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사청문회의 비법… 백악관은 도덕성, 의회는 정책 검증 주력 
지난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문재인 정부 장관들의 이름이 화면에 나오고 있다. 뉴스1

미국의 인사청문회 제도는 청와대의 부실검증과 국회의 망신주기가 반복되는 한국 청문회와는 사뭇 다르다. 백악관과 의회 모두 유능한 인물 발탁이라는 공동목표를 위해 각각 도덕성 검증과 정책 검증이라는 역할을 분담하는 구조다.

21일 국회입법조사처와 한국법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미국 상원은 대통령이 지명한 고위공직 후보자에 대한 인준(임명) 권한을 갖는다. 대통령이 국회의 반대에도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수 있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의회가 반대하면 대통령의 일방적 강행이 불가능한 셈이다. 의회 인사청문회 대상만 해도 행정부 장ㆍ차관, 연방수사국(FBI) 국장, 군 고위 장성, 연방대법관, 각국 대사 등 600여명에 달한다.

이에 백악관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통과를 위해 모든 수사ㆍ정보 기관을 총동원해 사전 검증을 실시한다.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공직자윤리국(OGE) 등이 후보자의 가족문제, 세금납부 기록, 금융거래, 전과, 소송 여부, 경범죄 위반 기록 등을 샅샅이 조사하는데, 기본 검증 항목만 230여개에 달한다. 관련 기관들이 정교한 인사검증을 위해 전문 요원을 채용하고, 검증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특징이다.

여기에 광범위한 평판 조사도 더해진다. 후보자 주변인물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인물 됨됨이, 주민 여론, 학창 시절 평판, 알코올ㆍ마약 사용 여부까지 확인한다. 도덕성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될 경우 백악관에 통보하는데, 백악관은 후보자 해명을 들은 뒤 지명 절차를 재개하거나 철회한다. 특히 검증기관 간 상호 경쟁 시스템이라는 안전판도 마련돼 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미국은 FBI와 국세청, 공직자윤리국이 따로 검증을 하고 대통령에게 각자 직접 보고한다”며 “검증기관끼리 상호 경쟁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관련 기관의 검증을 통과한 후보자가 나타났을 경우 여야 지도부, 해당 상임위 위원장을 만나 인준 문제를 사전에 협의한다. 의회를 존중하는 절차이자, 정치권의 여론을 청취하는 과정이다. 이후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요구서를 국회에 발송하면 의회 상임위는 청문회 개최 전에 후보자에 대한 자체 조사를 한다. 주로 서면 질의를 보내고 답변서를 제출 받는데, 답변이 부실할 경우 FBI 등의 협조로 추가 검증을 벌인다.

백악관과 의회가 후보자 신상과 도덕성에 대한 혹독한 검증을 진행했기 때문에 ‘본 무대’인 청문회에서는 후보자의 정책 및 능력 검증에 초점이 맞춰진다. 의회는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할 때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할 것’ ‘사실 위주의 질문을 할 것’ ‘자질과 관련한 질문을 할 것’ 등을 규정해 후보자는 물론 의회의 품위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인사청문회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적게는 3개월, 길게는 5개월에 이른다. 또 인사청문회에 앞선 사전검증 단계에서 거짓 진술을 할 경우 후보자가 법적인 처벌을 받도록 했다. 검증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미국에서 20세기에 장관 임명동의안이 상원에서 부결된 경우는 2% 미만에 불과하다”며 “백악관은 철저한 검증을 실시하고, 국회도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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