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산문집 ‘여행의 이유’ 출간

신간 '여행의 이유'를 김영하 작가가 18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책을 쓴 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세계관광기구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해외로 여행을 떠난 전세계 인구는 13억 2,200만명.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ㆍ여행하는 인간)라 칭하기도 했다. 인간은 왜 떠나며, 여정에서 무엇을 발견하며, 무엇을 갖고 돌아오는가. 도대체 여행의 ‘이유’는 무엇인가.

김영하(51) 작가의 신작 산문집 ‘여행의 이유’는, 제목 그대로 작가가 여행의 ‘이유’를 찾아 떠난 기록이다. 김 작가는 스스로를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 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고 할 만큼 글쓰기와 여행을 많이, 열심히 해 왔다. 책은 그런 그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그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15소년 표류기’까지, 김 작가가 걷고 읽은 경험을 통해 독자는 여행의 이유를 이전보다 깊고 넓게 알게 된다. ‘김영하’와 ‘여행’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책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뜨거웠다. 예약 판매를 시작하자 마자 온라인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휩쓸었다.

그렇게 ‘뜨거운 이름’인 김 작가를 최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나 책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들어 봤다. 우선 책에 소개하지 않은 여행 팁을 물었다. 김 작가는 ‘자신만의 주제를 갖고 떠나기’부터 꼽았다. “어느 나라를 가든 꼭 가봐야 할 명승지는 누구나 가보거든요. 결국 비슷하고 균질적인 경험만 하게 돼요. 유명 관광지에 있는 명품 숍에 가봤자, 어느 나라에나 있는 똑같은 물건만 보고 오는 거죠. 저는 대신 그 지역에서만 열리는 벼룩시장을 가봐요. 그곳에만 있는 물건, 게다가 20년, 30년 전 물건들이 나오는데, 그런 게 ‘나만의 여행’을 만들어 주죠.”

김 작가의 다음 팁은 ’기억의 수단 확장하기.’ “여행지의 소리를 녹음해 보세요. 그 나라에서만 파는 향신료를 사 보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기억을 촘촘히 하는 데 도움이 되죠. 여행은 미각, 후각, 청각, 촉각까지, 모든 공감각을 사용하러 가는 거잖아요. 가끔은 사진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다양한 미디어와 몸의 여러 기능을 동원해 기억하려 해 보세요.”

김 작가는 ‘정체성의 초기화’를 위해서라도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대근 기자

책의 한 챕터는 tvN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에 할애돼 있다. 알쓸신잡 출연 이후 김 작가의 자리는 ‘믿고 읽는 소설가’에서 말 한마디가 파급력을 갖는 ‘대중 지식인’으로 바뀌었다. 그가 방송에서 “세상에서 사라져서는 안 되는 책”이라고 강력 추천한 만화 ‘내 어머니 이야기’는 복간돼 10만부가 팔리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작가에 대한 정의를 다시 세웠어요. 글을 써서 책을 내는 것을 넘어서, 대중에게 ‘문학적 경험’을 제공하는 사람이라고요. 작가로서 책을 혼자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매체를 통해 권유하는 것은 사람들이 문학적 경험에 가까이 가도록 돕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번 책의 버전은 두 가지다. 대형 서점 용과 동네 독립 서점 용. 독립 서점 버전을 조금 더 신경 써서 만들었다. 거기에도 ‘작가의 책임감’이 작용했다. “동네 서점의 생존은 지속 가능한 출판 생태계를 위해 굉장히 중요해요.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자면 대형 서점이 동맥이고 동네 서점이 모세혈관죠. 동맥이 훨씬 많은 피를 운반하지만 곳곳에 퍼져있는 모세혈관의 역할도 중요하잖아요. 동네 서점이 생존하게 하려면 ‘굳이 동네 서점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 줘야 해요. 동네 서점에서만 파는 책이 한 이유가 될 수 있겠죠. 작가들이 의식적으로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ㆍ차별 받기 쉬운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혜택을 줘서 불평등을 시정하는 제도 혹은 방향)’을 취할 필요가 있어요.”

여행의 이유는 여행자마다 다를 테고, 김 작가의 새 책도 독자마다 다르게 읽을 것이다. 김 작가가 책을 가장 권해 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정체성을 초기화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유럽에서 배낭 여행 중인 한국 여성을 만난 적이 있는데, 여행을 하면서 굉장한 해방감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서 남자친구에게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을 당하고 있었다고 해요. 일상에서는 나를 규정하는 것들이 많지만, 여행지에서는 내가 누구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요. 떠나 보면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누구인지 비로소 알게 돼요. ‘나를 규정하는 타인의 말’을 혼자 힘으로는 거부할 수 없을 때, 그 때는 도망가는 게 최선입니다(웃음).”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