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자원 대국 카자흐스탄 동북부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핵실험장이 있었다. 소련 핵개발을 지휘한 라브렌티 베리야가 첫 핵실험장으로 골랐다는 세미팔라틴스크다. 면적만 1만8,000㎢로 제주도 10배인 이 광활한 초원지대에서 1991년 8월 29일까지 42년간 456차례의 핵실험이 진행됐다. 지금도 핵실험에 따른 주민 피해 논란이 적지 않은 이곳의 폐쇄를 결정한 이는 지난달 30년 집권의 막을 내린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다. 하지만 89년부터 카자흐 지역에서 시작된 소련 최초의 반핵운동과 소련 붕괴의 영향이 컸다.

□ 핵실험장 폐쇄는 소련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이 떠안은 중요한 핵 문제의 하나였지만 더 큰 고민은 소련이 남긴 핵무기 처리였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 같은 처지였던 카자흐스탄이 보유한 핵탄두는 모두 1,040발에 이르렀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00여기, 폭격기 약 40대가 있었다. 결국 핵무기들은 모두 이전ㆍ폐기되었고, 카자흐스탄은 이후 유엔의 ‘핵실험 반대의 날’ 지정이나 ‘중앙아시아 비핵지대 조약’까지 주도했으니 비핵화의 상징적인 국가인 것은 맞다.

□ 하지만 나자르바예프의 구상에 선의만 넘친 것은 아니었다. 나자르바예프는 독립 직후 당당히 핵클럽의 일원임을 주장했고, 협상을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 의사도 밝히지 않았다. 92년 미국과 핵확산 금지 및 핵무기 해체ㆍ이전을 담은 리스본 의정서에 합의했지만 미국의 NPT 가입 요구는 거절했다. 그러다 자국 내 핵 보유 의사를 타진했으나 이번엔 미국이 반대했다. 난항이던 협상은 러시아의 에너지 지원 약속으로 돌파구가 열려 카자흐스탄은 94년 2월에 핵보유국 지위로 NPT 가입에 동의했고 그날 미국과 핵 포기와 안전 보장을 담은 문서에 서명했다. 이후 완전한 핵폐기까지는 1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공부하고 있다고 알려져 주목받았던 ‘카자흐 모델’은 사정이 다르긴 해도 북한 비핵화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난항을 겪던 카자흐스탄과 미국 간 협상이 러시아의 적극 참여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주변 당사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러, 미중 공조가 좀 더 긴밀해지기를, 다가온 북러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이 생산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를 기대해본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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