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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표적] 러시아가 크림반도 침공하자… 한국산 K-9 자주포 급히 사들인 폴란드

입력
2019.04.18 17:00
수정
2019.04.18 18:3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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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전전긍긍했던 전차 강국 

※ 국제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 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폴란드가 러시아 위협에 맞서 긴급 수입한 한국의 ‘K-9’ 자주포가 포염을 뿜으며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폴란드가 러시아 위협에 맞서 긴급 수입한 한국의 ‘K-9’ 자주포가 포염을 뿜으며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방위산업 시장에서 폴란드는 2014년 국산 자주포 ‘K-9’을 다량 수입한 국가로 잘 알려졌다. 전차 강국으로 꼽히는 폴란드에 한국산 자주포를 수출했다는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정작 폴란드가 당시 한국산 K-9이 필요했던 이유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됐다.

◇러시아 접경 동부전선에 K-9 배치

폴란드는 2014년 한국산 K-9 자주포 차체 120대를 3억1,000만달러(약 3,500억원)에 구매했다. K-9 자주포는 독일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개발한 사거리 40km의 155mm 자주포다. 자주포 발사는 좌표를 확인한 뒤 화포 방향을 표적으로 돌리고 포탄을 장전하는 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 작업에 통상 5~10분 이상 소요되나 K-9 자주포는 이를 자동화해 발사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특히 15초 이내 3발을 연속 발사해 3발의 포탄이 하나의 표적에 동시에 꽂히도록 한 ‘TOT’(Time On Target) 능력은 독보적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폴란드는 지상군과 장갑차량 부문에서 높은 수준의 자립도를 지닌 전차 강국이다. 자체적인 전차 생산이 가능한 폴란드가 한국 자주포 차체를 구매했던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에 따르면 당시 폴란드 육군은 폴란드 국영기업이 개발한 자주포를 운용 중이었다 그러나 포탄 발사 뒤 포신이 제자리에 돌아오지 않는 등 심각한 결함이 발견됐다. 다급해진 폴란드는 자체 개발한 포탑을 얹을 수 있는 자주포 차체를 해외에서 물색했고 K-9 자주포가 낙점된 것이다. 이렇게 폴란드가 들여온 K-9자주포 120대 전량은 ‘러시아’와 인접한 동부 국경으로 향했다.

◇러시아 크림반도 침공…폴란드로선 발등의 불

유럽 남서부와 북동부 사이에 위치한 폴란드의 서쪽 국경은 독일, 동쪽 국경은 러시아가 뒤에 버티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닿아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군사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폴란드의 동부 국경은 러시아와 대치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동부 국경인 셈이다.

러시아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 탓에 폴란드는 과거부터 러시아 침략에 고통을 받아 왔다. 1795년부터 세계 1차대전 종료까지 폴란드는 123년간 프로이센ㆍ러시아ㆍ오스트리아 3국에 의해 점령당했다. 2차 대전 초반인 1939년 독일ㆍ소련에 의해 동시 침공당한 뒤 분할 통치됐다. 구 소련 붕괴 이후 1999년 폴란드는 헝가리, 체코와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에 가입,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견제하려 했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되레 나토의 동진(東進)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러시아의 서진(西進) 사이에 끼여 전전긍긍해야 했다.

2014년 크림반도를 침공한 러시아 전차부대. AP 연합뉴스
2014년 크림반도를 침공한 러시아 전차부대. AP 연합뉴스

특히 2014년 3월 전 유럽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은 폴란드로선 국가적 비상사태였다. 러시아의 유럽 진출 교두보 격인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넘어갔다는 것은 곧 크림반도를 발판으로 한 폴란드 침공도 가능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폴란드가 한국 육군의 K-9 자주포를 긴급 수입하는 한편 급하게 매달린 곳은 미국이었다. 반러 정서가 강한 탓에 오랜 세월 친미 노선을 유지하긴 했으나,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이상 단순히 정치적 차원의 친미로는 부족했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폴란드 뒤에 미국이 버티고 있다는 강력한 대러 메시지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폴란드는 미국과의 실질적인 군사협력 강화에 매달렸다.

지난 2월 4억1,400만달러를 들여 미국의 고속기동용 포격로켓시스템(HIMARS)를 사들인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는 러시아의 단거리 전술 핵미사일인 이스칸데르-M에 대응하기 위해 47억5,000만달러 규모의 미국산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8개 포대도 구매했다. 폴란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무기 구입으로 기록됐다. 미국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인 F-35의 잠재적 수입국으로도 최근 거론되고 있다.

◇ “우리나라에 미군 배치를”

물론 러시아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미국과의 군사협력 강화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노르웨이는 자국 핀마르크주(州)에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MD)의 구축의 일환으로 대공 레이더 기지를 설치키로 했으며, F-35A 스텔스 전투기 52대를 내년까지 들여올 예정이다. 군사적으로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유명한 핀란드조차 2016년 8월 사상 처음으로 자국 영공에서 미국과 연합 공중전투훈련을 벌였고, 유럽 전통의 중립국 스웨덴도 같은 해 미국과 방위협정을 체결했다.

동ㆍ북유럽 국가들의 친미 행보 속에서도 폴란드가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폴란드의 ‘미군 상시 배치’ 노력 때문이다. 지난달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폴란드는 수도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200km 떨어진 포비츠에 미군 병참기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고 나토가 확인했다. 이 기지에는 1개 여단 규모 병력 주둔을 위한 각종 장비가 보관될 예정으로 2억 6,000만달러의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군은 나토군 일환으로 5,000여명의 병력을 나토 회원국에 순환 배치 방식으로 주둔시키고 있다. 폴란드는 순환 배치가 아니라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과 같은 상시 배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폴란드 육군이 미국에서 구매한 고속기동용 포격로켓시스템(HIMARS) 발사 장면. 미 육군
폴란드 육군이 미국에서 구매한 고속기동용 포격로켓시스템(HIMARS) 발사 장면. 미 육군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자국 내 미군 기지 건설까지 직접 제안해놓은 상태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러시아의 강한 반발 가능성 탓에 나토군 확장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며 “하지만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으로 폴란드로선 미군을 배치해야 할 명분이 강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나토가 발표한 ‘2018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폴란드의 국내총생산(GDP)대비 국방비는 2%를 넘어섰다. 이는 29개 나토 회원국의 평균인 1.51%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트럼프 대통령의 나토 회원국들에 대한 국방비 인상 압박에 폴란드가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는 것이다.

나토와 러시아가 맞서고 있는 힘의 질서가 지속되는 한 폴란드의 국방력 강화 속도는 늦춰지지 않을 전망이다. 독일ㆍ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과 정치적으로 가깝지 않은 폴란드로선 앞으로도 나토에서의 소속감 보다는 대미 안보 의존도를 키울 여지가 크다. 다만 폴란드의 무기 수입 증가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이후 폴란드 방산기업들 사이에선 정부가 자체적인 국방력 강화를 포기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K-9 자주포 수출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에 의한 반짝 호황에 그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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