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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아닌 집’ 쪽방… 각종 법 테두리서도 한참 밀려나

입력
2019.05.07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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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 아래 쪽방] <상> 누가 쪽방으로 돈을 버는가

4.24평 최저주거기준에 미달, 대부분 ‘무허가 숙박업’ 운영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의 골목. 홍인기 기자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의 골목. 홍인기 기자

‘1인 가구 기준 14㎡(약 4.24평)의 면적, 부엌, 전용 화장실과 목욕 시설.’

한 명의 개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주거기본법의 ‘최저주거기준’은 인간이 존엄하게 일상을 영위할 최소한의 충분조건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2015년 제정된 이 법은 “물리적ㆍ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라며 국민의 주거권을 처음으로 법 테두리 안으로 들였다. 그저 비바람을 피하고, 바닥에 등을 뉘일 수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오늘날 주거 피라미드 가장 아래에 놓인 쪽방은 법이 규정하는 충분조건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다.

‘최후의 주거 전선’ 쪽방 앞에 최저주거기준은 무의미하다. 집이 아닌 비(非)주택으로 분류되는 쪽방은 법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제대로 된 정의조차 없다. ‘쪽방’이라는 분류는 국가 통계 등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도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쪽방을 정의하는 식이다. 2017년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일정한 보증금 없이 월세 또는 일세를 지불하며 0.5~2평(1.65~6.61㎡) 내외의 면적으로 취사실ㆍ세면실ㆍ화장실 등이 적절하게 갖추어지지 않은 주거공간’이라는 표현이 그나마 구체적인 정의다.

실체가 불분명한 쪽방은 각종 법망의 사각지대다. 숙박업으로 영업하고 있지 않아, 공중위생관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과거 여관ㆍ여인숙으로 사용되다 쪽방이 된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허가 숙박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합법과 불법을 판단할 기준조차 없이 애매한 공간에 사는 이가 서울에만 3,296명(2018년 서울시 조사)이지만, 전문가들은 조사에 누락된 쪽방 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발짝만 물러서면 거리로 몰려날 주거난민들에게, 그러나 쪽방은 노숙을 막아줄 방파제 역할을 한다. ‘현대판 쪽방’이라 불리는 고시원까지 가세했다. 도시의 주거 비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판잣집, 비닐하우스, 달방(여관ㆍ여인숙의 월세방), 고시원, 쪽방 등 비주택에 사는 인구 역시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5년마다 이루어지는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비주택에 거주하는 가구 수는 2005년 5만7,066가구에서 2015년 39만3,792가구로 7배 가까이 폭증했다. 이 가운데 무려 81.9%(32만2,591가구)가 거주 공간을 특정하기 어려운 쪽방과 고시원에 사는 이들로 추정된다.

김선미 서울 성북주거복지센터장은 “보증금 없이 일세로도 살 수 있는 쪽방은 동시에 거리노숙을 막는 자원으로 활용되는 게 사실”이라며 “1970년대 미국에서는 쪽방과 비슷한 주거자원인 SRO(single room occupancy)가 대거 철거되자 홈리스(노숙인) 인구가 크게 증가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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