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ㆍ키스해링 등 유명작가들
뱅크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작품이 분쇄되는 현장 사진과 분쇄기 제작 영상을 공개했다. 뱅크시 인스타그램

그라피티는 길거리 낙서일까 아니면 예술품일까?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라피티 작가 중 하나인 ‘뱅크시’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구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5일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는 뱅크시의 그라피티 작품 ‘풍선과 소녀’를 캔버스에 옮긴 작품이 104만 파운드(15억 4,000만원)에 낙찰됐다. 2002년쯤 영국 런던 쇼디치 근교의 그레이트 이스턴 스트리트에 있는 건물 담벼락에 그려졌던 이 그림은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 작품 중 하나였다.

15억원이 넘는 낙찰 가격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일은 경매 종료 후 벌어졌다. 뱅크시는 그림이 낙찰되는 순간, 미리 설치한 파쇄기로 그림을 파손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자본주의에 종속된 미술계를 비판하려는 퍼포먼스에 경매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일각에서 ‘아트 테러리스트’를 자칭하는 뱅크시다운 행동이었다고 높이 평가한 반면, 다른 편에선 자신의 작품 가격을 올리기 위한 술수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했다. 하지만 낙찰자는 오히려 태연했다. 뱅크시에 의해 반쯤 파손된 작품을 낙찰 가격 그대로 주고 산 것이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뱅크시의 대표작 풍선과 소녀. 뱅크시 인스타그램
◇거리 낙서, 예술품으로 승화 시킨 뱅크시

뱅크시는 본명, 나이, 출생지 등 신상정보가 어느 하나 정확히 밝혀진 게 없는 ‘얼굴 없는 화가’다. 언론 인터뷰 내용과 활동 기간·장소 등에 대한 정보를 종합할 때 1974년쯤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정도만이 유추 가능한 정보의 거의 대부분이다.

뱅크시 작품이 현재는 수억원을 호가한다지만 초창기 그가 그린 그라피티도 ‘불법’ 딱지를 붙이긴 마찬가지였다. 뱅크시가 스프레이를 들었을 당시 그라피티는 거리를 어지럽히는 범죄 행위 취급을 받고 있었다. 뱅크시가 등장한 이후에야 그라피티는 조금씩 예술품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주제는 주로 반전, 탈권위, 불합리한 제도 고발 등에 집중돼 있다. 노상방뇨를 하는 영국 근위병, 바주카포를 들고 있는 모나리자 등 대표 작품은 얼핏 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한번 더 생각해 보면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성 상실 등을 냉철히 고발하고 있다.

작품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영국에서는 뱅크시 작품이 그려진 곳을 표시해 주는 지도책이 나왔고, 여행사들은 그의 작품을 찾아가는 투어코스도 개발했다. 뱅크시 작품으로 오인할 그림들이 거리에 우후죽순 생겨나자 팬들은 그가 그린 ‘진품’을 감별하는 방법을 교환하고, 나중에는 뱅크시 본인이 그의 작품과 위작들을 구분하기 위해 SNS에 자신의 그림을 직접 올리기 까지 했다.

영국 웨일스의 남부도시 포트탤벗의 한 차고 벽에 그려진 뱅크시의 그림. 포트탤벗=AP 연합뉴스
◇예술학도서 길거리로 나선 ‘키스해링’

그라피티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작가는 키스해링이다. 195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난 키스해링은 1978년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 진학해 정통 미술학도의 길을 걷는 듯 했다. 하지만 뉴욕 거리의 벽면과 지하철 플랫폼에 그려져 있는 낙서 스타일의 그림들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은 그는 마커펜과 분필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그는 길거리, 지하철, 클럽 등의 벽을 캔버스로 삼아 간결한 선과 생생한 원색을 바탕으로 한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그림들을 닥치는 대로 그리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공공기물 훼손혐의로 경찰에 여러 번 체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간결한 터치 속에 인종차별, 에이즈, 인권 등의 사회적 주제 의식이 담겨 있는 키스해링의 그림이 대중의 시선을 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키스해링의 대표작 무제. 한국일보 자료사진

키스해링은 1981년 토니 샤프라치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마침내 ‘스타 작가’로 부상하게 됐다. 1985년부터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 ‘낙서 회화’라는 새로운 회화 양식을 창조해 낸 사람으로도 평가 받는다. 특히 그의 그림은 티셔츠와 장난감 등에 옮겨지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키스해링의 작품은 지금도 각종 의류와 머그컵, 휴대폰 케이스 등에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상업적인 행보 때문에 스트리트 아티스트 사이에서는 그를 진정한 그라피티 작가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러나 그가 길거리에 남긴 작품들로 인해 그라피티가 대중의 관심영역으로 부상했다는 점을 들어 키스해링을 초기 그라피티를 부흥시킨 작가로 평가하는 미술평론가도 적지 않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