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 돈줄 차단 ‘초강수’… 국제유가ㆍ미중 관계에도 큰 파장
21일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차량 탑승에 앞서 취재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어보이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산 원유 수입 제재와 관련해 한국 등 8개국에 대해 인정했던 한시적 예외 조치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백악관이 22일(현지시간) 밝혔다. 대(對)이란 압박의 고삐를 죄기 위해 ‘이란산 원유 수출 제로’라는 초강수를 두는 것으로 국제 유가 시장에 대한 충격뿐만 아니라 중국 등 이란산 원유 수입국과의 긴장 고조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백악관은 이날 오전 대변인의 명의의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초 만료되는 제재 유예조치(SREㆍsignificant reduction exceptions)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이번 결정은 이란의 주요 수입원을 차단하기 위해 원유 수출을 제로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그러면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세계의 3대 최대 에너지 생산국은 우리의 우방 및 동맹국들과 함께 국제 석유 시장이 적절한 공급을 유지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우리는 모든 이란산 원유가 시장에서 사라져도 국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날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추가적인 유예 조치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란 지도자들이 파괴적인 행동을 바꾸고 이란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협상 테이블로 복귀할 때까지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특히 “만료 기한을 넘어 연장되는 어떠한 면제 조치도 없다. 전면 중단”이라며 “우리는 ‘제로’로 간다”고 밝혀 예외 시한인 5월 2일 이후 더 이상의 유예 기간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앞서 미국 주요 언론들도 전날 이러한 내용의 보도를 일제히 쏟아냈다.

국가별 이란산 원유 수입량. 그래픽=송정근 기자

미국은 지난해 11월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조치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인도 일본 터키 대만 이탈리아 그리스 등 8개국에 대해 180일간의 유예 기간을 부여했다. 대만 이탈리아 그리스는 올해 들어 이란산 원유 수입을 완전히 중단해 중국 인도 한국 일본 터키 등 5개국이 실질적인 예외 혜택을 받아 왔다. 블룸버그의 유조선 추적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중국이 하루 평균 61만3,000배럴의 원유를 수입해 가장 많았고 한국 38만7,000배럴, 인도 25만8,000배럴, 일본 10만8,000배럴, 터키 9만7,000배럴로 뒤를 이었다.

이들 국가들은 내달 2일 종료되는 이 조치를 연장해 줄 것을 요구해 왔으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대이란 강경파들이 종료를 밀어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초에는 23명의 공화당 상원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예외 조치 종료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국무부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WP)에 “폼페이오 장관도 시장 조건이 허락하면 예외 조치를 종료할 의향을 항상 갖고 있었다”며 “이란산 수입 제로 정책은 폼페이오 장관에서 비롯됐다”고 전했다.

국무부 내에서는 연장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는 등 지난 몇 주간 정부 내에선 논쟁이 벌어졌으나 강경파가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19일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유가 상승이 대선 재선 가도에 불리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전면 제재가 부담스럽지만, 국제 유가 시장 상황이 지난해보다 양호하다는 점을 내세워 트럼프 대통령의 우려를 불식시킨 것으로 보인다. 브라이언 훅 이란 특별대표는 이달 초 언론브리핑에서 “올해는 공급이 수요보다 많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기 때문에 ‘이란산 원유 수입 제로’ 정책을 가속화하는 데 좋은 시장 조건이 조성됐다”며 “우리는 제재 체제에 면제나 예외를 승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및 모하메드 빈자예드 UAE 왕세자와 전화 통화를 갖고 석유 증산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2일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란산 원유 수입과 관련해 8개국에 한시적으로 인정해 줬던 제재 예외 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트럼프 정부가 사우디 아라비아와 UAE와 협력해 국제 유가 시장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당장 이날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등 유가 상승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뉴욕타임스는 중동 지역의 석유 전문가들이 고유가에 의존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즉각적인 증산에 나설지를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며 유예 조치 중단이 유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의 대응도 변수다. 미중 무역 협상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데다 대북 제재에서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이란산 원유 수입 문제까지 가중돼 미중 간 힘겨루기가 복잡해질 수 있다.

이 같은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이란 문제가 내년 대선 레이스에서 민주당 후보와 충돌하는 핵심 쟁점 중 하나라는 점에서 트럼프 정부가 강경 드라이브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버락 오마바 전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였던 이란 핵합의를 폐기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비롯한 중동 정책 실패를 겨냥하는 민주당 후보의 공세에 맞서 이란 압박의 가시적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북핵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이란 문제마저 원점을 맴돌면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울 만한 외교적 업적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미국은 지난해 5월 우라늄 농축 중단 등 12개 요구사항을 담은 새로운 합의를 이란에 제의했으나 이란은 핵 문제에 대한 재협상 자체를 거부해 왔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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