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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자전거 가르치는 아빠 “잊지마, 너만의 페달을 밟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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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자전거 가르치는 아빠 “잊지마, 너만의 페달을 밟는 걸”

입력
2019.04.25 18:00
수정
2019.04.25 21:4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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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전거를 배우는 딸에게 말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너의 안장 뒤를 붙잡고 훈수를 두거나, 아예 페달을 대신 밟아 준다고 나설 수도 있어. 하지만 네 자전거는 너의 페달질로만 가는 거야.”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자전거를 배우는 딸에게 말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너의 안장 뒤를 붙잡고 훈수를 두거나, 아예 페달을 대신 밟아 준다고 나설 수도 있어. 하지만 네 자전거는 너의 페달질로만 가는 거야.” 한국일보 자료사진

처음으로 자전거 페달 위에 발을 올렸을 때를 기억한다. 수능이 끝난 19살의 겨울이었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집 앞 공터에서 허우적대면서 수십 번을 넘어진 다음이었다. 자전거가 휘청휘청, 그러나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던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자전거 타기를 혼자 배웠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서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혼자 해 내야 할 일이 많을 것임을 어렴풋하게 짐작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아빠를 위한 매뉴얼’은 ‘자전거 타기’에 빗대 ‘여성으로서의 세상살이’를 배워 가는 부녀의 ‘자전거 분투기’다. 혼자서 타야만 하고, 스스로 방향과 속도를 결정해야 하며, 때로는 가르치려 드는 수많은 남성들과 맞닥뜨려야 하는 소녀의 자전거 타기는 기울어진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생의 기술을 배워가는 과정과 중첩된다. 평범한 한국 남성으로 나고 자란 저자가 딸을 둔 아빠가 되고서 깨우친 것들을 풀어 놓는 ‘아빠 성장 에세이’기도 하다.

책은 여덟 살 된 딸이 파란색 옷을 입은 여자 피규어를 보고 “아빠, 남자는 파랑, 여자는 핑크야!”라고 외친 날에서 시작한다. 어린 딸이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의 고정 관념을 벌써부터 주입 받았다는 사실은 저자에게 충격이었다. 저자는 ‘자신다움’을 가르칠 방법을 고민하다, ‘자전거 타기’를 떠올린다. 한 번 배우면 절대 잊히지 않는 자전거처럼, 딸이 ‘나다움’을 잊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아빠를 위한 매뉴얼

예신형 지음

부키 발행ㆍ240쪽ㆍ1만 4,000원

책은 자전거 구하기, 연습 장소 물색하기, 페달 밟기 등 7개 단계에 걸쳐 딸이 자전거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에피소드와 함께 들려준다. 여성이 차별 받아 온 역사적 사건과 영화 속 사례, 저자가 실제 겪은 경험 등을 단계마다 자연스럽게 녹여 낸다. “자전거는 남자애들이나 타는 거야!”라고 속단한 딸에게 저자는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따로 있지 않다는 걸 일러준다. 금기를 깬 여성 인물들의 사례를 들어 설득하기도 하고, 연습 공간의 ‘남자용’ ‘여자용’ 표지를 과감하게 떼 버리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딸이 혼자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 순간 저자는 말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너의 안장 뒤를 붙잡고 훈수를 두거나, 아예 페달을 대신 밟아 준다고 나설 수도 있어. 하지만 네 자전거는 너의 페달질로만 가는 거야. 아빠는 너에게서 이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희망을 봐. 그러니 계속해서 페달을 밟으렴.”

숱한 페미니즘 책에서 반복하는 말이지만, 아빠가 딸에게 보내는 응원의 말이라면 다르다. 새삼스러운 감동이 밀려온다. 저자는 ‘딸을 둔 평범한 아버지’라고 자신을 설명한다. 저자 프로필 속 정보는 ‘형제만 있는 집에서 태어나 육군 장교로 복무했고 좋아하는 운동은 미식 축구인 평범한 한국 남자’ 정도가 전부다. ‘딸 바보’를 자처하는 대한민국 아빠들에게 책을 권한다. “나중에 시집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속이 뒤집어져” 같은 소리를 하기 전에 “손을 놓아도 넌 너만의 길을 찾아낼 거야. 너의 속도대로, 가고 싶은 방향으로”라고 말해 주는 아빠가 ‘진짜 아빠’라는 걸 깨우치기를 기대하면서.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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