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사역견, 실험용으로 쓰려면 차라리 안락사하라!

알림

사역견, 실험용으로 쓰려면 차라리 안락사하라!

입력
2019.04.27 04:00
13면
0 0

[동물 그리고 사람 이야기]

검역탐지견으로 일하다 서울대학교 수의대에 동물실험용으로 이관된 뒤 실험 도중 사망한 복제견 메이의 은퇴 전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검역탐지견으로 일하다 서울대학교 수의대에 동물실험용으로 이관된 뒤 실험 도중 사망한 복제견 메이의 은퇴 전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안다는 건 불편한 일이다. 주말에 TV에서 개가 나오기에 잠시 멈춰서 봤더니 경찰견의 은퇴 이야기다. 프로그램은 경찰견의 헌신과 입양 이야기를 화면 가득 눈물을 채워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화면에 나온 개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에잇’ 소리를 내뱉었다. 입 주변 털이 하얗게 센 12살 노견. 마지막 임무라며 주어진 상황에서 경찰견은 앞다리를 들고 쩔쩔 맸다. 퇴행성관절염이나 다쳤던 다리였던 모양인데 저 상태로 지금까지 임무를 수행했던 모양이다. 며칠 전 읽은 신문의 ‘한국 노인들, 건강 다할 때까지 번아웃 노동’이라는 1면 헤드카피가 떠올랐다. 이 나라는 사람이나 개나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

잡지 기자 시절 검역견, 탐지견 등 특수목적견, 안내견 등 장애인 도우미견을 연속 취재했다. 반려견이 아닌 직업을 가진 사역견들이다. 일하는 개답게 그들은 현장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마약을 찾아내고, 생명을 구하고, 인간을 도왔다. 일하는 개들이 불쌍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개가 누구인가, 유일하게 인간과 공진화한 종 아닌가. 개들은 즐겁게 놀이처럼 맡은 임무를 수행했다. 물론 그게 사람들의 화려한 치장처럼 헌신, 충성, 희생은 아니다. 그건 인간의 언어다. 어느 개가 조국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전장에 나가는가, 어느 개가 헌신하는 마음으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인명을 구하는가. 개의 행동은 그보다 더 고귀한, 함께 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우정에서 나온다.

일하는 개들을 취재하면서 우려됐던 점은 노동 강도였다. 대부분 특수목적견의 일정은 빡빡했다. 특수목적견 한 마리를 키워내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다 보니 각각의 노동은 과중했다. 함께 일을 하는 핸들러(운영요원)도 그걸 미안해 했다. 그리고 늦은 은퇴. 개체마다 타고난 수명은 다르지만 대형견인 저먼셰퍼드의 수명이 10살 초중반이니 너무 오래 부려먹었다는 표현이 맞다. 내가 취재했던 개들도 대부분 은퇴가 늦었는데 흰개미탐지견은 무려 13살에 은퇴를 했다. 눈물의 은퇴식이나 그들의 헌신에 대한 홍보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일하는 개들의 복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TV에서 경찰견의 은퇴식이 방송된 다음날 메이 사건이 터졌다. 2013년부터 인천공항에서 검역탐지견으로 5년간 일한 메이는 2018년 3월에 검역견 페브, 천왕이와 함께 서울대 수의과대학 이병천 교수에게 동물실험용으로 이관됐고, 2019년 2월에 사망했다. 2018년 11월에 검역센터에 잠깐 돌아왔다가 일주일 만에 복귀했는데, 당시 사진 속 메이는 갈비뼈가 다 보일 정도로 비쩍 말라 있었고 생식기가 튀어나와 있었으며, 사료를 허겁지겁 먹다가 코피를 뿜기도 했다. 도대체 무엇이 위풍당당하게 검역견 역할을 해내던 메이를 이토록 참담한 모습으로 만들었을까.

사역견의 은퇴 후 삶은 시민의식의 변화에 따라 격변했다. 퇴역한 군견은 보통 동물실험용으로 보내지거나 안락사 됐고, 2011년 국정감사에서는 마약탐지견이 은퇴 후 해부용이나 헌혈용으로 사용되는 현실이 공개됐다. 2012년 동물자유연대 조사에서는 탐지견들이 대학 연구실에 실험용으로 보내진 것이 밝혀졌다. 홍보용으로 언론에 뿌려지는 눈물의 은퇴식과는 사뭇 다른 결말이다. 탐지견 은퇴 후 수의과대학으로 보내져 공혈견(다른 개에 수혈하기 위한 피를 제공하는 개)이 된 엣지는 끝까지 희생하고 헌신하는 개라며 책까지 나왔다. 생명을 도구로 쓰는 걸 부끄러운 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이후 동물보호법의 개정, 사역견의 관련 규정의 개정으로 안락사는 모면했지만 여전히 메이처럼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역견이 많다. 실험동물구조 활동을 벌이는 비글구조네트워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사역견이 실험동물로 쓰이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밝혔다.

이번 메이 사건의 책임자인 이병천 교수는 2년 전에도 식용견 농장에서 개를 데려와서 실험동물용으로 썼다. 당시 제보자는 개 농장에서 온 개들은 난자를 채취 당하거나 복제견 출산을 마친 뒤 다시 개 농장으로 보내졌다고 말했다. 식용견은 ‘어차피 먹을 거니까’ 생명이 아닌 것으로 취급됐다.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의심되고 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복제 연구를 수행하려면 난자 채취, 자궁을 빌려 출산을 할 대리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개식용 산업은 이렇듯 뜻밖의 산업과도 연결되고, 개식용 농장의 개는 생명이 아니라 고기를 만드는 기계, 난자 기계, 자궁 기계가 된다.

대체수의학인 ‘홀리스틱 수의학’을 발전시킨 미국의 앨런 쇼엔은 그의 책 ‘닮은꼴 영혼’에서 1970년대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했을 때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고양이 뇌의 각 부분이 행동 패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를 하는데 연구 대상인 고양이 30마리는 모두 길고양이였다. 뇌의 일부분을 손상시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라서 뇌를 절개하자 저자는 너무 냉혹하다고 말했고 팀장은 일갈한다. “이게 과학이야!”

사역견 복제를 위해서 개식용 농장의 개를 사용하는 21세기 한국의 과학자는 고양이 행동을 연구한다고 길고양이 뇌를 여는 1970년대의 미국의 과학자와 닮았다. 동물 중에서도 더 약자인 개식용 농장의 개와 길고양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는 점, 연구 자체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이 닮았다. 앨런 쇼엔은 현재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미래의 의학이 발달할 것이고 우리는 윤리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이번 메이 사건을 교수 한 명의 일탈로 보면 안 된다. 이 연구를 지원한 정부 기관, 예외 규정을 둬서 사역견의 동물실험을 가능하게 한 허술한 동물보호법, 이 연구에 대해 승인을 해준 있으나마나 한 동물실험윤리위원회 등 든든한 사회적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

검역탐지견으로 일하다 서울대학교 수의대에 동물실험용으로 이관된 뒤 실험 도중 사망한 복제견 메이. 죽기 직전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비쩍 말라 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검역탐지견으로 일하다 서울대학교 수의대에 동물실험용으로 이관된 뒤 실험 도중 사망한 복제견 메이. 죽기 직전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비쩍 말라 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현재 군견, 탐지견, 구조견 등의 사역견은 대부분 국유재산이고, 장비로 등재돼 있다. 요즘 터지는 일을 보면 정말 딱 그 규정대로 대우받고 있구나 싶다. 대부분의 사역견은 고된 훈련과 스트레스 탓에 보통 개들보다 수명이 짧고, 활동 내용에 따라 직업병도 얻는다. 미국에서 마약탐지견으로 활약했던 맥스는 희귀암인 코 암으로 떠나기도 했다.

이런 존재들에게 은퇴 뒤에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미국 UC데이비스에서 동물행동의학을 수련 중인 김선아 수의사는 “일하는 개들의 은퇴 후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평생 일을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임무 없이 사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은퇴하고서도 계속 일을 하려고 하다니, 짠하다. 그래서 재미있을 만한 일을 계속 만들어줄 수 있는 인간의 배려와 공간이 필요하고, 즐거운 노즈워크(후각을 사용하는 훈련), 재미있는 물리치료 등이 제공되어야 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받아 적으면서도 현실감이 떨어졌다. 한국의 사역견은 국가에 헌신하고도 실험용으로 생을 마감하는 마당이라서. 그는 또 일하는 개들이 은퇴 후 제대로 된 환경을 제공받지 못하는 사회라면 차라리 안락사가 윤리적이라고 했다.

복제견이 윤리적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복제된 동물이 각종 질병을 갖고 태어나고 수명이 짧다는 것은 여러 해외 연구 논문에 나와 있다. 그럼에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 끊임없이 복제견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경제 논리로 생명문제를 바라보는 낮은 사회의식 때문이다. 2008년 이병천 연구팀이 암 탐지견의 복제에 성공했을 때도 복제견의 가격이 약 5억원이라는 기사가 났다. 2012년 정부는 특수목적견 양성과제로 복제견 생산을 추진했다. 이후 복제견의 특수목적견 합격률이 높고, 일반견의 생산비용이 1억3,000만원인데 비해 복제견은 비용을 65% 줄일 수 있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복제견의 합격률이 높다는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기도 힘들고, 그렇다 치더라도 언제부터 국가 과제가 윤리를 배제하고 ‘가성비’를 선택 기준으로 택했나.

메이 사건이 터진 즈음 서울대 수의대에는 경사가 있었다. 미국수의사회로부터 교육인증을 받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시아에 위치한 수의과대학이 교육인증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 앞에 마냥 기뻐할 수 있을까. 이번 사건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징계를 진행하고, 더불어 메이와 함께 연구에 참여했던 검역탐지견 페브와 천왕이를 동물보호단체로 보내주는 일이 우선이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