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포천 이동막걸리 
[저작권 한국일보] 김형채 포천이동막걸리 사장이 17일 일동막걸리 생산 공장 앞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막걸리는 삼국사기에 등장할 정도로 우리 민족과 궤를 같이한 술이다. ‘막 걸렀다’고 해서 막걸리 또는 ‘맑지 않고 탁하다’고 해서 탁주라고 얕잡아 불리지만, 서민들에게는 풍진 세상의 고단함을 풀어주고 위로해 줬던 벗 같은 술이다.

도수는 6~7도. 소주에 비하면 낮고 맥주에 비하면 살짝 높다. 증류주가 아닌 발효주다 보니 향이 강하고 쉽게 배가 부른다. 투박한 멋과 맛의 막걸리는 그래서 농사꾼의 술이면서 새참이었다. 지금도 마트 가격은 1,500원 정도로 착하다.

긴 역사에 비해서 몸값이 너무 낮아 고마우면서도 슬픈 막걸리는 그렇다고 만들기가 쉬운 술은 아니다. 쌀이나 누룩의 상태, 물, 발효 시간, 온도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한 사람이 만들어도 일관된 맛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심지어 현대식 공장에서 매뉴얼에 따라 만들어도 맛이 달라질 때가 있다고 한다.

막걸리의 맛은 역시 재료인 쌀과 물, 그리고 누룩의 효모가 결정한다. 포천의 일동ㆍ이동면막걸리가 유명한 것은 포천(抱川ㆍ물을 품고 있다)이라는 지명에서 보듯이 물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포천이동막걸리 김형채(52) 사장은 전했다. 쌀도 경기미를 쓰고 누룩 효모는 한국식품연구원으로 제공받은 전통 효모를 자체 연구실에서 한층 섬세하게 배양해 쓰고 있다. 물은 지하 240m에서 끌어올린 것을 써 미네랄이 풍부하다. 미네랄이 풍부하면 감칠맛이 난다고 한다.

[저작권 한국일보] 포천이동막걸리의 직원이 발효실에서 막걸리 원료가 되는 증자된 밀가루를 살펴보고 있다. 고영권 기자

여기에 포천 5, 6군단 장병들의 홍보가 무엇보다 큰 역할을 했다. 한 지자체에 2개 군단이 몰려 있는 경우가 드문데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병사가 이곳에서 맛본 막걸리를 잊지 못하고 침이 마르게 칭찬한 게 오늘의 일동ㆍ이동막걸리 명성의 원천이란다.

17일 찾은 경기 포천시 일동면 청계산 자락에 위치한 ㈜포천이동막걸리는 고 이병규씨가 1932년에 장천양조장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손주 사위인 김남채(57)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사장인 김형채씨는 동생이다.

양조장은 신작로에 있다가 1991년 현재 장소로 확장 이전했다. 빨간색 벽돌 건물이 낡아 보이기는 하지만 87년의 역사는 조그맣게 마련된 사내 박물관에 항아리 몇 개와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양조장을 이전할 때 수백 개나 되는 숙성 항아리, 밥솥, 입국틀, 채 등 장비를 모두 남 줘버렸다고 한다.

상호도 어느덧 ‘상신주가’에서 ‘1932포천일동막걸리’를 거쳐 한 달 여 전 지금의 ‘포천이동막걸리’로 변경했다. 회사는 ‘일동’에 있는데 상호가 ‘이동’이 된 이유는 일ㆍ이동에 있는 막걸리회사 4곳이 합치면서 아무래도 지명도가 더 있는 ‘이동’을 회사 이름으로 택하자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외부에 공개를 안 한다는 공장 내부로 들어가자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막걸리 냄새가 새나왔다. 쌀ㆍ밀을 찌고 백국균을 입혀 술의 원료를 만드는 입국(粒麴) 제조실에는 근로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막걸리는 기본 재료인 입국을 만드는데 이틀, 입국에 물과 효모를 섞어 가장 중요한 밑주모(酒母)를 만드는 데 4일, 조금씩 양을 늘려가며 담금 숙성하는 데 7일 해서 총 13일가량 걸린다.

[저작권 한국일보] 김형채 포천이동막걸리 사장이 17일 공장 전시실에 전시된 50년 넘은 막걸리 숙성용 항아리와 입국(배양한 곰팡이)을 가루로 만드는 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스테인리스 용기에다 산도ㆍ당도 측정, 자동온도조절 등 현대식 생산관리가 이뤄지지만 그렇다고 한눈을 팔 수는 없다. 워낙 변화가 심해 매일 아침 따로 맛을 보고 숙성도를 체크해야만 단맛 신맛 쓴맛 떫은맛 청량감 등 5미가 갖춰진 제대로 된 막걸리가 나온다. 그래서 품질 검사 담당인 김기갑(49) 부사장은 담배는커녕 커피, 탄산음료도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김 사장은 “양조장은 이사하면 맛이 달라진다고 했는데 우리도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예전 맛이 나지 않아 한동안 고생했다”면서 “물이나 건물이 달라지면 막걸리 맛에 영향을 미치는 미생물도 달라져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할 만큼 막걸리는 섬세한 술이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또 “막걸리에는 비타민B와 함께 항암 효과가 있는 파네졸, 식이섬유, 고혈압억제성분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다”면서 “피부미용 효과도 있어 적당히 즐기면 여성들에게도 좋은 술”이라고 자랑했다.

포천이동막걸리는 일반 막걸리와 함께 한 병에 2만~3만원에 팔리는 프리미엄막걸리 ‘담은’도 생산하고 있다. ‘담은’은 햅쌀을 찌지 않고 생쌀 발효라는 독특한 공법으로 만들어 신선감과 보디감이 뛰어나다. 와인하고 경쟁하기 위해 개발한 이 회사 최고급 상품이다. 100병을 만들 재료에서 20~30병만 생산될 정도로 수율이 안 좋아 가격이 조금 비싸다.

이 회사는 또 쌀, 밀을 바탕으로 콩 땅콩 더덕 조 밤 찹쌀 등을 섞어 향취를 돋우거나 생막걸리, 살균막걸리 등 제품만 30여종에 달한다.

[저작권 한국일보]포천이동막걸리 공장 앞에 막걸리 모형이 세워져 있다.

김 사장은 “일동ㆍ이동면 양조 회사들이 통합한 것은 서울 50여개 제조장이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낸 서울장수막걸리처럼 대도약을 하기 위해서”라면서 “제품 개발과 기업로고(CI)작업, 유통 등에 힘을 합쳐 다시 한번 포천이동막걸리의 명성을 되찾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팁 하나. 생막걸리는 출시된 지 5~7일 때 제일 맛있다고 한다. 여기다 차가운 잔에 5~10도 정도로 냉장해 마시면 더 좋다. 살균막걸리는 유효기간이 1년이기 때문에 시기보다는 차게 마시는 걸 권한다.

막걸리의 영원한 난제인 ‘병 바닥에 쌓인 지게미를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도 김 사장은 명확한 판단을 내려줬다. 지게미를 버리는 거야 개인 기호지만 진짜 막걸리를 마실 거면 섞어 마시란다. 지게미에는 유산균, 효소, 식이섬유, 비타민 등이 훨씬 많이 함유돼 있고 맛도 좌우한다는 것이다. 두통을 유발한다는 편견은 과거 저질 막걸리 때나 해당 한단다.

김 사장은 “숙성실에 들어가면 발효가 되면서 탄산이 톡톡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효모가 내뿜는 바닐라향도 감미롭다”면서 “1970년대까지 국민 술이었다가 소주에 밀려 하향세를 걷고 있는 막걸리가 다시 한번 국민 술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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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이범구 기자 ebk@hankookilbo.com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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