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공연 ‘장기자랑’ 무대 올리는 4ㆍ16가족극단 ‘노란 리본’
지난 8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만난 4ㆍ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어머니들. 엄마들은 단원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영만 엄마 이미경씨, 수인 엄마 김명임씨, 예진 엄마 박유신씨, 생존학생 애진 엄마 김순덕씨, 동수 엄마 김도현씨, 순범 엄마 최지영씨. 한국일보 영상팀 한설이 PD

“나 원래 이름 말고 ‘순범 엄마’라고 불러주면 안 될까요. 우린 그게 더 좋아.”

누구누구 엄마. 자신이 지워지는 것 같다며 기혼 여성들이 싫어하는 호칭이다. 하지만 아이가 잊혀지는 게 더 무서운 이 엄마들에게 ‘누구 엄마’라는 호칭은 최고의 행복이다. 동수 엄마 김도현씨, 수인 엄마 김명임씨, 예진 엄마 박유신씨, 영만 엄마 이미경씨, 순범 엄마 최지영씨, 그리고 생존학생인 애진 엄마 김순덕씨. 그래서 이 여섯 엄마는 기어코 서로를 ‘누구 엄마’라 부르고야 만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둔 지난 6일, 그리고 8일 두 차례 이 여섯 엄마를 경기 안산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만났다. 엄마들은 4ㆍ16 가족극단 ‘노란 리본’의 새 작품 ‘장기자랑’의 안산 공연을 막 끝낸 참이었다. 단원고 교복까지 맞춰 입은 무대 위 엄마들은 한껏 명랑했으나, 객석은 흐느낌으로 물들었다.

시작은 2015년 ‘심리치유를 위한 대본 읽기’ 모임이었다. 그러다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유는 계속해서 ‘누구’ 엄마라 불리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그렇게 ‘4년차 세월호 전문배우’가 됐다.

[저작권 한국일보]4ㆍ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활동_김경진기자
◇엄마들, 아이들 대신 제주도에 가다

‘장기자랑’은 2014년 단원고 2학년생들이 곧 있을 수학여행을 앞두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극본을 쓴 변효진 작가는 희생 학생 등의 이야기를 12권으로 정리해낸 ‘4ㆍ16 단원고 약전’을 바탕 삼았다. 그래서 작품은 사실 그 자체다.

단원고 2학년 3반 故 정예진양의 어머니 박유신씨. 예진 엄마는 딸이 보고 싶을 때마다 거울을 본다. 한국일보 영상팀 한설이ㆍ현유리 PD

아이돌 가수가 꿈인 2학년 3반 반장 ‘가연’ 역은 이 역을 맡은 박유신씨의 딸 예진이가 모델이다. 가연 역은 당연히 예진이 엄마, 박유신씨가 맡았다. “우리 딸, 꿈이 원래 뮤지컬 배우였거든요. 예진이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춤 연습을 그렇게나 열심히 했잖아요 내가.” 실수할 까봐 겁나서 자다 말고 교복을 입고 춤추는 날들이었다. 그러다 돌아본 거울 속엔 딸 예진이가 있었다. “딸과 제가 좀 많이 닮았거든요. 그 날 밤 혼자 참 많이 울었어요.”

수학여행을 앞두고 한껏 들뜬 아이들이 짐을 싸는 장면에선 동수 엄마 김도현씨가 아찔해진다. “가방에다 옷을 한 보따리씩 챙기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동수가 떠오르더라고요. 수학여행 가기 전날, 생전 안 그러던 녀석이 나랑 같이 쇼핑까지 했어요. 제주도 가서 입는다고 옷을 막 신이 나서 샀어요. 속옷부터 양말까지 정성껏 고르더라고요.”

단원고 2학년 7반 故 정동수군 엄마 김도현씨. 동수 엄마는 교복이 마치 아들 같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연습이 끝나자마자 곱게 벗어 품 안에 안는다. 교복에 비를 맞히는 게 마치 내 자식에게 비를 맞히는 것 같아서다. 한국일보 영상팀 한설이ㆍ현유리 PD

초등학교 때부터 동수와 붙어 다닌 수인의 엄마 김명임씨는 김도현씨의 등을 쓰다듬었다. “초등학교 때는 신종플루, 중학교 때는 조류독감 때문에 우리 애들이 수학여행을 한번도 못 갔어요. 그러니 얼마나 들떴었겠어요.” 문득 그런 기억이 떠오르면 연습을 하다가도 쓰러져 울었다.

그래서인지 공연을 본 지인들은 하나같이 엄마에게서 아이들을 보았다고 한다. 영만 엄마 이미경씨도 그랬다. 랩 좋아하는 아들을 따라 랩에 처음 도전했다. “공연 끝나고 찾아온 어떤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언니가 딱 영만이 같다’고요. 아들이 집에서 랩할 땐 잘 들리지도 않았거든요.” 엄마들은 그렇게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있었다.

단원고 2학년 6반 故 이영만군 어머니 이미경씨. <장기자랑> 공연에서 음악에 심취한 여고생 ‘하늘’ 역을 맡았다. 시도 때도 없이 노래와 랩을 흥얼거린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영만이다. “참 이상해요. 이 교복을 입으니까 꼭 아이들이 내게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엄마들은 떠난 250명의 아이들이 다 자기 안에 들어온 것 같다. 한국일보 영상팀 한설이ㆍ현유리 PD

이토록 사실적이지만 이 작품엔 결정적 거짓이 있다. ‘장기자랑’ 속 아이들은 제주도에 무사히 도착해 바닷가에서 춤추며 노래한다. 아이들이 못간 그 곳, 엄마라도 대신 가주겠다는 듯 엄마들은 한껏 목청을 키워 “그러니까, 괜찮아~ 우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아~” 노래 부른다. 너무나 밝은 톤의 노래에다 발랄한 춤까지 곁들였건만, 그래서 다들 오열한다. 저랬어야 했다고, 마땅히 저랬어야 했다고.

◇서로가 서로에 기대어 일어섰던 지난 4년

엄마들의 무대는 순탄치 않았다. 2015년 10월 대본읽기 첫 모임이 시작됐을 때 엄마들은 글자를 읽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다. 1년 넘게 피울음만 토해냈으니 그럴 법 했다. 읽더라도 읽는 게 아니었다. “엄마들이 공황상태였거든요. 쓰여 있는 대로 읽기는 하는데, 말 뜻이 머리에서 조합이 안 되는 거예요. 그 정도로 모든 판단 기능이 마비돼 있었어요.” 동수 엄마 김도현씨 설명이다. 이 때 안산에서 활동하던 김태현 연출가가 손을 내밀었다. “처음엔 공연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그저 대본 읽기 시간에 단 한번만이라도 웃게 해드리고 싶었을 뿐이예요.”

4ㆍ16 가족극단 ‘노란 리본’을 이끄는 김태현 연출가. 경기도 안산에서 극단 ‘걸판’의 단원으로 활동해 왔다. 2015년 치유 목적으로 시작된 연극 수업을 통해 엄마들을 처음 만났다. 그 후 4년 동안 김 연출가는 엄마들의 곁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한국일보 영상팀 한설이ㆍ현유리 PD

그러다 엄마들이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동수 엄마 김도현씨는 생존학생 애진 엄마 김순덕씨를 초대했다. 김순덕씨는 지금도 그게 너무 고맙다. “희생학생 어머님들이 저를, 애진이를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실까, 걱정이 앞섰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 때 동수 엄마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신 거예요.”

동수 엄마 김도현씨는 솔직했다. “저도 처음엔 애진이 보는 게 힘들었어요. 다 그랬을 거예요. 근데 지금은 그냥 예뻐요. 애진이가 동수처럼 보이기도 하고, 애진이가 잘 되는 게 동수가 잘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지금이라도 애진이를 편하게 볼 수 있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동수 엄마 김도현씨도 처음부터 마음이 바뀐 건 아니었다. 아이를 잃고 회사는 그만두고 어두컴컴한 집에 갇혀 있던 김도현씨를 끄집어 낸 건 수인 엄마 김명임씨였다. 예진 엄마 박유신씨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의지했던 사람도 엄마들 사이의 큰 언니 김명임씨였다. 뒤늦게 극단에 합류한 순범 엄마 최지영씨가 의지한 사람은 김명임씨가 버팀목이 되어 줬던 박유신씨였다. 홀로 일어설 수 없는 이들이었기에 그렇게 서로 어깨를 맞대어 함께 일어섰다.

단원고 2학년 7반 故 곽수인 군 어머니 김명임(가운데)씨는 엄마들의 큰 언니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왼쪽은 동수 엄마 도현씨, 오른쪽은 예진 엄마 유신씨. 한국일보 영상팀 한설이ㆍ현유리 PD

그렇게 2016년 첫 작품 ‘그와 그녀의 옷장’을, 2017년 두 번째 작품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를 무대에 올렸다. 공연할 곳은 있을까 걱정한 건 기우였다. 전국 각지에서 요청이 쏟아졌다. 예진 엄마 박유신씨는 그런 관객들이 고맙다. “공연 끝나면 관객 분들이 ‘힘내세요, 사랑합니다’라고 쓰인 노란 팻말을 흔들어주세요. ‘엄마들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해주시고요.” 기운 빠져서 무릎이 꺾이려 할 때마다 무대 위로 쏟아진 진심이 엄마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 힘으로 엄마들은 광화문 천막으로, 진도 동거차도로, 목포신항으로 내달리며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장기자랑’도 17일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 공연을 이어나간다.

4ㆍ16 가족극단 ‘노란 리본’의 첫번째 작품인 <그와 그녀의 옷장> 중 한 장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작품으로 2016년 10월 안산에서 첫 공연을 열었다.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기 위해 전국을 떠돌아야 했던 희생학생 어머니들의 삶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다. 왼쪽부터 영만 엄마 이미경씨, 예진 엄마 박유신씨. 극단 '노란 리본' 제공
◇치유는 없다, 기억할 뿐이다

“치유요? 아이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자식 잃은 부모에게 치유 같은 건 없어요.” 그럼에도 무대에 서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 새끼 이야기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나 싶어서.” 무대에 올라 스스로 아이들이 되는 건, 아물지 않을 그 순간으로 매번 되돌아가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단원고 2학년 1반 학생이었던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씨의 어머니 김순덕씨. 애진 엄마는 <장기자랑> 첫 공연을 나서던 날, 딸 애진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늘, 너야. 너로 가서 네 친구들의 이름을 모두 불러줄거야.” 딸은 말없이 뒤돌며 “고맙다”고 했다. 한국일보 영상팀 한설이ㆍ현유리 PD

생존학생 애진 엄마 김순덕씨는 이런 얘길 들려줬다. “해마다 언론사에서 저와 남편, 그리고 우리 애진이를 취재하고 싶다고 하세요. 저는 인터뷰 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 언젠가 한번은 더 이상 못하겠다 했거든요. 그런데 딸이 제게 와서 이래요. ‘엄마, 4월 한 달이 힘들어? 나도 4월이면 하루가 10년 같아. 하지만 나중엔 아무도 우릴 안 찾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우리가 힘들어도 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밖에 없잖아.’ 그 말을 듣는데 너무 부끄럽고 미안한 거예요.” 어느덧 스물 셋이 된 애진씨는 ‘응급구조사’를 준비 중이다. 해마다 4월이면 내가 말해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다시 사람들 앞에 나선다. 김순덕씨가 무대에 오르는 이유도 똑같다.

4ㆍ16 가족극단 ‘노란 리본’의 두번째 작품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중 한 장면. 세월호 유족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보상금과 특례입학 등을 둘러싼 세간의 오해로 유족들이 상처 받는 모습을 그려냈다. 극단 '노란 리본' 제공

엄마들이 결의를 다지는 건 그래서다. 세상은 변한다. 엄마들에겐 ‘고작 5년’이지만 세상은 ‘벌써 5년’이라 한다. 예진 엄마 박유신씨는 지난해 고통스러웠다. 안산 화랑유원지에 4ㆍ16생명안전공원을 만들자는 계획을 두고 ‘납골당 같은 혐오시설’이란 말들이 오가서다. 심지어 상여에다 해골 그려놓고 시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달 28일 세월호 특조위 2기가 세월호 내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 조작 정황이 있다는 주장을 내놨을 땐 며칠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고생했다.

그래서 엄마들은 ‘아직도 세월호 얘기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해진다. 세월호 참사에 외부자는 없기 때문이다. 무능한 국가를 무관심으로 방치해둔 건 우리 모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4일 강원 고성, 속초 일대를 산불이 휩쓸었을 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대형 산불은, 집단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5년 전 그 일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체험학습을 떠났던 경기 평택의 현화중학교 학생들이 버스가 불에 타기 전에 무사히 탈출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럴 때면 엄마들은 가슴을 쓸어 내린다. 어쩌면 먼저 떠난 우리 아이들이 지금 여러 아이들을 살리고 있는 건 아닐까. 엄마들은 그런 믿음으로 또 무대에 오른다.

엄마들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매번, 아물지 않은 시간 속으로 되돌아가 쓰라린 기억을 들여다 본다.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다. ‘잊혀짐’에 맞서 싸우는 건 남겨진 이들의 영원한 몫이기에. 오늘도 엄마들은 무대에 오르며 아픈 다짐을 한다. 떠난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국일보 영상팀 한설이ㆍ현유리 PD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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