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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최고 복지국가의 일하는 엄마

입력
2019.04.20 04:40
수정
2019.04.20 14:3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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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임신 후, 가장 처음에 한 것은 유치원의 대기자 명단에 등록을 한 것이었다. 남편과 나의 유급 출산 휴가를 합친 11개월을 보내고 나면 바로 아이를 종일 유치원에 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등록하면서, 정말 운이 좋아 바로 집에서 가까운 유치원에 배정되기를 바랐다. 자리가 안 나면 정부가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지원금을 주기는 한다. 하지만 그 돈으로 아이 돌볼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다. 유치원은 한 달에 45만원 정도의 비용이면 된다. 그동안 소득의 40% 이상 냈던 세금을 돌려받는 첫 기회다. 다행히 집에서 걸어서 20~30분 거리에 있는 유치원에 배정받았다.

출산 휴가 이후, 일을 다시 하러 간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물론 나는 시키지 않아도 집안일도 하고 아이도 챙기는 남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하고는 상당히 다른 삶을 시작했다. 유치원은 오전 7시30분에 문을 연다. 대부분의 직장은 8시에 시작한다. 이곳의 유치원과 학교는 급식이 없다. 그래서 매일 아침 최소 3개의 도시락과 과일 박스를 준비해야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이곳의 아이들은 점심시간이 최소 두 번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여러 번에 걸쳐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계획된 것이라 좋은 일이지만, 매일 아침 이것을 준비하고 싼다는 것이 항상 쉽지는 않다. 6시에 일어나서 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아이와 함께 7시에 집을 나선다. 해가 아주 늦게 뜨는 겨울에는 마치 밤에 어디를 가는 기분이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준 후, 8시 정각에 시작하는 미팅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1초도 지체할 수가 없다. 유치원은 오후 4시30분에 문을 닫는다. 오늘은 남편이 4시 정도에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기로 했다. 나는 집에 가기 전에 슈퍼마켓에 들러야 하고, 5시 정도까지 집에 도착할 예정이다.

5시에 집에 도착한 후, 재빠르게 저녁 준비를 해서 5시30분쯤 식사를 시작했다. 이곳 사람들은 저녁을 무지 일찍 먹는다. 그래서 그런지 저녁 식사라는 단어는 하루와 중간이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저녁 식사 후, 식기 세척기를 돌린 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남편과 산책을 나갔다. 산책하면서 출산 휴가도 마쳤으니, 좀 더 커리어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남편과 나누었다. 나는 컨설팅회사에서 일한다. 컨설턴트이다 보니, 프로젝트에 따라 늦은 밤까지 일해야 하는 날도 있고 출장을 가야 하는 날도 많다. 남편이 나보다 더 아기를 잘 챙기기는 하지만, 남편에게만 다 맡기고 내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좀 미안하다. 남편은 오페어(Aupair)를 고용하는 것이 어떨까라는 제안을 했다. 오페어는 18세에서 30세 사이의 해외젊은이들이 와서 돈도 벌면서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비자를 발급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오페어는 고용하는 가족의 아이를 돌보거나 가사일을 도와 주면서 일주일에 30시간을 일하고, 1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고용하는 가족은 오페어가 살 공간과 식비 역시 부담해야 하고 1년에 약 120만원 정도를 언어 수업을 듣는 비용으로 지원해야 한다. 오페어가 아주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좀 문제가 있다. 오페어를 고용하려면, 방이 하나가 더 필요하다. 이미 집을 사기 위하여 세후 연 소득의 10배가 되는 돈을 빌렸다. 같은 지역에서 방이 하나 더 있는 집을 사는 것은 무리다. 약간 먼 지역으로 이사를 가자니,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1시간 정도 걷다가, 남편이 8시에 미국과 콘퍼런스 콜이 있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씻기고 침대에 눕힌 후, 낮에 끝내지 못한 일을 하기위해 잠시 노트북을 폈다. 또 쉽지만은 않았던 하루가 지나갔다. 그래도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영주 닐슨 스웨덴 예텐보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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