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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핫&쿨] ‘목마’ 타며 사춘기 혼란 달래는 핀란드 소녀들

입력
2019.04.22 17:49
수정
2019.04.23 00: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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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 빌후넨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하비호스 레볼루션' 포스터. 위키피디아 캡처
셀마 빌후넨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하비호스 레볼루션' 포스터. 위키피디아 캡처

인형 말머리가 달린 긴 막대기를 다리 사이에 끼고 껑충껑충 뛰어오른다. 바삐 움직이는 다리와는 달리, 꼿꼿함을 유지한 상체와 근엄한 표정만 보면 흡사 살아 있는 말을 탄 기수와도 같다. 장난감 목마를 타는 핀란드 소녀들의 모습이다.

북유럽 핀란드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목마 타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이 같은 현상을 집중 조명한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목마 타기 열풍에 빠진 핀란드 소녀들은 목마 타기 실력을 겨루는 대회를 개최해 챔피언을 뽑는가 하면, 직접 목마를 만든 뒤 그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솜씨를 뽐내기도 한다. 살아 있는 말은 아니지만 보관을 위한 마구간을 공유하며 서로의 목마를 애지중지 아껴주기도 한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말 타는 법’을 개발, 친구들에게 가르쳐주는 일도 다반사다.

언제부터 목마 타기가 핀란드 소녀들의 ‘쿨한’ 취미가 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NYT는 2017년 공개돼 미국의 아카데미영화상 후보에까지 오른 다큐멘터리 영화 ‘하비호스 레볼루션(Hobbyhorse Revolution)’이 이러한 놀이 문화를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영화를 연출한 셀마 빌후넨 감독은 NYT에 “2012년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목마를 타는 자신의 모습을 찍은 영상과 사진을 공유하는 10대 소녀들의 대화를 엿본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목마 타기 문화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만 해도 이는 ‘어린이들의 놀이’로만 취급됐기에, 소녀들은 구태여 목마를 탄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온라인을 통해 ‘조용히’ 확산된 것이다.

핀란드 10대 소녀들의 목마 타기 문화를 소개한 웹사이트 '홈 오브 하비호스’. 홈페이지(www.thehobbyhorse.fi) 캡처
핀란드 10대 소녀들의 목마 타기 문화를 소개한 웹사이트 '홈 오브 하비호스’. 홈페이지(www.thehobbyhorse.fi) 캡처

빌후넨 감독은 이후 인터넷 세상의 목마 타기 ‘셀럽(유명인사)’인 10대 소녀 알리사 아르니오마키를 찾아가 그들만의 비밀스런 취미를 카메라에 담아 내기 시작했다. 영화는 급작스레 찾아온 사춘기의 심리적ㆍ신체적 변화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소녀들이 ‘목마’라는 매개물을 통해 또래와 교류하고 해방감을 느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사춘기 소녀들이 목마 타기에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빌후넨 감독은 “사회는 사춘기 소녀들에게 점점 차분해지기를 요구한다”며 “하지만 목마 타기는 소녀들이 강인함,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갖도록 허용해 준다”고 설명했다. 사회가 정해 둔 규범적 여성상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일종의 ‘탈출구’ 역할을 하고 있어 소녀들도 매료되고 있다는 얘기다.

목마 타기 유행은 유럽 이웃나라들로도 번지고 있다. ‘목마 전도사’인 아르니오마키는 최근 핀란드 외무부로부터 “영국 윌리엄 왕자의 자녀인 조지와 샬롯을 위한 취미용 말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스웨덴과 러시아, 네덜란드에서 목마 타기 시범을 보여 달라는 초청도 들어왔다. 핀란드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소리 없이’ 퍼져 나간 목마 타기가 어느새 이 나라의 어엿한 수출품으로 떠오른 셈이다.

아울러 핀란드 국내에선 ‘목마 시장’도 형성됐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소녀들이 직접 만든 목마들이 거래되는 것은 물론, 다수 업체와 수공예가들은 목마와 이를 꾸미는 아이템 판매에 나서고 있다. 현지에서 목마는 대략 24유로(3만여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홍윤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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