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재판 증인 출석해 자신을 조직 부속품처럼 묘사하기도
이민걸 前법원행정처 기조실장 “양승태 사법부 오만했다” 반성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고인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 나온 현직 법관 증인들의 한결 같은 답변이다. 책임을 떠넘기고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엘리트 법관들의 초상에 재판정 주변에서는 “일반 형사범들과 다를 게 뭐냐”는 수근거림이 들렸다.

지난해 12월 시작된 임 전 차장 공판에 증인으로 나선 현직 법관은 모두 7명. 공교롭게도 이들은 하나같이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거나 원론적인 답변만 늘어놓았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 출신으로 탄핵 대상 명단에까지 올랐던 정다주 울산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와 시진국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 등은 엘리트 법관의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을 마치 조직의 부속품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지난 2일 증인으로 출석한 정 부장판사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을 작성한 경위에 대해 "피고인이 구술해준 것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라고 답했다. 검찰이 재차 ‘보고서 작성 경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다그치자 정 부장판사는 자신을 하청업체에 비유하기도 했다. “당시 제 업무는 주어진 주제를 스스로 검토해서 타당한 결론을 도출하고 이를 보고서 형태로 작성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피고인이 자신의 생각을 본론과 결론으로 나눠 구술해주면 이것을 문서로 만들어 납품을 하는 업무를 맡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17일 증인으로 출석한 시 부장판사도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행정처 전략 및 청와대 내부 기류 등을 담은 문건 작성 배경에 대해 “저런 정보들은 실장급이 아니면 심의관들은 알 수 없는 것들이라 피고인이 알려주는 대로 받아썼다”고 진술했다. 시 부장판사는 “보고서에 따라서는 피고인이 상세히 구술해주거나 직접 메모를 해주기도 했다”면서 구체적인 상황까지 거론하며 임 전 차장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민감한 질문에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확하게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등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위법성 인식 여부에 대해서는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식의 태도를 보였다. 정 부장판사는 “지금 생각해보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비춰질 수밖에 없다는 점 인정하지만, 당시에는 검토 차원에서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했고 시 부장판사는 “단발적으로 지시를 받아 썼고, 이걸 왜 쓰는지는 파악이 안되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위법성 인식) 없었다”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23일 임 전 차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양승태 사법부의 오만’을 반성해 눈길을 끌었다. 임 전 차장 후임으로 기획조정실 수장을 맡았던 이 전 실장은 이날 신문 말미에 “사법행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입장에서 여러모로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 사태를 겪으면서 제가 느낀 건 한 마디로 법원행정처가 너무 오만하게 타성에 젖어서 일을 열심히 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잘못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도 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