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소읍탐방]지질과 인류의 역사 응축된 연천 전곡읍과 한탄강
한탄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인 연천 도감포. 햇살이 비치면 수직 절벽에 박힌 주상절리가 ‘보석처럼 빛을 뿜는다’고 한다. 연천=최흥수 기자
날이 흐려 아쉬웠지만 보석처럼 빛난다는 표현이 과장은 아닐 듯하다.

백발 노인이 자신보다 덩치가 큰 길쭉한 나무상자를 지고 있다. 상자 겉면에는 누런 페인트로 ‘105mm 고폭탄’이라 찍혀 있다.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딱딱한 상자 모서리가 등과 옆구리 살을 후볐을 터, 뒷모습만 봐도 칡넝쿨 멜빵에 어깨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열일곱 금동훈씨(1933년생)는 한국전쟁 당시 ‘지게부대’(노무자부대) 대원이었다. 생사가 엇갈리는 격전지에서 포탄과 식량, 부상자를 날랐다. 연천읍 고문리 ‘한탄강댐 물문화관’에 전시된 금씨의 뒷모습 미니어처는 최전방 연천이 어떤 곳이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포탄은 아이러니하게도 연천의 ‘밥’이었다. 전쟁과 훈련 중 떨어져 나온 포탄 잔해와 쇠붙이를 목숨 걸고 캐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이들도 많았다. 그렇게 차린 ‘포탄밥상’도 전시관 한 구석을 지키고 있다. 한탄강댐 물문화관의 주인공은 바로 한탄강을 끼고 살아온 ‘연천 사람들’이다. 연천의 중심은 연천읍이 아니라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전곡읍이다. 읍내를 감싸고 흐르는 한탄강은 연천의 대표 관광지이자 연천 사람들의 역사다.

한탄강댐 물문화관에 전시된 ‘지게부대’ 금동훈씨의 미니어처. 연천이 어떤 곳인지 바로 와 닿은 전시물이다.
포탄 잔해를 모아 생계를 이어온 주민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포탄밥상’도 전시돼 있다.
◇황금빛 다이아몬드를 꿈꾸며…임진강ㆍ한탄강 합수머리

전곡읍내에서 약 6km 떨어진 도감포는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강 전체가 현무암 협곡이나 마찬가지인 한탄강에서 드물게 넓은 모래사장이 형성돼 있다. 별도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지 않았지만 잔잔한 수면에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의 정취가 고스란히 투영된다. 강으로 내려서는 길목인 ‘합수머리’ 마을은 유난히 볕이 따사롭다. 지금 뒤늦은 산벚꽃과 목련, 진달래가 한창이다. 강 위 평지는 현재 모두 농경지로 변했지만, 그 옛날에는 단풍나무가 빼곡해 ‘단풍동’으로 불렸다. 아직까지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아 한적하게 혼자만의 봄을 만끽하기 그만이다.

임진강(위)과 한탄강(아래)이 하류하는 도감포에 드넓게 모래사장이 형성돼 있다.
성냥갑에 성냥을 꽂아 놓은 것처럼 돌기둥이 빼곡하게 박힌 도감포 주상절리.

도감포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100여 호가 살던 작은 포구였지만 역할은 작지 않았다. 임진강 하구 강화에서 배에 싣고 온 새우젓과 소금이 도감포를 거쳐 인근 철원, 포천, 동두천으로 공급됐다. 빼어난 경치에도 불구하고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오랫동안 민통선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도감포는 삼팔선 바로 이북이고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다.

‘1950년 6월 25일 국군 제1연대 3대대는 도감포 일대로 도하한 북한군 제4사단 예하 대대규모의 기습 남침을 받았다. 북한군은 제16연대가 전곡에서 한탄강을 건너 초성리 방향으로 공격하고, 제18연대는 동이리 부근에서 임진강을 건너 도감포~화방촌 간의 소로를 따라 공격했다.(…) 국군은 적의 집중 공격을 받아 동두천 방면으로 분산 철수하고 말았다.’ 1995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펴낸 ‘6·25 전쟁사2’는 전쟁이 발발한 그날 도감포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후 도감포 일대에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일명 ‘벨룩대대’)를 비롯해 16개국 유엔군이 다시 전선을 형성하고, 중공군 8만명을 포함 남하하는 10만 적군을 막아냈다. 연천 지역 휴전선이 삼팔선에서 훨씬 북쪽으로 올라가고, 전곡과 연천이 수복지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전투에서 승리한 덕분이다.

그러나 전쟁 후에도 도감포는 1988년까지 민통선으로 묶여 외지인이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했다. 물길은 북에서 남으로 흘러 오히려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게 빨랐다. “홍수가 날 때면 걸어 다녀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통나무가 임진강을 가득 메웠지. 북한에서 목재로 쓰려고 다듬어 놓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떠내려 온 거야. 그걸 밧줄로 묶어 놨다가 물이 빠지면 차에 실어 내다 팔았어.” 도감포에서 나고 자란 이형배씨가 무용담처럼 들려 준 얘기다. 1990년대에 건진 나무에도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있어 북한의 경제 사정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점도 짐작할 수 있었다.

보석처럼 박히고, 방사형으로 뻗고…도감포 절벽에는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가 형성돼 있다.

합수머리는 수량이 풍부해 물고기도 많이 잡혔는데 지금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임진강 수역에 북한에는 황강댐, 남한에는 군남댐이 들어섰다. 한탄강 상류에도 홍수조절용 한탄강댐이 건설돼 넓은 강폭에 비해 물길은 보잘것없이 되고 말았다. 대신 강 건너편 수십억년 지구의 역사가 축적된 주상절리는 한층 가까워졌다. 그 흔한 안내판 하나 없지만 도감포 맞은편 바위 절벽은 한탄강 주상절리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모습을 자랑한다. 성냥갑에 성냥이 빼곡하게 박힌 것처럼 다각형 돌기둥이 수직 절벽에 촘촘히 박혀 있는가 하면, 방사형으로 뻗은 바위 기둥이 황금빛 속살을 드러낸다. “진짜를 보려면 가을에 와야 해. 햇살이 쨍하게 비치면 절벽 전체가 보석을 박아 놓은 것 같고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뿜어. 황홀하고, 눈이 부시고, 말로 다 못하지.” 도감포 어부 이형배씨의 자랑이다. 거기에 지금 막 솟아난 돌단풍까지 붉게 물들면 더욱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도감포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길. ‘자연 그림터 꽃나루’ 앞에서 한 주민이 작업을 하고 있다.
생태세밀화 작가 김혜경씨의 개인 갤러리 ‘자연 그림터 꽃나루’ 전시실 내부.

2007년 도감포에 들어와 ‘자연 그림터 꽃나루’ 갤러리를 차린 김혜경씨도 도감포의 자연과 생태에 반한 경우다. 특히 9월 초순이면 늦반딪불이가 강변에 환상적인 빛을 뿌린다고 한다. 꽃나루 갤러리는 김 작가가 도감포와 한반도의 희귀 식물을 그린 생태세밀화를 전시 중이다. 입장료가 없는 개인 갤러리여서 작품을 보려면 예약(010-8916-9645)해야 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도감포 주상절리 바로 위에 얼마 전 ‘한반도 통일미래센터’가 문을 열었다. 통일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수련시설인데, 도감포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위치다. 그러나 일반 관광객은 주차장에도 발을 들일 수 없다. 더구나 도감포 한가운데를 관통해 센터까지 연결된 교량 때문에 주변 풍광이 크게 훼손됐다. 강을 가로지른 다리가 악어 형상의 산허리를 두 동강낸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전곡 주변 한탄강 국가지질공원 명소

북한 평강군에서 발원해 철원 포천 연천으로 흐르는 한탄강은 전구간이 국가지질공원이다. 약 50만년 전부터 12만년 전까지 이 지역에 세 차례 대규모 화산폭발이 있었고, 그 용암대지 아래로 협곡을 만든 물길이 ‘큰 여울’, 한탄강(漢灘江)이다. 140km 긴 구간에 협곡이 형성된 것도, 수직 절벽마다 다양한 형태의 돌기둥 즉,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것도 국내에서 한탄강이 유일하다.

한탄강 국가지질공원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임진강 주상절리’다. 도감포 상류 미산면 동이리 강변에서 잘 보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동이리 주상절리’로 불렀다. 그러나 실제 절벽이 위치한 곳은 군남면 남계리여서 ‘남계리 주상절리’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해 ‘임진강 주상절리’로 정리됐다.

40m 높이의 수직 절벽이 1.5km에 걸쳐 뻗어 있는 임진강 주상절리. 도감포에서 멀지 않은 지점이다.

임진강 주상절리는 40m 높이의 수직 절벽이 1.5㎞에 걸쳐 말 그대로 병풍처럼 이어진다. 절벽 위로는 거칠 것 없이 뻗은 수평선이 이어져 더욱 특이하다. 꼭 붉은 색깔을 띠지 않아도 경치가 빼어나고 장구한 자연을 표현할 때 ‘적벽’이라는 찬사가 붙는다. 이곳 ‘임진적벽’과 송도팔경의 으뜸으로 치는 장남면 ‘장단석벽’ 구간은 연산군, 미수 허목, 겸재 정선 등 수많은 문인들이 뱃놀이를 즐기고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 곳이다. 절벽을 뒤덮은 담쟁이와 돌단풍이 붉게 물들고 석양빛이 부서지는 가을날 오후면 적벽의 진면모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곡읍 신답리 아우라지베개용암. 베개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모습이다.
연천읍 고문리 백의리층. 아랫부분에 암석화되지 않은 퇴적층이 분포한다.
백의리층에서 떨어진 암석을 서로 부딪히면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주상절리 틈새에 뿌리를 내린 돌단풍이 하얀 꽃을 피웠다.

전곡읍 신답리 ‘아우라지베개용암’엔 수 십개의 베개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은 특이한 모양의 주상절리가 모여 있다. 골지천과 송천이 만나는 정선 아우라지처럼, 이곳도 포천에서 흐르는 영평천이 한탄강과 합류하는 곳이다. 맨눈으로 보기에 거리가 다소 먼 점이 흠이다.

한탄강의 주상절리는 대부분 강 건너편에서 봐야 하는 지형인데, 연천읍 고문리 ‘백의리층’은 바로 앞에서 주상절리를 보고 만질 수 있다. 20~30m 현무암 절벽 아래 아직 암석화 되지 않은 브로콜리처럼 몽글몽글한 퇴적층이 분포하고 있다. 한탄강 주상절리는 현재도 침식 과정에 있어 낙석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떨어져 내린 일부 현무암은 철분이 많아 돌끼리 부딪히면 종소리가 나는 신기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이 일대는 세종대왕이 13회나 사냥을 하러 왔던 곳으로 사냥터이자 군사 훈련장이었다. 계곡 위는 물이 없어 농사를 짓기 어려웠는데 현재는 작은 보를 설치해 양수장에서 물을 퍼 올려 농사를 짓고 있다. 한탄강댐 물문화관과 재인폭포가 바로 인근이다. 재인폭포는 현재 관람시설 보수공사로 들어갈 수 없는 상태다.

◇’전곡리안’에서 고구려성까지

문명은 강에서 시작된다는 명제를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증명해 보인 곳이 바로 전곡이다. 1978년 전곡리에서 발굴된 주먹도끼는 유럽 중심의 구석기 지도를 바꿔 놓았다. 당시로는 하이테크로 인식되는 석기 가공 기술을 프랑스 ‘아슐리안’뿐만 아니라 ‘전곡리안’도 보유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전곡리에선 현재까지 20여 차례 발굴로 8,000여 점의 구석기 유물이 발견됐다.

전곡선사박물관은 구석기시대 생활상과 인류의 진화과정 등을 흥미롭게 전시해 놓아 학생들도 지루해하지 않는다.
전곡리선사유적지 입구의 조형물.
전곡리선사유적지에서는 다음달 3~6일 구석기축제가 열린다.

전곡선사박물관에서 발굴된 유물과 한탄강의 지층, 구석기시대의 생활상, 인류의 진화과정 등을 볼 수 있다. 박물관은 전곡리 선사유적지로 연결된다. 다음달 3~6일 이곳에서 ‘너도? 나도! 전곡리안'이란 주제로 ‘연천전곡리구석기축제’가 열린다. 한국, 프랑스, 스페인, 탄자이나, 칠레,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선사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전곡리안 석기 만들기, 비보이 공연, EDM 파티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다. 대형 화덕에서 구워먹는 구석기 바비큐가 특히 인기다.

전곡을 중심으로 한 한탄강변에는 고구려 유적도 두루 분포하고 있다. 한탄강과 차탄천이 합류하는 삼각형 모양의 언덕에 지은 은대리성은 전곡읍내와 가까워 호젓하게 산책을 즐기기 그만이다. 건물은 없고 흙으로 덮인 동쪽 석축만 일부 남아 있다. 부드러운 능선이 하늘과 닿아 있기 때문에 해질녘 노을을 배경으로 ‘인생사진’을 찍어도 좋다.

전곡읍 은대리성. 얕은 둔덕 뒤로 하늘이 넓게 펼쳐져 노을 사진을 찍기 좋다.
미산면 당포리성. 수직 낭떠러지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임진강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다.

한탄강변 고구려성은 평지에 쌓았고 높을 필요도 없었다. 삼면을 둘러싼 가파른 절벽이 어떤 인공구조물보다 든든한 보호막이기 때문이다. 미산면 동이리 임진강변의 당포성도 마찬가지다. 당포성은 약 13m 높이의 길쭉한 삼각 낭떠러지 위에 축성됐다. 파주 적성과 양주에서 북상하거나, 반대로 남하하는 적을 방어하는데 유리한 지점이어서 고구려를 거쳐 신라 점령기도 계속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좌우로 강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것은 기본이다.

숭의전은 왕건을 비롯한 고려의 여덟 임금을 봉안하고 있다.

당포성에서 약 1.5km 하류 임진강변에는 태조 왕건을 비롯해 고려의 여덟 왕을 봉안한 숭의전이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세우고, 후대 왕들이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다고 전해진다. 관리는 고려 왕족의 후손들에게 맡겼다니 승자의 아량과 패자의 승복이 이러하다. 숭의전은 한국전쟁 때 전부 소실됐는데 1973년 왕씨 후손이 정전을 복구하고, 1975년 국비로 나머지 전각을 신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로 앞으로 왕조의 흥망성쇠와 전란의 소용돌이를 고스란히 지켜봤을 임진강이 유유히 흐른다.

연쳔=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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