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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명품

입력
2019.04.16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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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쇼핑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장을 볼 땐 반드시 목록을 작성하고 필요한 물건을 신중히 골라 오래 사용한다. 그런데 세상에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부류가 있으니 바로 명품이다.

십 년 전만 해도 내 주위에서 소위 명품이라 걸 찾아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 주변에 이름도 외우기 힘든 명품들이 하나 둘 자리잡아 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명품에 대해 거부감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진 않다. 나 역시 마음에 품고 있는 명품이 있으니까. 이탈리아 페라X사의 스포츠카로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이 애용하던 차다.

그 차를 실제로 본 건 대학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유럽을 배낭여행 중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여행이라 나는 한 달에 걸쳐 유럽여행에 관한 책을 읽고 완벽한 계획을 짰다. 박물관과 미술관뿐 아니라 각 나라에서 먹을 음식까지 정해두었다. 그렇게 여행을 가게 되었고 여러 나라를 거쳐 모나코에 도착했다. 모나코는 알다시피 카지노로 유명한 도시국가다. 점심값을 아껴 여행을 하는 처지였지만 구경이라도 할 심산으로 나는 카지노로 향했다. 그런데 입구에 경품으로 내걸린 차 한 대가 전시되어 있었다. 바로 페라X였다. 지금도 붉은색으로 번쩍이던 그 자태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 전에 들렀던 루브르의 모나리자와 대영박물관의 조각상을 모두 잊은 채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그리고 페라X는 나의 꿈의 자동차가 되었다. 물론 아직 시승조차 못했지만.

그런데 내게는 ‘명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교수님이 두 분 있다. 당시 내가 재학 중이던 미술대학의 전공 교수님이었다. 두 분 다 해외유학을 한 석학으로 교수님들 중 가장 젊고 인기가 높았다. 그런데 두 분은 완전히 다른 타입이었다. 한 분은 세련된 스타일로 늘 명품을 두르고 다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자동차였다. 당시 수입이 안 되던 독일 A사 세단으로 유학시절 사용하던 걸 들여온 것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교수 전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던 교수님의 모습을. 자동차에 문외한이던 내게도 원이 네 개 달린 독일 자동차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수님은 늘 청바지에 타이를 하고 다녔는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명품이었다. 멋진 타이를 매고 소매를 걷은 채 수업하던 교수님은 다른 과 여학생들까지 청강을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반면 또 다른 교수님은 정반대였다. 교수님은 거의 학교에서 생활을 했는데 늘 체육복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길게 기른 머리는 산발이었고 작업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간 날이면 꿉꿉한 냄새가 풍겼다. 학생들이 스승의 날 데오드란트를 선물할 정도였으니까. 10년 가까이 된 낡은 현X차를 몰았고 단벌 양복은 국내 중소 브랜드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 역시 세련된 교수님을 동경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허름한 교수님 작업을 도와드리고 늦은 시간 함께 귀가하고 있었다. 갑자기 교수님이 술 한잔 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학교 인근 막걸리 집에 들어가 단 둘이 술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몇 잔을 기울이다가 무심코 질문을 하게 됐다.

“교수님은 디자인하는 분이 왜 그렇게 입고 다니세요? OO교수님처럼 명품은 아니더라도 세련되게 입으시면 멋지실 텐데.”

그러자 교수님이 대답했다.

“용민아. 넌 명품을 갖고 싶니, 니가 명품이 되고 싶니? 난 내가 명품이 되고 싶단다.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고 소장하고 싶어 하는 명품을 만들고 싶단다.”

그리고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셨다. 시간이 지나 나도 어느덧 교수님 연배가 됐다. 그리고 지금 명품 매장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체육복에 운동화를 신은 내 모습을. 언젠가 독자들이 동경하는 명품을 쓸 날을 그리며.

장용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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