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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대선서 조코위 이겨도 불안” 화교들 인니 탈출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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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대선서 조코위 이겨도 불안” 화교들 인니 탈출 조짐

입력
2019.04.16 15:47
수정
2019.04.17 00:0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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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인도네시아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 사용되는 5가지 종류의 투표용지. 자카르타 포스트 캡처
17일 인도네시아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 사용되는 5가지 종류의 투표용지. 자카르타 포스트 캡처

“이미 싱가포르로 떠난 화교도 있다.” “중국인들이 선거 결과와 여론의 추이를 살피며 짐을 싸고 있다.”

대선을 하루 앞둔 16일 인도네시아 전역에 흉흉한 소문들이 돌고 있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중국계 인도네시아인(화교)들이 탈출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화교들이 다른 국가로 몸을 피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조코위 도도(별칭 조코위) 현 대통령의 신승이 예상되지만, 예상치 못한 정국 불안으로 화교에 대한 다수 동남아계 주민들의 공격 가능성을 우려한 탓이다.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도 동포들의 안전대책 마련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독 화교들이 이번 대선에 민감한 이유는 역사의 비극과 맞닿아 있다. 인구비율은 3%에 불과하지만 부의 7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화교들은 질시와 반감의 대상으로 인도네시아 역사의 변곡점마다 수난을 당했다.

1950년대 공화국 개국 초기엔 중국 공산당과 연계돼 있다는 의혹 때문에 핍박을 받았다. ‘신질서(Orde Baru)’를 표방한 수하르토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선 1967년 이후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화교와 인도네시아인이 공산당 지지자로 몰려 처형당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20세기에 벌어진 가장 처참한 집단 학살”이라고 보고했을 정도다. 당시 학살 가해자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199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폭동' 당시 모습. 현지인들이 화교로 보이는 시민을 집단 폭행하고 있다. 인터넷 캡처
199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폭동' 당시 모습. 현지인들이 화교로 보이는 시민을 집단 폭행하고 있다. 인터넷 캡처

특히 1998년 5월 수하르토 군사 독재를 종식한 시위가 변질된 ‘자카르타 폭동’ 때는 1,000명 이상의 화교가 목숨을 잃었고, 수백 명이 강간 강도 등의 피해를 당했다. 한국인들은 자신이 절대 화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시기에 많은 수의 화교가 싱가포르 및 해외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선 양자 대결의 야권 후보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그린드라당 총재는 수하르토의 사위였던 데다, 자카르타 폭동 당시 3성 장군으로 군 책임자였다. 프라보워는 “4성 장군의 지휘를 받는 입장이었다”고 해명하지만, 화교들 입장에선 아무래도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한 교민은 “화교들이 위기의식을 가지고 전적으로 조코위 현 대통령을 밀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지난 7일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 스타디움에서 야권 대선 후보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그린드라당 총재가 유세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2019-04-07(한국일보)
지난 7일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 스타디움에서 야권 대선 후보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그린드라당 총재가 유세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2019-04-07(한국일보)

더구나 선거 구도가 박빙으로 펼쳐지면서 프라보워 총재는 공공연하게 “도둑맞은 선거가 될 수 있다”고 선거 불복을 예고했다. 그는 득표율 6%포인트 격차로 패한 2014년 대선 때도 불복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최근 조코위 대통령 측에서 벌어진 말레이시아 재외동포투표장 개표 조작, 금권 선거 의혹 등을 문제 삼으며 명분도 쌓고 있다. 심지어 “(선거에서 지면) 민중 권력을 사용하겠다”는 엄포도 놓고 있다.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대권 도전이라 그만큼 절박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여론조사 결과는 조코위 대통령이 10%포인트 안팎 앞선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정부 고위 관계자조차 “대부분 여론조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접전이 예상된다. 현지 전문가들은 결국 승리는 조코위 대통령의 몫이지만 득표율 차가 2~3%포인트 선에 그치면 시위 사태 등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정치 분석가 케빈 오루케씨는 최근 기고에서 ‘위도도가 예상 외로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는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자카르타에서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시위가 긴장을 고조시키고 경제를 압박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3일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선 마지막 유세 현장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연설을 마친 뒤 연단으로 몰려온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2019-04-14(한국일보)
13일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선 마지막 유세 현장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연설을 마친 뒤 연단으로 몰려온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2019-04-14(한국일보)

한편 한인 사회의 전반적인 기류와 기대는 조코위 재선에 힘이 실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위 대통령이 그간 서로 양국을 방문하며 친분을 쌓은데다, 인도네시아 현 정부가 신(新)남방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어서다. 차세기 전투기(KF-X/IF-X) 공동 사업, 현대차 투자 등 현안도 많다. 다만 프로보워 총재의 경우 군인 시절 인도네시아 군에 태권도를 보급할 정도로 친(親)한파라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대사관은 이날 오후 “선거 이후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가 벌어지는 장소 인근에는 가급적 이동을 자제하고, 주변에 유사한 움직임이 있으면 가능한 조속히 해당 지역을 벗어나는 등 안전에 유의해달라”고 공지했다.

총선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17일 오전 7시(현지시간)~오후 1시 진행된다. 경찰과 군대 50만명이 배치된다. 잠정 결과는 기표 표본을 취합하는 샘플링 방식으로 10개 기관이 오후 8시쯤 발표한다. 공식 발표는 5월 중에 이뤄진다. 출마 후보는 16개 정당, 24만5,000명이고 유권자는 1억9,282만명으로 하루에 치러지는 선거로는 규모가 세계 1위다. 득표율이 4%가 안 되는 정당은 해체된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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