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 중턱에 자리 잡은 수종사에는 ‘묵언(默言)’이라고 쓰인 푯말을 경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왕태석 기자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돼 중국에서 화려하게 꽃핀 특이한 종교다. 인류 문명사에서 국가나 민족보다도 중요한 구분 방식에 문화권이 있다. 대표적인 문화권으로 우리는 희랍이나 아랍 문화권 그리고 인도나 중국 문화권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문화권은 보이지 않는 고유한 문화 코드에 따른 장벽을 형성한다. 이러한 문화권에 의한 장벽은 다른 문화가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철옹성 역할을 하곤 한다. 때문에 기독교는 인도나 중국 등 다른 문화권 국가들에서는 극히 제한적인 영역만을 확보할 뿐이다. 이에 반해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 문화권에서 발전하는 특이점을 보인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성공한 외래문화가 불교와 공산주의뿐이라는 중국사의 지적은 자못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교의 중국 안착에 일대 획을 그은 인물을 꼽으라면, 실크로드 국가인 구자국의 왕족 출신 승려인 구마라집(鳩摩羅什)을 들 수 있다. 라집은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명성을 날렸던 인물로, 고구려에 불교를 전해 주기도 한 전진의 부견은 라집을 장안으로 모셔오기 위해 전쟁까지도 불사한다. 그러나 당시는 왕조가 격변하던 시대였으므로 실제 라집을 장안으로 모시는 것은 다음 왕조인 후진(요진)의 요흥에 의해서이다.

라집은 장안에서 국가적인 후원 속에 당시 부족했던 불교 경전의 번역에 매진한다. 번역은 집단으로 이루어졌으며 공개강의도 함께 진행됐다. 때문에 언제나 3,000명 이상 운집하는 대대적인 성황을 연출했는데, 이는 중국불교가 확립하는 굳건한 토대가 된다.

번역을 흔히 반역이라고도 한다. 이는 다른 언어의 번역 과정에서 의미가 바뀌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집도 이 문제를 깊이 고민했고 최대한 신중했다. 라집은 죽음에 이르러 “내가 설(번역)한 가르침에 오류가 없다면, 내 혀는 불에 타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라집을 화장하자 혀만 불타지 않았는데, 이 혀를 모신 부도가 아직도 장안의 초당사에 있다. 라집의 부도는 매우 이른 시기에 제작된 최고의 수작 중 하나로 미술사적으로도 막대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라집의 혀 이야기는 진실한 가르침은 그 도구인 혀마저도 불길을 초월할 정도로 위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삼국유사’ ‘혜현구정(惠現求靜)’에는 이와는 또 다른 혀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 주목된다. 얘기인즉슨 백제의 승려인 혜현은 가르침을 잘 설하는 고승이었는데, 하루는 번잡함을 싫어해 산속에 은거한 채 고요한 깨침을 반조하다가 입적한다. 같이 수행하던 승려들이 유해를 동굴에 모셨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두개골과 혀만 남기고 모두 먹어버렸다. 그런데 혜현의 혀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왔고, 수년이 흘러도 썩지 않은 채 더욱 붉어졌다. 해서 이를 기이하게 여긴 승려들이 석탑에 모셨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호랑이도 먹지 못한 고승의 두개골과 혀에 대한 내용이 있다. 두개골이야 진리의 그릇이라는 의미일 테지만, 혀는 왜 먹지 않았을까? 그것은 말을 할 수 있지만 침묵한 진정한 깨달음의 혀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혜현구정’이라는 제목 역시 ‘혜현이 고요함을 구했다’는 의미다. 라집이 진리를 말하는 혀를 가졌다면, 혜현은 침묵의 혀를 추구했던 것이다.

두 승려가 산 시대와 상황은 다르다. 그러므로 수평적인 동일한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모두가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말과 글의 폭류 시대에 혜현의 이야기는 또 다른 깊은 교훈이 되기에 충분하다. 즉 진리의 혀와는 다른 침묵의 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혜현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언어를 넘어선 침묵의 실천자였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현대에는 혜현이야말로 더욱 귀감이 되는 인물이 아닌가 한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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