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8곳 중 6곳서 자폭테러 증거 확보, 용의자 24명 체포… 사망자 300명 육박 
부활절인 21일 스리랑카 연쇄 폭발 현장 중 한 곳인 수도 콜롬보의 성 안토니오 성당 앞에 차단선이 설치된 가운데 군 병력이 주변을 지키고 있다. 콜롬보=AP 연합뉴스

스리랑카 정부가 21일(현지시간) 이 나라 전역 8곳에서 ‘부활절 동시다발 테러’의 배후로 현지 급진 이슬람 조직인 ‘내셔널 타우히트 자마트(NTJ)’를 22일 지목했다. 수사당국은 이번 공격을 감행한 세력과 연루된 용의자 24명을 체포하고, 사고 현장에서 자살폭탄 테러범으로 추정되는 7명의 시신을 확보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며 배후 세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추가 테러 징후도 잇따르고 있어 당국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1일 밤 늦게 수도 콜롬보에서 30㎞ 떨어진 국제공항에서 폭발물 50㎏가 들어 있는 사제 파이프폭발물이 발견돼 군이 뇌관을 제거하는가 하면, 22일 오후 콜롬보의 한 버스 정류장에선 기폭장치 87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또, 이날 경찰이 콜롬보의 교회 인근 승합차에서 폭발물 해체 작업을 벌이던 중 또 다시 폭발이 일어나기도 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이날 자정을 기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국에 휴교령도 내렸다.

AFPㆍAP통신 등에 따르면 스리랑카 정부 대변인인 라지티 세나라트네는 이날 “우리 정부는 NTJ가 이번 공격의 배후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NTJ가 국제 테러조직의 지원을 받았는지도 조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스리랑카 정부 관리가 이 사건과 관련해 특정 단체를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다만 이 나라의 소수 종교인 기독교도를 노린 ‘종교 테러’라는 분석에도 불구, “믿는다”는 표현을 사용한 데에서 보듯 아직은 테러 배후를 명확히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스리랑카 연쇄 폭발 테러. 그래픽=김문중 기자

NTJ는 불상 등 훼손 사건으로 지난해부터 주목을 끌기 시작한 현지 무슬림 과격 단체다. 스리랑카 경찰청장이 지난 11일 사전에 입수한 자살폭탄 공격 가능성 정보에 언급된 조직이기도 하다. 다만 경찰청장이 정보 당국에 이를 경고했는데도 불구, 제대로 된 대응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은 전날 공격장소 8곳 가운데 가톨릭 성당 3곳과 고급 호텔 3곳에서 자살폭탄 공격 증거를 이날 확보했다. 정부 관계자는 “사건 현장에서 테러범의 시신을 감식한 결과, 수도 콜롬보의 성 안토니오 성당 등 6곳의 폭발이 자폭 테러라는 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또 부활절 미사 시간에 맞춰 공격을 가한 테러범 7명의 시신도 확보됐는데, 이 중 콜롬보 소재 샹그릴라 호텔에선 두 명이 폭발물과 함께 자폭했고 다른 5곳의 폭발은 단독 범행이었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나머지 테러 두 건에 대해선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날 오전까지 체포된 용의자 24명은 대부분 스리랑카 국적이다.

스리랑카 정부는 전날 오후 발령한 전국 통행금지령을 22일 오전 6시에 해제했으나, 상황이 호전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이날 오후 8시부터 23일 오전 4시까지 다시 신규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루머 확산을 막기 위해 페이스북과 왓츠앱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부분을 차단하고, 공항 등 주요 시설물에도 군경을 배치해 경계 강화 태세를 이어가고 있다.

부활절인 21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인근의 도시 코치카데의 한 성당에서 발생한 폭발 테러로 사망한 희생자 유족들이 경찰 빈소에서 통곡하고 있다. 코치카데=로이터 연합뉴스

당국은 이 사건 성격을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테러 공격’으로 규정, 배후를 확실히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NTJ를 지목한 것처럼 현지인에 의한 종교 관련 테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스리랑카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싱할라족 불교도와 소수인 타밀족 힌두교도, 또는 이슬람교도가 충돌해 온 그간의 종교 갈등과는 결이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인구의 7%가량인 기독교인들은 종교 분쟁의 주체가 아니었고, 성당 이외의 타깃이었던 특급 호텔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싱할라족 불교도가 주축인 정부와, 힌두교도인 타밀족 반군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으로 1983년부터 2009년까지 26년간 10만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3월에는 중부 캔디 지역에서 싱할라족과 인구 10% 미만인 이슬람교도 사이의 폭력사태가 격해지면서 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부활절인 21일 스리랑카 연쇄 폭발 현장 중 한 곳인 수도 콜롬보 북부에 있는 네곰보의 한 성당에서 손을 든 모습의 성상이 파괴된 천장 등 파손된 성당 내부가 보이는 방향으로 서 있다. 네곰보=AP 연합뉴스

다만 로이터통신은 최근 기독교도에 대한 공격이 잦아지고 있다면서 “스리랑카 국가기독교복음연맹(NCEASL)에 따르면 지난해 기독교도를 겨냥한 차별, 위협, 폭력 행위가 86건 발생했다”고 전했다. 16세기부터 포르투갈ㆍ네덜란드ㆍ영국 등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한 스리랑카에선 불교도ㆍ힌두교도ㆍ무슬림 모두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에 적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함께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등 국제테러조직의 관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사고 당일 “정부는 국내 무장 단체의 국제적 연계를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CNN 방송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교회를 타깃으로 한 유사 테러들이 IS에 의해 자행된 바 있다고 언급했다.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성 앤소니 성당을 비롯한 전국 8곳에서 부활절인 21일 연쇄 폭탄 테러가 발생한 직후, 현지 군인들이 성당 주변을 지키고 있다. 콜롬보=AP 연합뉴스

실제로 올해 1월에는 필리핀 남부 가톨릭 성당에선 주일 미사 도중 벌어진 IS의 테러로 20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5월에도 인도네시아 3개 교회에서 테러가 발생해 12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했는데, 이때도 IS가 배후를 자처했다. 다만 CNN은 “동남아 지역에서 교회 등을 상대로 테러를 벌인 이슬람 조직은 IS뿐 아니라 알카에다, 제마 이슬라미야(알카에다 인도네시아 연계 조직) 등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고 수습이 본격화하면서 희생자 집계치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현지 경찰을 인용해 “사망자가 최소 290명으로 늘었고, 500여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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