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개선 전문가 의견] 
 “OㆍX 보고서 대신 상임위 표결제 도입해야” 국회 논의 주목 
19일 오후 3시 헌법재판소에서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의 취임식이 열렸다. 홍윤기 인턴기자 /2019-04-19(한국일보)

청와대가 박영선(중소벤처기업부)ㆍ김연철(통일부) 장관에 이어 35억원대 주식 보유ㆍ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진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까지 강행하면서 ‘청와대 부실 검증→국회 신상털기식 질의→임명 강행→여야 대치’의 인사청문회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여당 출신의 문희상 국회의장마저도 “청문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는 임명을 못하도록 청문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언급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무용지물 취급을 받는 현재의 청문회 제도 개선을 위해 ‘OX 형식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대신 상임위 표결제 도입’, ‘윤리성과 업무능력 검증 청문회 이원화’, ‘국회 인준 동의 대상 확대’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전자결재로 이미선ㆍ문형배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현 정부에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한 인사는 13명으로 늘었다. 야당은 적격 판단을 내린 문 재판관에 대한 보고서는 채택하려고 했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 재판관과 동시 처리를 이유로 국회 법제사법위에 불참하면서 문 재판관도 국회 동의 없이 임명된 모양새가 됐다. 앞서 이명박 정부 시절 17명, 박근혜 정부 시절 10명의 고위공직자가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장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임기 만 2년도 안 돼 벌써 13명으로 늘어나 현 추세대로라면 역대 기록을 깨는 것은 시간 문제다.

[저작권 한국일보]20대 국회 발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 주요내용_김경진기자
 ◇20대 국회서만 청문회 개정안 42건 발의… 통과는 0 

제도 개선 움직임은 청문회 개최 주체인 국회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진전 속도는 더디다. 여야는 지난해 국회 운영위 인사청문제도개선 소위원회를 설치하고 △국회 자료제출 요구권 강화 △도덕성 검증ㆍ정책능력 검증 청문회 분리 실시 등에 공감대를 이뤘지만 국회 후반기에 상임위가 재편되면서 지난해 2월 20일 회의를 끝으로 논의는 더 진행되지 못했다.

입법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21일 기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은 42건에 달하지만 현재까지 한 건도 통과되지 않았다. 공격수인 야당 의원 중심으로 개정안이 발의되지만 수비수인 여당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탓에 입법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8일 대표 발의한 청문회법 개정안은 △청문기한 연장(청문회 개최 시점 인사청문요청안 제출일로부터 15일→20일 이내ㆍ보고서 미 채택 시 숙려기간 10일 이내→10일 이상 20일 이내) △후보자 위증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 △자료 제출 지연ㆍ불응 시 기관에 경고, 관계자 징계 요구 가능 등을 골자로 한다.

같은 당 김승희 의원은 후보자를 누가 어떤 경로로 추천했는지 인사추천이력서를 필수로 제출하는 인사추천실명제 도입을 개정안에 담았고, 같은 당 윤한홍 의원도 청문회를 윤리성 검증과 업무능력 검증 청문회로 이원화하고 후보자에 대한 과도한 신상털기를 막기 위해 윤리성 검증 청문회는 비공개로 진행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윤 의원과 함께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11명 의원 가운데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당 소속이지만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5일 진행된 국회 운영위 업무보고에서 윤 의원의 개정안을 언급하며 “검토할 만한 내용”이라고 밝히면서 여야 차원에서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김병민 경희대 행정학과 겸임교수는 “신상 검증과 정책 검증 청문회를 이원화하고 신상 검증을 비공개로 하면 전문성 있는 인사들이 모든 신상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공직을 기피하는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인사청문회 개선 방향_김경진기자
 ◇전문가들 “상임위 표결제 도입” “국회 인준 동의 대상 확대” 

전문가들은 청문회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구속력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 등 11년간 총 40명이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됐는데, 사실상 1년에 3.5명이 청문회 없이 장관이 되는 셈”이라며 “상임위에서 청문보고서 채택 대신 표결을 하게끔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당은 무조건 찬성하고, 야당은 반대하는 ‘OX’ 청문보고서 채택보다는 상임위에서 찬반 표결로 적격 여부를 판단해, 청와대를 압박하자는 의미다. 물론 동의하는 표가 적다고 대통령이 임명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찬성보다 반대하는 의원이 현저하게 많을 경우, 청와대로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청문회를 실시하는 17개 상임위 중 여당이 과반을 점한 위원회가 단 한 곳도 없는 현재의 여야 5당 체제에서 상임위 표결제는 그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다는 평가다. 캐스팅보트를 쥔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반대할 경우, ‘과반 이상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청와대에 명확하게 전달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여당 내 부적격 의견을 청와대에 전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현재처럼 OX식 당론으로 정하면 묻혔을 의원 개인의 소신이 무기명 투표로 표출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이미선 재판관 청문회 당시 여당 법사위원인 조응천ㆍ금태섭 의원 등은 판사 신분으로 주식을 과다 보유한 것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 입장을 표한 바 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청문회 과정에서 동문서답식 답변 태도로 자질 논란에 휩싸인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의 경우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소속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인 경대수ㆍ하태경 의원 등이 부적격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당론이 적격으로 정리되면서 묻혔다.

국회 임명 동의 대상을 확대하되, 표결 요건을 완화하자는 절충론도 제기된다. 현재 국무총리,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등은 청문회를 마친 뒤 국회 본회의에서 인준(과반수 이상)을 받아야 임명이 가능하다. 인준 대상을 장관까지 넓히는 대신 통과 문턱은 과반수보다 낮은 3분의 1 이상 찬성 수준으로 조정한다면, 국회 기능은 강화되고 대통령의 무리한 임명은 줄어들 것이란 주장이다. 김병민 교수는 “본회의나 상임위에서 3분의 1이나, 5분의 2 찬성으로 문턱을 낮추면 특정 정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낙마로 이어지지도 않고 중간지대에 있는 정당의 입장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며 “현 정부 청문회마다 등장하는 ‘정의당 데스노트’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매번 논란을 야기하는 청와대의 ‘7대 고위공직 배제 기준’을 국회 차원에서 별도로 마련해 해석 논란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대안도 나왔다. 여야가 사전에 기준을 만들자는 것이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지명 당시 27명의 후보군이 검증도 받기 전에 청와대의 장관 제안에 손사래를 쳤을 정도로, 현재의 청문회 방식은 능력 있는 후보자들의 공직 진출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검증 범위를 배우자까지로 정할지, 사돈의 8촌까지로 정할지는 물론 적용기간을 인생 전체로 볼지, 성인이 된 이후로 볼지 등에 대해서 국회의장이 총대를 메고 국회 차원의 기준을 만들어 청문회가 막무가내로 흐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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