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일 즉위하는 나루히토(德仁ㆍ59) 일왕 시대에 맞춰 정해진 연호 ‘레이와(令和)’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 일본인 학자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군국화 경향을 비판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일본이 한반도 등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점령한 역사가 있다며 그러한 참혹한 역사는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새삼 강조했다.
일본 고대 시가집 ‘만요슈’(万葉集) 연구의 권위자인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ㆍ90)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명예교수는 아사히 신문과의 20일 자 인터뷰에서 레이와가 새 연호로 선정된 배경과 의미를 설명하면서 일본의 군국화와 한반도와의 역사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지난 1일 열렸던 9명으로 구성된 연호 결정 전문가 회의 일원으로 만요슈 제5권 ‘매화의 노래’에 수록된 ‘레이와’를 새 연호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시구는 ‘새 봄의 길월(음력 2월)이 되니 공기는 맑고(아름답고) 바람은 온화(和)하다’라는 의미다.
나카니시 교수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은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일본 언론은 그가 고안한 레이와 등 6개 방안이 각료 회의에 올랐고 이 가운데 아베 총리가 레이와를 최종 선정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카니시 교수는 “레이와 출전인 만요슈 ‘매화의 노래 서(序)’는 한 사람이 읊은 것이 아니라 32명이 노래를 매개로 모여 서로 마음을 통하는 모습"이라며 그것이 '와'(和)라는 의견을 밝혔다. 또 “국가와 국가 사이에 ‘와’가 있는 상태, 그것은 평화”라며 “레이와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아사히 신문은 ‘평화’라는 단어를 강조한 이유를 묻자 나카니시 교수가 중학생 시절 겪었던 미국의 도쿄 대공습 등 전쟁 체험담을 거론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그는 “전후(태평양전쟁 종전 후) 약 70년간 일본 국민은 자국의 군국화를 그럭저럭 막아낸 덕분에 평화를 지켜 왔다”며 “그러나 지금은 어려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2012년 말 제2차 집권을 시작한 아베 정권과 우파 보수층이 '보통 국가화'를 내세우면서 무력 행사 영구 포기와 육해공군 등 전력 불(不)보유를 규정한 기존 ‘평화헌법’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된다.
나카니시 교수는 실제로 “정치 지도자는 (주변국과의 안보문제를) 걱정하는 입장일 수 있지만, 그래도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 성(聖)스러운 하나의 선이 있다고 호소하고 싶었다”면서 그 선은 일본이 군국화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일본이 앞으로 독선과 고립에 빠지지 않을 길은 '와'를 추구하는 것이라면서 '와'와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개념이 폭력적으로 다른 나라로 '월경(越境, 침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표적인 사례로 일본이 한반도 등에 무력으로 밀고 들어간 역사가 있었다면서 그런 근대 시기의 참혹한 역사에는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만요슈의 일부 시가(詩歌)가 일제가 일으킨 전쟁 당시 일왕을 위해 죽는 것을 미화하는 데 사용됐다는 지적에 대해선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국가주의적, 군국주의적인 편의를 위해 권력자에 의해 고전이 이용된 사례였다"고 인정했다. 또 “전전(戰前)의 일본은 '신의 나라'로 특별시 하는 풍조가 있어 전쟁이 성전(聖戰)으로 정당화됐다"며 "거짓(fake)이었지만 그런 일본적 특성을 보여주고 싶은 세력에게 만요슈가 이용당한 것이다. 고전을 이용하고자 하는 세력은 지금도 있다"고 경계했다.
김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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