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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입원제 3가지 모두 작동 불발... '환자 안인득' 방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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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입원제 3가지 모두 작동 불발... '환자 안인득' 방치됐다

입력
2019.04.25 04:40
수정
2019.04.25 09:15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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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ㆍ행정ㆍ보호입원 모두 실패… 진료 거부 환자 병원 이송 한계

비자의입원(강제입원) 제도-박구원 기자
비자의입원(강제입원) 제도-박구원 기자

진주 방화ㆍ살인사건 피의자 안인득(42)이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 2년 9개월 동안 조현병 치료를 중단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의 구멍이 드러났다. 안이 지속적으로 망상에 시달렸던 점을 감안할 때, 평소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범죄자로 전락하기 이전의 ‘환자 안인득’은 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을까. 사건 발생 후 1주일간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따져봤다.

◇진단 못 받아 보호입원 불발

안은 2010년 행인에게 흉기를 휘둘렀다가 재판에 넘겨져 공주치료감호소에서 편집형 정신분열증(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9개월만에 치료감호소를 퇴소한 안을 가족들은 진주의 한 정신병원에 6개월간 비자의입원(강제입원)시켰다. 이후 외래치료를 받았지만 2016년 7월부터는 치료를 중단했고 증세가 악화하다가 지난해 9월부터 폭력성이 심해졌다. 지난달까지 이웃과 마찰을 빚어 경찰이 출동한 경우만 6건이었고 10일에는 시내에서 행인을 폭행해 벌금형을 받았다. 가족은 안을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시켜 안정시키고자 했다. 형과 동생 등이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상 강제입원이 가능한 제도 세 가지(응급ㆍ행정ㆍ보호입원)를 모두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먼저 지난달 10일 폭행사건이 있은 후 안의 형이 보호입원을 시키려 지역 정신병원에 상담을 했지만 불발됐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동의가 있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이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하는 경우에만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가능하다. 애초에 형은 ‘직계 가족이나 배우자’로 한정된 보호의무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안이 첫 강제입원 이후 가족에 적개심을 갖고 있어, 의료기관을 찾아 전문의 진단을 받기가 불가능했다.

국민 정신건강복지센터 인지 여부-박구원 기자
국민 정신건강복지센터 인지 여부-박구원 기자

◇경찰 통한 응급입원, 지자체 행정입원도 실패

이달 4일엔 안의 형이 진주경찰서를 찾아가 응급입원을 부탁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안이 위험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현행법은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발견하더라도 자해ㆍ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의사와 경찰관의 동의를 받아 정신의료기관에 응급입원(최대 3일)을 의뢰할 수 있다. 경찰은 안이 이웃과 수 차례 다툼을 벌여 신고가 들어왔을 때 사안이 비교적 경미했고, 안이 매번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자해ㆍ타해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현장에선 일선 경찰관이 자해ㆍ타해 위험을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보건복지부와 소방ㆍ경찰청이 함께 만든 현장대응 매뉴얼이 있지만 세부 기준이 모호하다. 위험성과 긴급성을 모두 만족해야 응급입원을 시도하는데 긴급성은 ‘고위험자를 피해자와 일정 기간 이상 격리하지 않으면 추가적인 위해 발생이 예견되는 경우’ 등으로 정의돼 있다. 주관적 판단이 필요한 만큼, 경찰관은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 오히려 환자 측으로부터 소송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정신의료기관도 응급입원을 받아주기를 꺼린다. 환자 관리는 까다로운데 입원비마저 받지 못할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강제입원은 해마다 6만여건에 달하는 반면, 응급입원은 2017년 기준 6,445건에 그쳤다.

안의 형은 마지막으로 지자체의 힘을 빌리는 행정입원을 시도했지만 지자체 역시 전문의 진단서를 요구해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입원은 자해ㆍ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을 근거로 지자체장이 환자를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시키는 제도다. 그러나 지자체는 비용 부담과 환자를 관리할 책임을 꺼려해 소극적으로 운영한다. 지난해 4월 기준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 6만6,523명 가운데 행정입원 환자는 2,560명(3.8%)에 그쳤다.

◇환자를 병원에 데려갈 방법이 없다

의료계는 진료를 거부하는 환자를 병원에 데려갈 합법적 수단이 없는 점이 현행 강제입원 제도의 근본적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경찰이 응급입원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보호입원이나 행정입원을 시키려면 의사 진단이 필요한데, 애초에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를 어떻게 병원에 데려가느냐는 것이다. 가족들이 억지로 붙들거나, 다른 이유를 대고 속여서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아무런 자격도, 법적 근거도 없는 사설 응급대를 동원할 수도 없다.

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경찰이나 119구조대가 정신질환자를 이송하도록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퇴원 후 외래치료를 강제하는 외래치료지원제 역시 환자가 치료를 거부할 때 병원으로 이송할 합법적 수단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최 이사는 “무엇보다 안처럼 가족이나 의료진에게 분노가 향하지 않도록 가정법원이 강제입원을 최종 결정하는 사법입원제 도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사법입원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인데 언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정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응급입원 관련 건강보험 수가를 높이고 △관련 사항을 의료기관 평가인증에도 반영하는 한편 △행정입원 비용 부담에 필요한 국비와 지방비 지급 기준과 예산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모두 올해나 내년 상반기에 착수하는 사업들이다. 올해 완료 예정인 대책은 현장대응 매뉴얼 개정뿐이어서, 당장 정신질환자들이 급성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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