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000년대 초반 세계 바둑계를 주름잡았던 동갑내기 두 선수 하향세 뚜렷
무명 선수 등에 패배, 기전 예선 탈락 수모도…자국 랭킹 이세돌 9단 12위, 구리 9단 36위
하지만 아직도 자국내 프로리그에선 주축 선수로 활약…자기관리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2012년 9월에 개최됐던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우승상금 3억원) 결승에서 승리한 이세돌(왼쪽) 9단과 구리 9단이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동갑내기 라이벌은 반상(盤上) 천하를 양분했다. ‘같은 하늘 아래 2개의 태양은 없다’는 속설의 무게감도 이들에겐 미미했다. 출중한 실력에, 덤으로 장착된 스타성은 판박이다. 2000년대 한·중 대표주자로 세계 바둑계를 호령했던 이세돌(36) 9단과 구리(36) 9단의 전성기 시절 반상 행마는 그랬다.

천하를 호령했던 두 선수였지만 세월 앞에선 묘수 찾기에 실패한 모양새다. 30대 중반에 들어선 두 선수의 하향세가 뚜렷해서다. 무명 선수에게 일격을 당하고 일반 기전에선 예선 통과조차 버거운 게 현실이다. 최근 벌어진 ‘제24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우승상금 3억원) 예선에서도 두 선수는 모두 신예기사들에게 수모를 겪으면서 예선 탈락했다. 이세돌 9단은 D조 예선 2차전에서 중국의 천셴(22) 6단에게 146수만에 대마가 잡히면서 일찌감치 짐을 쌌다. 구리 9단 역시 C조 예선 결승에서 자국의 루리옌(18) 초단에게 무릎을 꿇었다. 10여년 전, 닮은 꼴인 두 선수의 눈부신 이력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사실 두 선수는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몰고 다녔다. 우선, 프로바둑 기사들의 경쟁력 평가 지수인 세계대회 우승 성적표(자국내 대회 우승 제외)가 화려했다. 이세돌 9단은 지금까지 18개의 세계대회 우승컵을 수집했다. 이는 한국 바둑의 ‘살아있는 전설’인 이창호(44) 9단(23개)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으로, 또 다른 전설인 조훈현(66) 9단(11개) 보다 많다. 구리 9단 역시 8번에 걸쳐 세계대회 우승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중국 바둑의 간판스타로 군림했다.

2012년 9월에 열렸던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 3국에서 승리한 이세돌(오른쪽) 9단이 구리 9단과 경기 직후 복기를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세계대회 우승 기록만 살펴보면 이세돌 9단이 구리 9단에 앞서면서 한 수 위로 보이지만 두 선수의 맞대결 성적은 말 그대로 막상막하다. 비공식 대국을 포함할 경우, 두 선수의 상대성적은 현재까지 25승1무25패로 정확하게 ‘5대5’ 승부를 연출하고 있다. 공교롭게 두 선수의 생년월일까지 이세돌 9단은 1983년3월2일, 구리 9단은 1983년2월3일 등으로 예사롭지 않다.

세계 바둑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두 선수도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턴 달라졌다. 지난해 이세돌 9단의 경우엔 53승38패(58.24%)에 그쳤다. 현재까지 1319승 3무 572패(69.75%)를 기록 중인 이세돌 9단의 통산 전적에 비춰보면 현저한 하락세다. 이세돌 9단은 급기야 지난해 10월, 2009년 국내에 랭킹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톱10’에서 밀려났다. 이후, 10위권 밖에 둥지를 튼 이세돌 9단은 올해 4월 현재 12위에 머물러 있다. 이세돌 9단은 이달 초 벌어졌던 ‘제24기 GS칼텍스배 프로기전’(우승상금 7,000만원) 8강전에선 무명에 가까운 이호승 3단(32·92위)에게 충격패까지 당했다.

이세돌(왼쪽) 9단과 구리 9단이 2013년11월 중국 베이징(北京) 캉라이더(康萊德) 호텔에서 거행됐던 'Mlily 몽백합(夢百合) 이세돌-구리 10번기'(우승상금 8억5,000만원) 개막식에 참석,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이듬해 1월부터 열렸던 이 세기의 대결에선 이세돌 9단이 6승2패로 완승했다. 한국기원 제공

구리 9단 또한 세월이 야속할 뿐이다. 중국기원에 따르면 구리 9단이 지난해 거둔 성적은 16승25패(승률 39.02%)로 승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현재 구리 9단의 자국 랭킹은 36위로 상위권에선 멀어진 상태다. 이세돌 9단과 함께 한 때 세계 바둑계를 주름 잡았던 시절에 비해선 아쉬움이 묻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구리 9단의 경우 2015년 중국 최고 명문인 칭화대 역사학과에 입학, 학업을 병행하면서 바둑에 전념하기 어려운 환경도 고려해야 된다는 시각도 있다.

바둑계내의 두 선수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두 선수의 천재성을 감안할 때 조금 더 집중력만 발휘한다면 지금 보단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과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겠냐”며 이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이 공존한다. 하지만 두 선수의 집념에 관한 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바둑TV 해설위원인 홍민표(35) 9단은 “10~20대 기사들이 주류인 바둑계에서 30대 중반 선수가 성적을 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며 “여전히 자국내 프로리그에서 주축 선수로 활약 중인 두 선수의 자기 관리는 후배들이 눈 여겨 볼만한 부분이다”고 평가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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