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뒤 '낙태죄 위헌'이란 문구가 새겨진 손팻말을 날려 보내는 상징 의식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2012년 “태아를 성장 단계에 따라 구분하여 보호의 정도를 달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2010헌바402)는 판단을 뒤집고, 이번 결정에서는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하고 있는 자기낙태죄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2017헌바127)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임신한 여성과 태아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있다.

2012년 헌법재판소가 임신한 여성과 태아를 서로 대립하는 존재로 보았다면, 2019년 헌법재판소는 이 둘을 별개의 생명체인 동시에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특별한 관계로 보았다. 독립적인 동시에 의존적인 모와 태아와의 관계는 임신의 전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출산 후 양육의 과정에서도 이어지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이해관계는 그 방향을 달리하지 않고 일치한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임신을 중단하겠다는 여성의 결정이 태아의 생명, 그 생명이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존재하고 성장하기 위한 보호와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한 법익을 희생하기 보다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실제적으로 조화시키고 최적화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확인한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국회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형법 및 모자보건법을 개정하여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기본적인 권리 실현을 도모할 수 있는 최적화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위해 어떤 절차들이 마련되어야 할지 의견들이 제출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란도 시작되었다. 최근 정의당에서 형법상 자기낙태죄 및 동의 낙태죄 삭제안과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 사유별 기간 제한을 두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 내지 행정벌을 두는 입법안을 발의했다. 의사의 개인적 신념이나 종교적 양심에 따른 임신중절 진료거부권에 대한 의료계의 성명이 있었으며 관련 국민청원이 제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합법적 임신중단의 허용기간에 대한 논란뿐만 아니라 상담의무와 상담 이후 의무적인 숙려기간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 방향이 임신중단의 허용기간이나 허용절차, 임신중단시술의 거부 등 제한 요건에 집중됨으로써, 결국 원칙적으로 낙태를 처벌하되 그 처벌을 면책할 수 있는 절차적 기준을 어떻게 둘 것인가를 합의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생명보호라는 공익적 목적을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은 이미 해외 사례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2014~2017년 평균 낙태율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가장 강력한 처벌 또는 금지법제와 문화를 가진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이 1,000명당 44건으로 가장 높고 허용적인 법적 제도를 가진 서유럽은 1,000명당 16명으로 가장 낮은, 모순적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Abortion Worldwide 2017). 다른 의료서비스와 달리 임신중단 승인을 위해 도입되는 각종 절차들은 낙태를 억제함으로써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초기 안전한 낙태에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불법적 낙태시술로 유인함으로써 안전한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여성의 권리를 제한할 뿐이다. 정부 허가를 받은 의료기관에서만 합법화된 임신중단이 가능한 네덜란드는 현재 전국 12개 기관에서만 낙태가 가능하여 여성이 먼 거리를 이동하여 의료기관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

개인적 양심에 따른 진료거부를 제한없이 인정하는 나라들에서는 시술을 할 수 있는 기관을 찾지 못해 임신중단이 가능한 허용기간을 초과하는 사례들도 보고되어, 결국 2015년 사회적 권리를 위한 유럽위원회(ECSR)는 유럽사회헌장에 기초하여 양심적 사유로 인한 진료거부를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임신중단을 결정한 여성에게 상담의무를 부과하고 6일의 의무 숙려기간을 두었던 프랑스 역시 형식적인 절차가 여성에게 심리적 부담을 줄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시간 지연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유로 2014년 이를 폐지하였다.

임신과 출산의 결정은 여성의 자기결정이지만, 자신과 가족, 그리고 태어날 아이의 생명과 삶의 존엄에 대한 결정이다. 임신중단 결정의 사회경제적 사유로 단순하게 표현되지만, 여기에는 생명이 단지 생존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명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의 환경과 조건이라는 가변적 요소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맥락이 깔려있다. 생명 보호는 처벌과 규제만으로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생명보호를 위한 사회적 조건과 지원체계를 어떻게 구축해나갈 것인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최적화 해법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논의는 생명보호라는 국가의 원리를 실현하고 건강한 임신과 출산의 결정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이다. 피임 등 성과 재생산 권리 실현을 위한 교육 체계와 임신중단 의료서비스 체계를 재정비하고 충분한 숙고를 위한 정보 및 상담, 사회적 지원을 위한 체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모아져야 한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