 소득주도 성장 등 세 가지 축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입장에서는 정책을 통해 혁신성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 사회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논의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들은 아직 공정경제가 만족할 만큼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30년 전 만들어진 경제민주화, 재벌개혁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기에 만들어진 잣대가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우리 기업이 돈을 벌기 어려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과거의 방식만 고집하면 개혁은 실패한다. 사전규제 중심의 정책을 사후규율로 바꾸고 공정거래법뿐 아니라 상법과 세법 등 여러 법의 합리적 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국회를 거쳐야 하는 경성 법률(Hard law) 뿐 아니라 모범규준 관행 등 연성 법률(Soft law)을 다양하게 구축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평평한 운동장을 만드는 것이 바로 혁신의 시작이다. 21세기 경제 당국자들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모든 경제정책의 궁극적 목적은 소득창출과 경쟁력 강화, 일자리 창출이다. 현 정부의 대기업 정책이 일자리 창출과 경쟁력 강화라는 기본 목표에 충실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혁신과 공정이 갈등을 겪는 한 예가 승차공유 서비스를 두고 빚어지는 갈등이다. 경쟁당국인 공정위는 이 상황에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면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고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불공정 행위를 일삼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문제가 그렇다면 처방도 행태를 고치는 것에 집중돼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기업 정책은 경영권을 위축시키고 대기업 대주주들의 경제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해법인 양 비춰지고 있다. 지배적 지위 남용, 배임 등 ‘황제경영’은 중견기업, 중소기업에서도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배적 주주가 없는 포스코, KT는 회장이 5년마다 바뀐다. 주인 없는 은행들, 심지어 주인 있는 은행도 정부가 회장 인선에 간섭하는 게 현실이다. 회장이나 사장 선임을 청와대나 정치권력이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외국의 대기업, 해외 투기자본에 우리나라 대기업도 먹잇감이 될 수 있다.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자고 하는 데 동의한다. 국제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국내 규제 때문에 해외에서 불평등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해외에서 90% 매출을 일으키는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위축해서 얻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봐야 한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한국 재벌 규제를 지지하는 보편적인 목소리가 ‘한국의 재벌이 특이하기 때문에 특수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 공감하지 않는다. 왜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기업들에게 규제가 집중되어야 하는가. 성공한 기업의 지배구조가 좋은 것 아닌가. 한국적 경제 논리가 아니라 일반적, 세계적인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센놈’을 때려야 성공한다는 이상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사전규제 대신 사후규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절대적으로 공감하지만 지금 정부는 오히려 사전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전 세계에 협력이익공유제가 어디에 있나. 애플이 협력사인 폭스콘과 이익을 나누려고 하지 않고, 애플이 미국으로 돌아갈 때도 폭스콘을 고려하지 않았다. 순환출자와 상호출자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적으로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 르노와 닛산만 보더라도 두 회사가 상호출자로 묶여 있다. 성공하면 좋은 지배구조인데 왜 정부가 감놔라 배놔라 하는가.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법인의 독립성을 인정해야 한다. 법인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창업정신과 기업문화가 있고 시장에서 경쟁하는 과정에서 커 나간다. 그 자율성을 인정해주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규제를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가정신이다. 기업가는 확률이 낮은 데 투자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높다. 뒷다리만 잡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혁신적 기업이 얼마나 큰 기업으로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있다.

△김 위원장 = 성공한 기업의 지배구조가 좋은 지배구조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기업의 경영 능력은 매우 희소한 경제 자원이다. 그 능력을 갖고 있는 소수의 의사결정권자가 경영 전략을 짤 수 있도록 충분한 재량권을 부여하는 동시에 그 소수의 판단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그 두 가지 목표를 어떻게 이뤄갈 것인가가 지배구조 문제의 본질이다. 외형상 성과가 좋은 기업의 지배구조가 좋은 지배구조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런 기업은 지속가능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협력이익공유제가 등장한 배경은 우리 대기업과 전속 거래를 하고 있는 중소기업간의 하도급 문제를 풀기 위한 것이다. 애플과 폭스컴의 사례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주주 자본주의 vs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바람직한 지배구조 방향은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사회자) =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화두가 있다. 최근 대기업 정책의 흐름인 스튜어드십 코드는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 자본주의를 보면 기업공개(IPO)를 할 때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등 유연한 운영을 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가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중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김 위원장 = 주주자본주의가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인 것처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도 우리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유럽 기업이 특이한 지배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유럽 특유의 문화적 기반과 결합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유럽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흉내내는 것은 또 다른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는 우리의 현실에 맞아야 하고 그 고민은 우리만이 할 수 있다.

△김 의원 = 창업기업과 혁신기업에 대해 창업자의 경영권을 일정기간 보호하기 위한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보호장치에는 정부에서도 공감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함으로써 혁신이나 일자리창출, 경쟁력 강화를 이뤄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개방경제에서 우리나라의 선두 대기업은 국제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에 노출돼 있다.

△신 교수 = 미국에서도 금융자본이 손을 못 대는 기업이 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차등의결권이 있어서 금융자본이 손을 못 댄다. 실리콘밸리 혁신의 원동력은 금융자본이 마음대로 들어가서 경영권을 쥐거나 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이 교수 = 우리나라에 맞는 지배구조 모델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야지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는 것은 좋지 않다. 이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해야 한다.

△김 위원장 = 우리가 고민해야 할 세계경제 변화 중 하나가 과거처럼 무역과 수출을 통해 성장을 이끌어가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수출 중심의 경제성장을 하고 우리 대기업이 주역으로 활동했던 것은 맞지만 과거의 성장 전략이 지금 상황에서 같은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 거시 정책과 산업 정책, 미시 정책이 어떻게 조화롭게 이뤄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 모두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 의원 = 우리나라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이 최근 한계를 맞은 것이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혁신은 개방과 경쟁 속에서 나오는 것이지 보호와 규제 속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기업에 경제적 자유를 허하면 혁신과 창업이 따라올 것이다.

△신 교수 =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 중소기업이 더 줄 수도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중소기업 격차 문제는 대기업을 때려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기업 문제의 초점은 중소ㆍ중견기업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데 둬야 한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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