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역사개입 문제 제기하는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 
 “역사정통론은 다양한 역사인식 가로막는 구태일 뿐” 
홍석률 교수는 18일 김범수 논설위원과 가진 인터뷰에서 "역사에서 정통론의 강조는 전근대의 왕조적 역사 인식의 반복일 뿐"이라며 "21세기에 걸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역사문제연구소와 역사학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가 최근 공동으로 개최한 학술대회가 눈길을 끌었다. ‘국가 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이라는 제목을 달고 현 정부의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보 역사학자들이 문재인 정부를 향해 불편한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행사였기 때문이다.

무엇이 불편했는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린 다음 날 개최된 이 학술대회 취지문에 잘 드러나 있다. 이들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점으로 ‘건국 백년’이 운위되는 것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충분한 소통 없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상설전시관 전시 내용을 ‘건국 100년’ 코드로 바꾸려는 점이나 육군사관학교의 뿌리가 신흥무관학교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2월 육사 졸업식 축사도 꼬집었다. 비판의 절정은 “이러한 방식의 역사 만들기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했던 과거 정권에 국한되는 문제인지 커다란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대목이었다.

모두 4명의 발표자 가운데 ‘임정법통론의 신성화와 대한민국 민족주의’를 발표한 이용기 한국교원대 교수는 “과거 진보 역사학계는 임정의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거나 이를 강조하는 것이 반공적ㆍ반통일적 체제 정당화 논리라는 점을 들어 임정법통론을 비판”했지만 “건국절 논쟁이 벌어지면서 침묵 속에 방관하거나 1919년설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또 “역사전쟁이 강화한 이분법적 논리에 갇혀 임정법통론으로 쏠리는 상황에서 곤혹스럽고 비겁했다”고 자책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총론 성격의 ‘역사전쟁을 성찰하며’를 발표한 홍석률(54)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를 18일 연구실에서 만나 진보 역사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이유를 들었다. 홍 교수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 분단문제 등을 재조명하는데 애써온 한국 현대사 전공학자다.

제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이 4월 11일 밤 여의도 공원에서 열린 가운데 임정요인들이 해방을 맞아 한국에 도착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이번 학술대회는 어떻게 열게 됐나. 

“임시정부의 의미를 부정하자는 게 초점이 아니었다. 모든 정통론적인 역사 인식이라는 것이 결국 역사논쟁을 과잉 정치화시키는 소모적인 것이고 역사인식을 협소화시킨다는 지적을 하려던 것이다. 역사문제에 대한 소모임 토론이 있었는데 거기서 3ㆍ1절, 임정 100주년에 즈음해 역사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 과거의 ‘역사전쟁’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정통론을 강조하는 역사인식은 21세기와 맞지 않는다, 촛불항쟁 이후에도 그런 현상이 강화되는 게 개탄스럽다는 문제의식이었다.”

 -학술대회 제목을 ‘역사전쟁’이라고 못박을 정도의 상황인가. 

“말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호주의 원주민 학살 때 이런 말을 썼고 1995년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원폭 투하 관련 전시회 때 미 재향군인회가 일본측 관점을 너무 반영한 거 아니냐며 들고 일어난 것도 역사전쟁이라고 했다. 한일 문제처럼 국가간 갈등에서도 흔히 쓴다. 지금 국내 분위기가 학술 논쟁의 차원을 넘어 무슨 내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져 이 용어를 썼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역사 대립 구도의 하나로 ‘종북론ㆍ친일파’ 갈등을 꼽았는데. 

“역사논쟁 과정에서 보수세력이 진보를 종북으로 몰아가니 거기에 대응하는 논리로 친일이라는 구도가 생겨났다. 역사 자체를 친일, 반일, 종북, 반북으로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다. 친일 청산은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프레임으로는 안 된다.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선배 학자들과 신진 연구자들의 갈등이 심해졌는데, 젊은 학자들은 식민지 공공성, 탈민족주의 주장을 내놓으면서 일제 식민지 시대를 복합적으로 보려고 했다. 진영 논리에 갇힌 역사인식에서는 이런 주제들이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승만ㆍ박정희 평가도 찬양과 비난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뉴라이트 학자들과 보수 언론은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두 지도자를 건국과 부국의 상징으로 삼는다. 최고지도자 중심의 역사관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대항하는 논리가 두 지도자를 악마화하는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역사 논쟁이 최고지도자의 공과를 따지는 논쟁으로 축소된다. 역사의 주체가 최고지도자가 돼버리는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가 모든 것을 다 결정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역사의 다양한 주체가 부각되지 못하고 마냥 지도자 공과 논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3ㆍ1절,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건국 논란’이 다시 불거지는 듯 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언제 실체로 존재했느냐고 하면 1948년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건국절’ ‘건국론’에는 이런 단순 사실만이 아니라 정체성 형성의 의미가 결부된다. 건국절 추진파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찬성했나 반대했나, 기여했나 안 했나를 잣대로 한국 현대사를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 수립 참가 불참가만 부각되는 역사인식은 국가중심적인 것이고 그 중에서도 수준 낮은 쪽에 속한다. 조선시대에도 왕조 개창 초기에는 개국공신만 부각됐지만 중기로 갈수록 정몽주 같은 사람이 선비의 추앙을 받았고 조정도 그를 인정했다. 한 국가의 정통성이란 그걸 누가 주도했느냐보다 그 국가가 표방한 가치와 목표가 무엇이냐를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 게다가 21세기 상황이란 국가만 내세울 수도 없는 것이다. 동아시아도 있고, 세계도 시야에 넣어서 봐야 한다.”

홍석률 교수는 18일 김범수 논설위원과 가진 인터뷰에서 "역사에서 정통론의 강조는 전근대의 왕조적 역사 인식의 반복일 뿐"이라며 "21세기에 걸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임시정부 법통론은 헌법에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이 1919년에 수립되어 1948년에 재건됐다는 것은 이승만의 논리라는 것이 이미 실증적으로 밝혀졌다. 이승만은 한성정부의 법통이 임정으로 이어졌다고 했고, 대한민국 국호도 그가 주장한 것이다. 이승만이 주도한 제헌 헌법에 그 내용이 들어갔다가 박정희 때 사라졌던 것이 87년 개헌에서 부활했다. 이 역시 보수가 주도한 보수적인 역사인식의 결과물이다. 그것을 보수적이지 않은 정부가 떠받드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이용기 교수에 따르면 ‘임정 법통’은 해방 후 독립국가 건설운동에서 등장한 우익의 정치 논리였고 제헌 헌법에 들어간 문구는 5ㆍ16 쿠데타 이후 다른 방식의 민족주의를 동원하려는 이유로 삭제돼 1980년대 이전까지 강조되지 않았다고 한다. 1987년 다시 등장한 것은 당시 보수세력의 민중사학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도 있다. 임정은 초기에 민족 대표성과 독립주권 상징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성을 담보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고, 이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전체 독립운동의 역사상을 축소시키고 남북 대결의식을 고취하는 냉전 논리를 강화할 우려가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진보 역사학계가 건국 100년 흐름에 침묵하거나 동조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모두 자기 반성을 하고 있다. 건국절 논란으로 인한 진영 논리 때문에 이런 비판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측면이 있었다. 촛불항쟁으로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야 하는데 생각지도 않게 임정법통론이 강화되는 움직임을 보고 지금이라도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나선 것이다. 임시정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초점은 아니다. 정통론적인 역사인식을 강조하는 것은 전근대 왕조적 역사인식의 재판일 뿐이다. 헌법 전문에 그런 내용이 포함된 것도, 역사서술에서 그런 게 강조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임정 평가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정통론에 입각한 역사인식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 개편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가. 

“적폐청산은 과거 잘못을 캐내서 책임자 처벌하는 게 핵심이 아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 시스템, 방법들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게 더 중요한데 지금 적폐청산은 그런 방향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상설전시관 전시내용을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과거 정권에서 만든 편향이나 오류를 시정할 부분이 있는 건 맞다. 당시 제대로 된 연구나 의견수렴, 자문 등도 없이 만들어 졸속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 그걸 바꾸려면 역사학자들과의 관계도 새롭게 구축하고 시민사회와 소통도 새롭게 해가면서 충분히 시간을 두고 개편해야 할 텐데 그런 게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청와대나 정부가 학계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박정희, 전두환 때도 정권과 친밀한 일부 학자들이 문화재나 역사 정책을 과잉대표해서 문제가 됐다. 민주화가 되었다면 그런 부분이 사라져야 하는데 정부가 일부 소수의 역사그룹하고만 소통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더 폭넓게 대화를 한다면 임정법통론이나 지역대결 극복을 위해 ‘가야사’를 연구하자는 식의 단순 접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역사 강조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는 게 좋을까. 

“육사가 신흥무관학교를 전신으로 한다는 발언은 그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독립군이 한국군의 주축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친일의 역사적 사실을 덮는 부작용을 낳는다.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역사인식 형성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부분은 시민사회나 역사학계에 맡겨야 한다. 정부는 그런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한 연구 지원을 하는데 머물러야지 정책으로 역사논쟁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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