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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대선] 투표용지 못으로 뚫고 손가락에 잉크 묻히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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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대선] 투표용지 못으로 뚫고 손가락에 잉크 묻히면 끝

입력
2019.04.17 12:14
수정
2019.04.1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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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출구조사 했더니 ‘10명 중 5명 조코위, 3명 프라보워’, 잠정 결과도 10%포인트 안팎 조코위 우세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선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커다란 투표용지를 펼치며 기표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선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커다란 투표용지를 펼치며 기표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17일 오전 7시(현지시간) 자카르타 남부 칠란닥(Cilandak) 지역 134선거구 투표소. 서민들이 주로 사는 마을 이슬람사원 옆 공터에 마련된 투표소는 언뜻 보면 공사장 간이 휴게소 같다. 대기 의자들 위에 파란 포장을 두르고, 신분 확인 책상, 투표용지 수령 책상, 기표소 등이 가지런히 놓였다. 기표소는 똑바로 서면 얼굴이 다 보일 정도로 반(半)개방적이다. 투표함과 기표소 가림 칸막이는 모두 종이상자 재질의 골판지다.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선 투표소에서 선거관리요원들이 투표 시작 전 소리 내 공명선거를 다짐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선 투표소에서 선거관리요원들이 투표 시작 전 소리 내 공명선거를 다짐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선거 시작 시간이 됐지만 바로 투표로 이어지지 않았다. 선거관리요원과 참관인(SAKSI)들은 7시가 되자 줄지어 서서 공명 선거를 다짐하는 선서를 했다. 이어 밀봉한 투표함을 개봉한 뒤 색깔이 다른 4가지(다른 지역은 5가지) 투표용지 숫자를 확인했다. 회색이 대통령을 고르는 투표용지였다. 이 마을 유권자는 287명, 투표용지는 298장이었다. 그러는 사이 접수 담당자는 기다리고 있는 주민들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번호가 적힌 대기표를 나눠줬다. 이 과정이 1시간이나 걸렸다.

인도네시아 대선 대통령 선거 투표용지.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대선 대통령 선거 투표용지.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오전 8시쯤 드디어 마이크로 “사투(1번)”가 호명되면서 투표가 시작됐다. 1시간 가까이 기다렸는데도 사람들은 짜증내는 기색이 없었다. 투표는 평온하게 진행됐다. 대통령 투표용지를 뺀 3가지 투표용지는 A2용지 크기로 너무 커서 기표소에서 펼치기가 불편해 보였다. 유권자는 원하는 후보가 표시된 부분을 못으로 뚫으면 된다. 이를 ‘뇨블로스(nyoblos)’라 부른다. 기표시간은 1인당 2~3분 소요됐다. 기표를 마친 유권자는 투표용지 색깔과 같은 투표함에 각각 표를 넣었다. 중복 투표 방지용으로 마련된 보라색 잉크에 손가락을 담갔다 빼면 투표가 끝난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선 투표소의 기표소 안에 기표용 못이 놓여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선 투표소의 기표소 안에 기표용 못이 놓여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1시간이 지나자 30명 정도가 투표했다. 이 중 10명에게 누구를 뽑았는지 물었다. 기자가 즉석에서 진행한 일종의 출구조사였다. 5명은 조코 위도도(별칭 조코위) 현 대통령, 3명은 프라보워 수비안토 그린드라당 총재, 2명은 무응답이었다. 서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임을 감안해도 조코위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특히 질문에 응한 여성들은 모두 조코위를 찍었다고 답했다. “한번으로는 부족하다” “인프라 구축 등 지금까지 잘해왔다” “상대편(프라보워)이 싫다” 등을 이유로 꼽았다.

투표 막판인 낮 12시30분쯤 다시 조사했을 때는 프라보워가 근소하게 역전하기도 했다. 몇 시간 사이에 예상 승자가 뒤집히는 초(超)접전 양상이었다. 오후 1시 투표 종료 4분 뒤 도착한 유권자는 그냥 돌아가기도 했다.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선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번호표를 받고 투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선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번호표를 받고 투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선거관리요원들과 참관인들은 급하게 점심을 먹은 뒤 오후 1시30분쯤 개표소를 정리하고 개표 준비에 들어갔다. 대자보처럼 커다란 개표 현황 종이를 벽면에 붙였다. 확인한 투표용지를 담을 박스도 준비했다. 마을 주민들이 개표 장면을 보려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선 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기표를 마친 투표용지를 색깔이 같은 투표함에 넣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2019-04-17(한국일보)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선 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기표를 마친 투표용지를 색깔이 같은 투표함에 넣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2019-04-17(한국일보)

오후 2시 개표가 시작됐다. 투표율은 62.4%(유권자 287명 중 179명 투표)다. 참관인은 “너무 적다”고 말했다. 개표는 투표함에서 꺼낸 투표용지를 펼쳐 참관인들에게 보여주고 서로 번호를 합창한 뒤 한 명이 현황 종이에 다섯 개 묶음으로 막대 표시를 하는 식이었다. ‘바를 정(正)’ 자를 써가며 수를 세는 예전 학교 반장 선거가 떠올랐다.

인도네시아의 선거 개표는 한 사람이 기표된 투표용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뚫린 기호를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이 현황 종이에 막대를 표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2019-04-17(한국일보)
인도네시아의 선거 개표는 한 사람이 기표된 투표용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뚫린 기호를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이 현황 종이에 막대를 표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2019-04-17(한국일보)

“사투(1번)”가 너무 많이 나오자 한쪽에서 조그만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대선 개표는 30분간 이어졌다. 이 투표소만 보면 조코위의 압승이었다. 조코위가 131표, 프라보워가 48표를 얻었다. 자카르타 다른 투표소에서도 조코위가 이겼다는 소식이 속속 들어왔다. 오후 3시 전체 출구조사에선 조코위가 10%포인트 정도 앞선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칼리만탄에서는 프라보워가 앞선다는 소식도 전해지는 등 막판까지 예측이 힘들었다.

17일 인도네시아 대선 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은 뒤 마지막 과정으로 잉크에 손가락을 담갔다 뺐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2019-04-17(한국일보)
17일 인도네시아 대선 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은 뒤 마지막 과정으로 잉크에 손가락을 담갔다 뺐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2019-04-17(한국일보)

이날 인도네시아 선거는 당일치기 투표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출마 후보는 16개(아체 지역은 20개) 정당, 24만5,000명이고 유권자는 1억9,282만명이다. 전국 투표소 수는 80만개가 넘었다. 경찰과 군대 50만명이 배치됐다. 실제 134선거구 투표소 옆 학교에 대기하던 소대 병력이 다른 투표소로 이동하기도 했다. 현지 경찰은 자카르타 등 9개 주(州)를 취약지역으로 분류하고, 투표를 전후해 어떠한 대중집회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17일 인도네시아 대선 투표소 부근 학교에서 출동하고 있는 군인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2019-04-17(한국일보)
17일 인도네시아 대선 투표소 부근 학교에서 출동하고 있는 군인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2019-04-17(한국일보)

투표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진행됐다. 잠정 결과는 ‘퀵 카운트(Quick Count)’라 불리는 표본조사 방식으로 이날 밤늦게 최종 취합돼 발표될 예정이다. 공식 발표는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5월 초에 이뤄진다.

17일 오후자카르타 남부 칠란닥 지역 134선거구 투표소에 유권자들이 줄을 서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2019-04-17(한국일보)
17일 오후자카르타 남부 칠란닥 지역 134선거구 투표소에 유권자들이 줄을 서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2019-04-17(한국일보)
17일 자카르타 남부 칠란닥 지역 134선거구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한 여성이 잉크에 손가락을 찍는 모습을 아이가 지켜보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2019-04-17(한국일보)
17일 자카르타 남부 칠란닥 지역 134선거구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한 여성이 잉크에 손가락을 찍는 모습을 아이가 지켜보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2019-04-17(한국일보)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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