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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문 대통령 겨냥 “오지랖 넓은 중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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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문 대통령 겨냥 “오지랖 넓은 중재자”

입력
2019.04.14 18:13
수정
2019.04.14 22:5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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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가 돼야” 무례한 직격탄… 청와대 침묵속 대북특사 고민

미국은 빅딜 설득자 역할 주문… 비핵화 담판 앞두고 양쪽서 압박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외교’가 한미정상회담 이후 더 큰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 남북이 한 민족임을 강조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고 나오면서 입장이 더 곤궁해진 측면이 있다. 북한 대내외 매체들이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를 비판한 적은 있지만 지난해 획기적인 남북관계 개선 이후 김 위원장이 직접 공개적인 비난의 목소리를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세 차례나 남북정상회담을 한 김 위원장의 언급은 우리 국민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북미간 틈바구니에서, 비핵화를 향한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해 온 문 대통령의 고심은 깊어가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김정숙 여사,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한 친교를 겸한 단독회담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김정숙 여사,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한 친교를 겸한 단독회담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4일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내일 이번 한미정상회담과 김 위원장 연설에 대한 코멘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오는 16일부터 중앙아시아 순방에 나서는 만큼 그전에 대북특사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 이슈를 포함해 언급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수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그렇다고 딴 데 가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즉각 “대북특사 파견과 관련한 구체적 언급은 없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앞서 또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누가 언제 특사로 방북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사안은 언급하기 이르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의 고민은 북ㆍ미 양 측으로부터 ‘당사자’ 역할을 요구 받으면서 한층 깊어지는 모습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날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측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달 평양에서 외신기자들을 모아놓고 “남조선(한국)은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당사자 격으로도 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언급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좋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말한 데 화답했다. 트위터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좋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말한 데 화답했다. 트위터 캡처

가뜩이나 미 측이 마뜩찮아 하는 탓에 ‘중재자(Arbitrator)’란 표현을 ‘촉진자(Facilitator)’로 애써 바꿔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다. 여권 한 관계자는 “미국은 그간 우리 정부가 중재자를 자처하는 것이 북한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라 보고 불편한 감정을 표시해 왔다”며 “중재자 보다는 한미동맹의 당사자로서 북한이 ‘빅딜’을 받아들일 수 있게 문 대통령이 설득해야 한다는 요구”라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 입에서 ‘당사자’란 얘기가 나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비핵화 담판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보다 확실한 대안을 내놓으라는 요구”라고 해석했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제3차 북미정상회담에서의 비핵화 담판을 앞두고, 북미 모두가 우리 정부의 확실한 역할을 요구하며 ‘최대 압박’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청와대가 “시간이 많지 않다. 마냥 시간을 끌 문제가 아니다”면서도 ‘남북접촉’의 형식과 방법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자칫 북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비춰질 경우 어렵게 끌고 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산통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특사로 파견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남북 대화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큰 때문이다.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스파이 라인’이 막후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노동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새로 선출된 당 및 국가지도기관 인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노동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새로 선출된 당 및 국가지도기관 인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입지가 어느 때보다 좁아진 건 사실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 원칙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표시한 만큼 대화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특히 이번 남북 접촉에서 ‘영변 플러스 알파(α)’로 상징되는 북핵 관련 시설 폐기에 대한 포괄적 합의와 관련해 최소한의 접점을 찾는다면, 시설→물질→무기→인력으로 이어지는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의 원칙에 따른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딜)이 가시권에 들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남북미 모두 하노이 담판 결렬의 교훈을 충분히 되새기고 있다”며 “‘톱 다운’ 협상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실무 협상의 완성도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 어느 때보다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영빈관(블레어하우스)에서 폼페이오(왼쪽 세번째) 미 국무장관, 볼튼(왼쪽 두번째) 국가안보보좌관,해리스(왼쪽) 주한대사를 비롯한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영빈관(블레어하우스)에서 폼페이오(왼쪽 세번째) 미 국무장관, 볼튼(왼쪽 두번째) 국가안보보좌관,해리스(왼쪽) 주한대사를 비롯한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청와대사진기자단

반면 자유한국당은 전희경 대변인 논평을 통해 “(김 위원장의 발언은)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자 대한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며 “한미갈등, 남남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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