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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석학’의 슬픈 초상(1): 불통하는 지식인

입력
2019.04.16 04:40
수정
2019.04.16 10:0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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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은 "역사는 시대의 공론이, 대중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고 그 가능성과 분위기를 차단하는 것이 곧 독재"라고 강조했다. 김주영 기자
도올 김용옥은 "역사는 시대의 공론이, 대중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고 그 가능성과 분위기를 차단하는 것이 곧 독재"라고 강조했다. 김주영 기자

지난달 화제가 됐던 도올 김용옥 박사의 이승만 관련 발언을 뒤늦게 보았다. 충격이었다. 김 박사의 막말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도가 지나쳤다. 망인의 시신을 “파내야 한다”는 주장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역사의 법정에 공소시효는 없다. 이승만의 공과를 우리는 영원히 비판할 수 있다. 문제는 비판의 사실 여부다. 김 박사는 김일성과 이승만 모두 소련과 미국이 데려온 “꼭두각시”라고 했다. 얼핏 김일성과 이승만 사이에 ‘기계적 중립’을 취하는 듯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33세의 ‘소련군 장교’ 김일성은 소련의 후원 하에 북한에 왔다. 소련에는 김일성 중심의 한반도 위성국가를 만들려는 시나리오가 있었다. 이승만은 개인 자격으로 귀국했다. 미국에 이승만 주인공의 시나리오는 없었다.

귀국 후 이승만은 사사건건 미국과 충돌했다. 신탁통치에 저항했고, 좌우 합작 구상도 반대했다. 한국전쟁 말기에 이승만은 미국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됨에도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했다.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하려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은 “우리 승인 없이 아무것도 못해”라고 일갈하니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문제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 정부에 비하면 이승만은 훨씬 강단 있는 지도자였다.

“소련은 대일 참전을 주저하다 막판에 들어갔다”라든가 소련은 조선을 “분할 점령할 생각이 없었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독립시키려 했다”는 김 박사의 주장 역시 소련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일 뿐 사실이 아니다.

소련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후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바로 160만 가까운 대군으로 만주의 관동군을 쳤다. 이 막대한 병력은 5월 독일 항복 이후 수개월 동안 서부전선에서 대륙을 가로질러 극동으로 이송되었다. 소련의 ‘주저’는 없었다. 스탈린은 전후 아시아 교두보 확보를 위해 이미 참전을 결정한 것이다.

소련은 점령지에서 순순히 물러선 적이 없다. 분할 점령된 오스트리아에서 실시된 1945년 총선에서 소련의 ‘꼭두각시’ 오스트리아 공산당이 불과 5% 득표율로 궤멸적 패배를 당했는데도 철군하지 않았다. 철군은 스탈린이 죽은 후 오스트리아가 모든 외국군 철수와 영구 중립을 약속한 1955년에야 이뤄졌다. 이듬해 헝가리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소련은 15만의 소련군을 투입했다. 3,000명의 헝가리인이 피살됐고, 총리 임레 너지는 처형됐다.

소련이 원한 독립 통일 조선은 소련에 우호적인 공산당이 지도하는 위성국가였다. 이런 소련의 구상은 전후 냉전 흐름 속에 공산 세력의 영역을 최대로 확보하겠다는 세계 전략의 일부였다. 이런 큰 틀의 정세를 망각하면 찬탁이 옳았느니 반탁이 옳았느니 하는 우물안 개구리식 역사관이 나온다.

김 박사가 출연한 프로그램의 광고 카피를 보니 그를 ‘우리 시대 대표 석학’이라고 소개해 놨다. 김 박사는 동양철학 전문가다. 역사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석학’인지는 의문이다.

세계 어디서나 석학은 우선 동료들에게서 인정받는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스웨덴 국민투표로 정하지 않는다. 사실적 근거가 희박한 자신의 파격적 주장들을 그토록 간절히 국민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면 우선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의 소통 속에서 사실성을 검증받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다.

전문적인 사회과학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들 앞에서 일방적 주장만 내세우는 것은 마치 프로 축구팀 후보 선수가 조기 축구 모임에 나가 호나우도인 양 뽐내는 것과 매한가지다.

젊은 사람들과는 겸상도 못하겠다는 권위의식이 아니라면, 김 박사가 석학답게 지금이라도 전문가들과의 소통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검증받기 바란다. 견강부회를 좀 더 세게 말한다고 해서 ‘석학’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이 슬픈 현실이 김 박사가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라 믿는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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