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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꼭 어떤 의미를 담아내야 하나요?” 박경률 작가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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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꼭 어떤 의미를 담아내야 하나요?” 박경률 작가의 ‘질문’

입력
2019.04.25 15:08
수정
2019.04.25 21:2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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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률 작가의 작품 'For you who do not listen to me'. 백아트 제공
박경률 작가의 작품 'For you who do not listen to me'. 백아트 제공

작가의 말대로 그의 작품엔 ‘시작점’이 없다. 어디서부터 그림을 읽든, 관객 마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 한 폭 안에 여성의 신체, 우물, 확성기, 잎사귀, 큰 따옴표 등 수많은 오브제들이 담겨 있다. 연관성이나 정렬 규칙을 찾긴 어렵다. 누군가의 복잡한 심경을 나타낸 아주 개인적인 작품 같다가도, 오브제들의 면면에 사회적 메시지가 숨은 듯 해 눈길이 오래 머문다.

박경률(40) 작가의 'For you who do not listen to me' 이야기다. 박 작가는 “내 작품엔 특별한 내러티브가 없다”고 말한다. “예술이 꼭 어떤 의미를 담아내야만 할까요? 그림을 ‘해석’하는 전형적인 예술 행위에 의문이 들어요. 제 작품은 저도 모르게 긋는 선과 점으로 뭉친 ‘무의식적 드로잉’ 그 자체예요. 굳이 작품을 위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서 관객들에게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요.” 서울 종로구 백아트에서 박 작가의 개인전 ‘On Evenness’가 열리고 있다.

박 작가는 오랫동안 ‘무의식’을 향한 관심을 키워왔다. 2013년엔 그 답을 찾으려 치매 노인들과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특정 기억과 자각이 사라진 치매 노인들을 오랜 기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 보게 했다. “규칙이나 논리가 없는 그림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어서 놀랐죠. 기승전결이 명확했고 논리성도 있었어요.” 박 작가는 ‘무의식’을 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기로 했다. 기억과 경험에서 나오는 직관적이지만 꽤 논리적인 이미지, 그리고 이를 이해하는 관객만 있다면 굳이 그림에 내러티브를 부여해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경률 작가의 작품 'Her point and line to plane'. 백아트 제공
박경률 작가의 작품 'Her point and line to plane'. 백아트 제공

박 작가의 작품 분위기는 몇 년 전 영국 유학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오브제의 세부적 디테일보다 선과 여백 표현에 더 공을 들이고, 입체감보단 평면적 유화의 느낌을 강조하게 됐다. 유학 기간 중 심하게 다치는 사고를 겪은 뒤 “그림 그리는 도구로서의 신체”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기 때문이란다. 그는 “오래 앉아있기 힘든 탓에 불필요한 과정을 하나 둘씩 없앴다”며 “대신 선과 여백을 더 많이 활용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변하지 않은 건 특유의 오묘한 색감이다.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파랑, 분홍부터 쨍한 연두, 빨강까지, 그의 색 표현 폭은 넓기로 유명하다. 박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다양한 문화권에서 살아 본 경험 덕”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친구들은 12가지색 크레파스를 쓸 때 저는 120색을 쓴 경험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작품을 시작할 때 무엇을 그릴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떤 색을 쓸지는 오래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박경률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서울 종로구 백아트 3층의 모습. 파란색 투명 판을 유리창에 덧대 시간대 별로 바뀌는 빛의 형태에 따라 작품이 달리 보이는 효과를 냈다. 백아트 제공
박경률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서울 종로구 백아트 3층의 모습. 파란색 투명 판을 유리창에 덧대 시간대 별로 바뀌는 빛의 형태에 따라 작품이 달리 보이는 효과를 냈다. 백아트 제공

장르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는 것도 박 작가 작품의 묘미다. 백아트 2층에는 회화부터 조각, 오브제 등이 뒤섞여 설치돼 있다. 각 작품이 독립적으로 의미를 갖는 형식이 아니라, 2층을 하나의 캔버스라 보고 모든 요소들이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구성했다. 3층에는 큰 창에 투명한 파란 판 3개를 설치해 빛의 형태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보이도록 했다. 전시는 5월8일까지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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