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2막] <7> 시니어 모델 소은영씨 
 ※ 은퇴 이후 하루하루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삶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한국일보>는 우아하고 품격 있게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는 소은영씨가 15일 서울 서초구 소재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청춘(靑春)의 몸이 얼마나 튼튼한지와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한지를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고, 이는 ‘시들어 가는 노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라고 작가 민태원은 젊음을 예찬했다.

예부터 우리는 젊음의 아름다움은 높이 평가하면서 주름과 흰 머리, 검버섯 같은 노화의 흔적은 숨겨야 할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영화와 드라마, 광고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한때는 누구보다 눈부신 청춘을 자랑했던 그 누구라도 나이가 들면 정해진 수순인 양 주인공 자리에서 물러나 빛도 들지 않는 깜깜한 무대 아래로 은퇴한다.

모두가 젊음의 눈부심을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지는 해의 황혼이 뜨는 해 보다 멋질 수 있다”고 시니어 모델 소은영(75) 씨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그는 어린 시절 연예인을 꿈꿨지만 “교육자 집안에서 ‘딴따라’는 안 된다”는 반대에 수십 년을 누군가의 아내, 그리고 엄마로만 살아왔다. 아이들이 모두 자라 집을 떠나고서야 그동안 미뤄뒀던 꿈을 이루기 위해 시니어 전문 모델학원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지난 2017년 시니어 모델 최초로 서울 패션위크 무대에 오르는 기록을 세운 소씨. 어느새 4년차 어엿한 직업 모델로 자리잡았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다 70세가 넘은 나이에 모델로서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된 소씨는 인생 2막인 “지금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라고 털어놨다.

 ◇연예인 되려 머리카락 밀었던 ‘무서운’10대 

발레리나의 튀튀를 닮은 시폰 소재의 레이스 치마와 진분홍 색의 민소매 니트, 12㎝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높은 하이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시니어 모델 전문 교육기관 제이액터스에서 만난 소씨는 말 그대로 모델다운 화려한 차림새였다. 그와 비슷한 연배가 되면 꺼리기 쉬운 청바지도 즐겨 입어 오히려 50대에 접어든 딸들이 “엄마는 옷이 그게 뭐냐”고 타박을 줄 정도다. 그렇지만 무리하게 젊어 보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흰머리가 하나 둘 늘기 시작하자 과감하게 백발로 탈색을 했다. 미용사마저 흰색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이는 건 처음이라면서 놀라워했지만 소씨는 “나이가 들어 하얗게 변하는 머리카락도 나의 특징”이라고 여겼다. 젊어 보이게 꾸미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나이 든 모습이 ‘모델 소은영’의 가치를 더욱 살려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지금은 백발로 트레이드마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소씨가 모델이 되기까지 그의 머리카락은 두 번이나 싹둑 잘리는 수난을 겪었다. 1945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동네에 ‘임춘앵’ 같은 극단이 오면 열일 제쳐 두고 달려가는 열성 팬이었다. 극이 끝나면 배우들이 머무는 숙소에까지 찾아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털어놓으며 그들과 어울렸을 정도다. 배우들은 어린 소씨에게 장구채를 쥐여주고 연주를 시켜 보며 소질이 있다고 격려했다. 그러나 중학교 때까지 한국무용을 배우던 소씨가 연예인의 길로 빠질까 노심초사했던 할머니는 그만두라며 허리까지 오던 긴 머리를 싹둑 잘라냈을 정도로 격렬하게 반대했다. 소씨는 “서러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고등학생이 된 소씨는 이번엔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머리를 빡빡 밀었다. 바리캉도 없던 시절이라 아버지의 면도칼로 머리카락을 자른 탓에 상처도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머리 꼴이 이 지경이면 학교에 보내지 않겠지’라는 계산이었다. 그 후엔 어떻게 됐을까. “전교에서 유일하게 모자 쓰고 다니는 학생이 됐다”며 소씨는 웃었다. 대학 시절에는 방송국의 배우 오디션에 2차까지 합격했으나, 집안에 들켜 3차 시험은 쳐 보지도 못했다.

공부에는 영 취미가 없고 연예계에 관심을 보이는 소씨를 두고 집안 어른들은 ‘얼른 결혼시키자’며 맞선을 주선했다. 그리곤 지금의 남편을 만나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채 23세에 결혼을 했다.소씨는 “머리를 밀었다는 과거는 평생 남편한테도 이야기해본 적 없고 자식들도 모르는 일인데 처음 말하는 것”이라면서도 “꿈을 이뤘기에 이젠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주부로만 50년을 살다가 비로소 이룬 꿈 

그 후로는 50여년을 주부로 살았다.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뒷바라지하면서 남편의 말이라면 검은색을 흰색이라고 해도 군말 없이 따랐다. 그러다 아이들이 모두 자라고, 시끌벅적하던 집에는 노부부만 남았다. ‘나는 70여년간 뭘 했나’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집에 앉아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다가 삶이 끝나는 걸까. 소씨는 늦게나마 미뤄 둔 꿈을 이루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용기 내 찾아간 시니어 전문 모델학원에서 소씨는 가장 나이 많은 수강생이었다. “이 나이에도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컸다. 첫 수업 때는 평생 신어 보지 않았던 높은 구두가 어색해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허리를 곧게 펴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뻘뻘 났다. 발은 온통 물집투성이였다. 그렇게 꾸준히 1년여를 연습한 끝에 2017년 국내 최대 규모의 패션행사인 서울 패션위크에 시니어 모델 최초로 서는 감격을 맛보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얼굴을 꼬집어 봤다고 한다. 소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10대나 20대의 모델들이었다. 그는 “처음엔 너무 떨려 청심환을 먹고야 겨우 (무대에)오를 정도였는데, 이젠 실수를 해도 자연스레 넘기는 여유도 생겼다”고 말했다.

“인생이 뒤집어졌다”고 소씨는 표현했다.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이 나이 들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것이다. 패션쇼 무대에 서는 것은 물론 라디오 방송 출연, 인터뷰 등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젠 그를 보고 ‘용기를 내 (모델 일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하는 팬도 생겼을 정도다. 평생을 가정의 테두리에서 살았기에 처음 경험해 보는 사회생활의 감격도 크다. 남편이 준 월급으로만 살림을 꾸리며 살았는데, 태어나 처음 벌어본 돈으로 남편에게 용돈을 줬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비록 많은 돈은 아닐지라도 이 나이에 몸을 움직여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소중하고 훌륭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열정이 있다면 도전하세요” 

소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들에게도 주저하지 말고 나서라고 추천한다. “전문적인 모델 학원이 부담스럽다면 백화점 문화센터 수업에라도 일단 가 보라”고 했다. 시니어 모델은 큰 키를 비롯한 신체적 조건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열정만 있다면 도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씨의 키 역시 다른 모델들보다는 살짝 작은 160㎝이지만 벌써 수 차례의 패션쇼에 섰다. 그는 “바른 자세가 기본이기에 나이가 들어 굽는 등허리를 펴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손자뻘인 동료 모델들과 어울리며 얻는 활력은 덤이다. 나이가 들수록 대화를 나눌 상대가 적어지기 마련인데, 공통 관심사를 가진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절로 기운이 난다고 그는 전했다. 막상 소씨의 자녀들은 ‘나이 들어 괜한 고생’이라며 그의 도전을 반기지 않았다. 그는 자녀들에게 “너희 인생이 아니고 내 인생이니 그런 소리 말라”고 했다. 이제 나를 위해 살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제 소씨에게는 모든 일상이 패션쇼 무대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스크린 도어에 비친 자신을 보며 틈틈이 포즈 연습을 한다. 승객이 뜸한 시간에는 지하철 객차 안을 이리저리 걸어 보기도 한다. 큰 무대에 서보고 싶어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운동을 하는 등 건강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두세 정거장 정도의 거리는 굳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고 걷는다. “밀가루는 물론 라면도 먹어 본 적 없다”면서 몸매 유지를 위한 이른바 모델용 식단도 지킨다.

최근엔 주목받는 시니어 모델이 늘면서 경쟁심도 생겼다. 소씨는 “다른 모델들을 보며 ‘더 잘해야지’ 결심한다”며 “욕심이 커졌다”고 표현했다. 더 많은 패션쇼에 서는 것은 물론 연기자도, 광고 모델도 해 보고 싶다고 한다. 뒤늦게 겨우 이룬 꿈인 만큼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욕심을 부릴 예정이다. “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무대 위를 걷고 싶습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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